사도행전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거듭난 삶 2023. 10. 1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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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강림과 역사(役事)

 

성 경: [2:37-41]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2: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 '찔려'라는 동사는 '때리다' 혹은 '격하게 찔러

관통하다', '실신시키다'의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은 격심한 마음의 염려와 양심의 가책이 엉켜진 매우 심각한 고통을

의미한다.

 

무리들이 '마음에 찔렸다'는 것은 양심의 가책과 더불어 이성적인 죄책감(罪責感)

강하게 느끼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Alexander).

 

이처럼 제자들 속에 역사하신 성령은 예수의 예언대로

 

(16:8-11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그들의 죄를 책망하는 일을 행하신 것이다.

 

무리들은 베드로의 설교를 경청하고 나서 저희의 유일한 소망이며 오랫동안 고대하던

그 메시야를 스스로 배척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것을 깨닫자 몸서리치도록

놀라며 '마음에 찔린' 것이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 - 이 표현은 베드로를 사도들과 특별하게 구별하기 위한

의도적인 생략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다른'이란 표현이 삽입되면 베드로와 같은 사도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생략될 경우

베드로가 사도들보다 우월한 어떤 권위를 지닌 인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누가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초대 교회 안에서의 사도들의 주도권이지

베드로 자신의 주도권이 아니다. (Richard N. Longenecker).

 

사실상 누가는 그의 복음서와 본서에서 베드로를 사도들 가운데서 으뜸되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도들의 대변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우리가 어찌할꼬 - 이 물음은 필사적(必死的)인 부르짖음이었다.

 

(16:30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바울도 회개할 때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22: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애통하면서 사도들에게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다.

또한 그들은 이제 성령의 지시를 기다리는 겸손한 자세를 가지게 되었다.

 

 

 

[2: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 '회개하다'는 마음의 완전한 변화와 죄의 고백을

뜻한다.

 

마음의 변화란 전인격에 대한 것으로 죄와 불신에서 떠나 그리스도에게 향하는 인격

그리고 신앙과 그리스도를 통한 성결로 나아가는 인격에로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회개의 메시지는 본서에 여러 번 반복되었다.

 

(3:19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5:31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8:22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13:24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침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19:4 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침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 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

 

20:21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26:20 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 이 말은

 

'너희들 한 명 한 명이 각각 침례를 받으라'는 뜻으로 여기에서 말하는 침례는

유대교에서 시행해 왔던 회개와 사과의 외적 상징으로서의

침례(13:24; 18:25; 19:3 ;1:4)와는 판이하게 구별되었다.

 

(13:24 그 오시는 앞에 요한이 먼저 회개의 침례를 이스라엘 모든 백성에게 전파하니라;

 

18: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침례만 알 따름이라;

 

19:3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침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침례로라;

 

1:4 침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베드로가 말한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일 뿐 아니라

성령을 받는 일과 관련된 침례이기 때문이다.

 

본문을 직역하면 '죄사함을 위하여'란 의미를 지니며 대부분의 영역 성경도

이렇게 번역한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본 절에서 단순히 '침례 받으라'는 의미로 설명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강조하여 이 이름과 침례를 연관시켰기 때문이다.

 

즉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침례와는 질적으로 다른 예수의 이름에 따른 침례가 강조된다.

 

이는 '예수를 믿으라'는 말보다 더 강한 어조이므로 단순히 '침례'라는 문자에 따라

본문을 이해해서는 안 된다.

 

특히 막 1:4은 본 구절 요약하듯 '죄사함과 침례'를 밀접하게 연관(聯關)시켜

진술하고 있다.

 

(1:4 침례 요한이 이르러 광야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니)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여기서 '그리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카이'

어떻게 번역되느냐에 따라 본절의 전체적 의미가 구분된다.

 

(1) '그리고' 이 의미는 '카이'의 일반적인 용법이며 본 절에서도 '그리고'

번역될 수 있다. 이렇게 번역될 경우 본구절과 앞구절은 단순히 대등적일 뿐

인과 관계가 없다.

 

(2) '그리하면' 이 의미는 '카이'의 특별한 용법이다.

이 번역을 취하면 앞 구절과 본 구절은 인과관계에 놓이게 된다.

즉 회개와 죄사함을 위한 침례가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는 조건이 된다.

 

한편 '성령을 선물로'란 표현을 직역하면

'성령의 선물'(the gift of the Holy Spirit, NIV ;성령의 은사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참조 :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회개하고 너희 각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아 죄들의 사면을 얻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성령님을 선물로 받으리니(한글KJV)

Then Peter said unto them, Repent, and be baptized every one of you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remission of sins, and ye shall receive the gift of the Holy Ghost(KJV)

 

전자는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께서 보내신 성령 자체이시며,

후자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며 그 유익을 위하여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는(고전 12 :11) 성령의 은사들을 말한다.

 

(고전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이 약속 - 이것은 예수께서 하신 약속이며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또한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약속으로서

 

(2:28-32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29)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3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죄 사함과 성령의 은사(38)를 포함한 것이다.

 

(38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 베드로는 이 약속이 자기 설교를 듣는

청중들(너희)과 그들의 자녀들(너희 자녀) 그리고 모든 먼 지방(나라)에 있는

자들(모든 먼 데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이 구절에서 '모든 먼 데 사람'이라는 표현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조금의 차별도 없이

구원에 참여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인 것을 고려할 때 베드로가 여기에서

유대인만 지칭하고 이방인을 제의시켰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너희'란 표현 속에는 팔레스틴에 거주하는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및,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이 포함되므로 '먼 데 사람'은 유대교 밖에 있는

이방인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따라서 누가는 본문의 '먼 데'라는 말을 22:21에서와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22: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2: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 '여러 말' 이란 누가가 본문에서 기록한 것보다

더 많은 말을 베드로가 하였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 당시의 세대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를 거역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기에

 

(11: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17: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를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악한 세대'였다.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17:1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패역한 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구약에서도 보편적으로 인정되었다.

 

(7:22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19: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러나 그러한 불신앙 가운데서도 유대인들이 회개한다면 그들은 그 세대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21:41-44 저희가 말하되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4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4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44)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22:7 임금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사르고;

 

23:24-24:2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26)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27)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28)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2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30)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31)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32)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33)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3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선지자들과 지혜있는 자들과 서기관들을 보내매 너희가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중에 더러는 너희 회당에서 채찍질하고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구박하리라

35)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36)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

37)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 하였도다

38)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39)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4:1-2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2: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 이 말은 모든 사람은 포함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는 베드로의 ''(톤로곤)에 찬동하여 수긍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침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 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 롱게네커(Richard N. Longenecker)는 다음 두 가지 근거로 그 견해를 설명한다.

 

(1) 크라이슬러(B. C. Crisler)는 팔레스틴에서는 설교자가 어떤 위치에 있을 때 소리의 반향음(反響音)에 의해 수많은 무리가 들을 수 있는 설교를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마 예수도 이러한 지리적 입지를 고려해서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설교할 수 있었을 것이다.

 

(2) 그는 '더하더라'는 동사가 미완료 과거형으로 사용된 점에 주의를 기울였다.

 

이것은 더해지는 수가 단회적인 것이 아니라 설교의 결과로서 더해지는 과정이 계속 있었음을 의미한다.

 

3,000명의 대중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한꺼번에 반응했다는 의미가 아님을 보여준다. 따라서 3,000이라는 수효 자체는 부정될 수 없다.

 

한편 본 구절에서 3,000명이 침례를 받았다는 사실도 학자에 따라 문제시 된다.

왜냐하면 3,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침례를 받을 수 있는 곳은 요단강뿐인데 베드로의 설교 장소는 예루살렘으로서 그 만큼의 수효가 침례 받기에는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3,000명이 일시에 침례 받은 것이 아니라 분산되어 12제자에 의해 지속적으로 침례를 받았을 것이다. (H. Marshall, W. Neil).

 

즉 제자의 수가 점점 더해진 것처럼 침례도 점진적으로 제자들에 의해 행해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