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고타·산티아고=조의준 특파원
콜롬비아 TV시장 80% 점유
LG주최 댄스대회 대성황…
한국서 만든 타이어만 찾고 美·日에 가격경쟁 안 밀려
지난 25일 저녁 콜롬비아 보고타의 '스포츠 궁전' 체육관에선 LG전자가 주최하는 '남미지역 비보이 챔피언십 결승전'이 열렸다. 3000여명의 젊은이가 몰린 이날 결승전은 한국의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공연으로 시작했다. 발레리나가 비보이를 좋아하게 된 내용을 담은 이 공연에선 한국 비보이들의 현란한 동작들이 쏟아졌다.브라질과 멕시코·콜롬비아·칠레 등 8개 나라 대표팀이 참가한 대회였지만 주인공은 '코리아'였다. 대회 시작과 중간에 한국팀이 등장했고, 3명의 심사위원 중 한 명도 한국인이었다. LG전자 손원성 차장은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남미의 젊은이들에게 비보이는 한국의 새로운 문화 아이콘"이라며 "대회를 통해 한국 제품은 새롭고 유행을 선도한다는 이미지를 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말했다.
남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코리아'를 팔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한국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거의 없는 남미인들에게 한국은 갈수록 '첨단 기술'과 '새로운 문화'를 상징한다. LG와 삼성 같은 대기업들이 더러 일본 기업으로 오인돼도 적극적으로 해명하지 않았던 시절과는 판이하다. 실제로 한국의 국가 호감도는 칠레에서 10위, 멕시코 11위, 콜롬비아 13위를 차지한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의 이성형 교수는 "선두권인 중국·일본보다는 아직 낮지만, 단기간 내에 영국·프랑스 등을 제쳤고, 호감도가 7~8위권인 미국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 ▲ 지난달 25일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열린‘남미지역 비보이 챔피언십’결승전에서 한 비보이가 춤추는 모습 . 뒤쪽에 LG전자 로고가 요란하다./보고타=조의준 특파원
그러나 남미에선 이 법칙이 통하지 않는다. LG전자 칠레 법인은 글로벌 광고회사인 영앤루비컴(Y&R)에 최근 '어떻게 하면 좋은 가격(value for money)의 제품에서 사고 싶은(willing to pay) 제품으로 발전하겠는지'를 조사 의뢰했다. Y&R의 결론은 "LG에 한국 기술과 문화가 스며 있다는 것을 더 알려야 한다"며 "칠레 사람들이 한국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의 발달한 IT기술과 문화가 소개되면 될수록 LG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국가 브랜드'도 선점(先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콜롬비아 지사의 권준서 과장은 "콜롬비아는 남미의 유일한 6·25전쟁 참전국이어서 한국과 혈맹(血盟)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한국산 이미지가 일본산에 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콜롬비아 반군 탓에 치안이 극도로 혼란했던 1990년대에 일본 기업들은 모조리 철수했지만, 한국기업들은 오히려 영업을 확대했다. 그 결과 콜롬비아 TV시장의 약 80%를 한국 기업들이 '점령'해 일본의 가전업체들은 추격을 포기하는 상황이 됐다고 한다.
칠레는 아시아에선 2004년 한국과 제일 먼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다. 때마침 원자재 붐을 타고 칠레의 국민소득은 1만달러 안팎에 도달하면서 소비시장이 폭발하기 시작했고, 가격 경쟁력과 품질을 겸비한 한국차와 가전제품들이 대거 상륙했다. 중국(2006년)과 일본(2007년)이 뒤늦게 FTA를 체결했지만, 이미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칠레 소비자들에게 깊이 각인된 뒤였다. 2007년 한국산(産) 차가 일제 차를 제치고 1위로 올라섰고, FTA 발효 후 휴대전화 수출은 연평균 54.8%씩 급증했다.
- ▲ 콜롬비아 젊은이들이 이 공연을 보며 환호하는 모습. LG전 자가 개최한 이 대회는‘비보이=한국’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세심하게 기획된 행사다./보고타₩산티아고= 조의준 특파원 joyjune@chosun.com
현재 한국에서 워크아웃 상태인 전자제품 회사도 별 마케팅을 하지 않고도, 칠레의 세탁기·냉장고·전자레인지 시장에서 대부분 LG·삼성에 이어 2~3위를 기록한다. 비결은 '메이드 인 코리아'다. 산티아고 남쪽의 초대형 쇼핑몰인 캘리포니아 센터. 전자제품 매장에서 만난 글라디스(Gladys·여·53)씨가 LG 세탁기를 만져보면서도 비싼 가격에 선뜻 마음을 정하지 못하자, 판매원 후안(Juan)씨가 잽싸게 다른 제품으로 안내했다. "저기 있는 세탁기도 한국산이지만 가격은 10~20% 정도 더 저렴해요." 글라디스씨는 결국 이 세탁기를 샀다. 이 냉장고도 문을 열면 'Made in Korea'라는 표시가 바로 눈높이에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