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거듭난 삶 2023. 10. 23.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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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방된 베드로와 요한

 

성 경: [4:13-22]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4: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기탄없이 말함 - 이 말은 '모두 남김없이 자유롭고 대담하게 말하였다'는 뜻이다.

 

사도는 그 태도와 말에 있어서 확신에 차서 이처럼 기탄없이 예수를 증거하였다.

공회원들은, 죄인으로 서 있으면서도 자신있게 변론하는 사도의 태도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학문 없는 범인 - 이는 랍비들의 학교에서 전문적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평범한 사람을 의미한다.

 

 

 

[4: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 이 말은 그들이 사도의 증거에 대하여 반박할 만한

아무런 수단을 강구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13절과 본 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본래 학문 없는 범인이었던 사도들이 기탄없이 말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2) 예수와 함께 있던 예수의 제자들임을 알았기 매문이다.

(3) 무엇보다도 이전에 앉은뱅이였던 자가 사도가 말한 것들에 대한 산 증거로서

그들의 목전에 당당히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어찌할 수 없이 그들이 궁지에 몰려 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이다.

이는 일찍이 예수께서 하신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면박할 수 없는 구제와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리라"(21:15)는 약속이 성취된 것이며

 

주께서 살아 계셔서 복음을 전하는 그 제자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보여준다.

 

(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4: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 '공회'는 그 재판과 심문이 진행되었던 법정을 말한다.

공회원들은 사도의 변증에 대해 답변할 마땅한 고소거리를 찾지 못하여 그들끼리

의논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므로 사도들을 밖으로 나가도록 명하였다.

 

서로 의논하여 - 공회가 심문하려 했던 피고들이 대담하고 확신에 차서 자신들의

무죄를 변론하고 증거를 내세우자, 이제 피고를 회의실에서 내보낸 후

심의(審議)에 들어간 모습이다.

 

'의논하여'는 따라서 공회원들이 주도적으로 회의를 따로 소집하여 계속해서

의논을 거듭했음을 보여준다.

즉 배심원들의 논리와 결정을 거쳐 판결을 내리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4: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해 수 없는지라 - 그들이 곤경에 처하게 된 이유를 말해준다.

 

'유명한 표적''알려진 표적'이란 뜻으로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고침 받은 사건을 말한다.

예루살렘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의 이름으로 표적이 나타난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었다.

 

 

 

[4: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

 

사도들의 변론은 이미 잘 알려진 증거가 있었으므로, 결국 법적으로 심문할 근거를

찾지 못한 그들이 택한 결정은 사도들을 위협하여 더 이상 아무에게도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지 못한 것은 백성의 여른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권력의 자리에 앉은 자들은 민심의 동향에 민감하다.

 

예수께서 유일한 구주라는 것과 친히 살아 계심을 부인할 수 없도록 증거가 보여졌고,

사도 베드로의 증언에 의해서 그런 예수를 죽인 죄가 그들에게 있음이 백일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정은 자기들의 교세만을 고수하고자 하는 부당한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얼마나 타락하고 그 양심이

마비되었는가를 시사해 준다.

 

 

 

[4: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직 자기들의 교권(敎權)을 유지하기에만 급급한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의 완악함을 볼 수 있다.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이스라엘의

최고 법정 산헤드린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공회의 결정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사도들의

단호한 태도는 실로 대담한 도전이다.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용기가 생긴 근거를 살펴보면,

 

(1)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사도들은 앉은뱅이가 일으킴을 받는 표적을 통하여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자기들과 함께 하심을 직접 확인하였고,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28:20)고 하신 약속의 말씀을

믿었기에 이처럼 대담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믿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다.

 

(11:38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2) '하나님 앞에서'는 사도들의 선언에서 볼 수 있듯이 항상 하나님의 임재,

즉 하나님의 면전에 서 있다는 신앙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나님의 임재를 믿고 확신하며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의식이 사도들에게 용기를 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임재해 계시는 앞에서 과연 너희 말을 순종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옳은지 판단해 보라고 한 것이다.

 

'판단하다''분석하고 분별해 보다'는 뜻이다. 사도들은 공회원들의 양심에 호소하며,

그들이 '()'를 떠나 불의하게 판결을 내리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

 

타협할 수 없는 사도들의 확고부동한 입장을 공회 앞에 재천명하는 이 구절은

원어상으로 보면 두 가지 강조 어법이 돋보인다.

 

(1) 이중 부정으로 강력한 긍정을 표현하는 어법을 사용함으로 반드시 말해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시했다.

 

(2) 동사와 주어를 뒤바꾸어 쓰면서, 지시대명사인 '우리는'(헤메이스)을 사용하여

'우리'에 강조점을 두었다.

 

즉 목격자로서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보고 들은 것'이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살아나신 부활 사건을 의미한다.

 

이처럼 사도들은 인간의 권위와 하나님의 권위가 충돌할 때

자신들이 보고 듣고 확신하는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편을 택했다.

이것은 생명을 건 각오를 한 것이다.

 

 

 

[4: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

 

공회원들은 의회의 결정이 피고인들로부터 공개적으로 거부되고,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들은 속수무책이 되자 고작 우격다짐 식으로

협박을 반복할 뿐이었다.

 

그들이 '벌할 도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사도들을 징벌할 방도가 도무지 없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저들이 택한 것은 다시 위협하는 일뿐이었다.

 

'다시 위협하였다'는 것은 '더욱더 위협하였다'는 의미인데,

공회의 일차 경고가 무시되었기 때문에 재차 가중한 위협을 하였음을 의미한다.

 

공회가 이런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누가가 밝힌대로 '백성을 인하여'이다.

 

이는 기적이 가져온 효과를 보여준다.

즉 사도들이 행한 표적을 목격한 군중들의 열기는 대단했으니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에까지 이르렀다.

때문에 공회는 사도들을 처벌해야 하는 것과 백성의 반응 사이에서 전전긍긍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백성의 마음을 잃지 않고 환심(歡心)을 사기 위해

늘 애쓰는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공회는 어쩔 수 없이 사도들을 다시 위협하여 석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회원들은 하나님과 진리보다는 자기들의 교권 유지를 위해

대중을 더 무서워하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들이었다.

 

 

 

[4: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

 

누가는 고침 받은 앉은뱅이의 연령을 '사십 세 이상'이라고 명시함으로써

고침 받은 자가 날 때부터 만성적인 병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3:2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이처럼 오랫동안 앉은뱅이로서 정상적인 삶을 살지도 못하다가

전혀 기대하지도 못했던 기적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인간의 능력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발생하였기 때문에

모든 백성은 놀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