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거듭난 삶 2023. 11. 25. 00:18
728x90

고넬료 가()의 성령 강림 2

 

성 경: [10:9-16]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10: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

 

고넬료가 보낸 심부름꾼들은 최소한 전날 오후 3시 이후부터 그 다음날 정오 12시경까지 약 20여 시간을 소요하여 욥바에 당도했다.

 

이에 대해 혹자는 밤을 세워 50km의 거리를 걸어서 가기에는 곤란하다는 점에서 말을 타고 갔을 것으로 가정한다(Bruce).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 베드로가 기도하러간 지붕은 헨헨(Heanchen)의 말처럼 통풍이 잘되고 햇빛이 잘 드는 옥상을 가리킨다.

 

(22:8 네가 새 집을 건축할 때에 지붕에 난간을 만들어 사람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라 그 피 흐른 죄가 네 집에 돌아갈까 하노라;

 

왕하 23:12 유다 열왕이 아하스의 다락지붕에 세운 단들과 므낫세가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세운 단들을 왕이 다 헐고 거기서 빻아내려서 그 가루를 기드론 시내에 쏟아버리고;

 

19:13 예루살렘 집들과 유다 왕들의 집들 곧 그 집들이 그 집 위에서 하늘의 만상에 분향하고 다른 신들에게 전제를 부음으로 더러워졌은즉 도벳 땅처럼 되리라 하셨다 하라;

 

1:5 무릇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에게 경배하는 자와 경배하며 여호와께 맹세하면서 말감을 가리켜 맹세하는 자와;

 

5:19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아마 피장 시몬은 베드로가 머무는 동안 그곳을 기도처로 예비한 것 같다.

 

제 육시 - 시각은 낮 열 두 시로 유대인들의 기도 시간과 상관없다. 따라서 본절에서 베드로는 유대인의 습관과는 상관없이 기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시간적 언급은 베드로의 환상에서도 언급되는 바처럼 유대교의 종교적 관습을 타파하려는 선교적 동기를 암시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10:10]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시작하여 먹고자 하매 -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으려 하는 베드로의 심리 상태를 그린 본문은, 곧이어 언급되는 환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보통 유대인들은 오전 기도 시간(9)을 지나서 아침 식사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기도를 시작한 즉시(12시경)에 배고픔을 느낀 것이 아니라 아마 기도하러 옥상에 올라가서 상당한 시간에 걸쳐 기도하던 중 배고픔을 느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누가는 환상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언급했을 것이다.

 

따라서 다음에 나오는 환상을 먹고 싶은 베드로의 욕구 때문에 나타난 환각과 천청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아마도 누가는 환상이 사람의 일상적인 삶을 매개로 하여 일어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비몽사몽간에 - 이 말은 환상을 경험하는 베드로의 심리 상태를 묘사하는 말로서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심리 경험을 묘사하는 말이다. 여기서는 '환상'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10: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하늘이 열리며 - 이 말은 매우 문학적이며 심정적 표현으로 베드로의 경험이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온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이 표현은 환상에 대한 신약적인 표현 방식으로(7:56;3:16;19:11) 하나님의 직접적인 계시를 나타낸다.

 

(7: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3:16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 개역성경은 여러 소문자 사본에 따라 번역했으나, 권위 있는 시내산 사본과 알렉산드리아 사본(A)'매어'란 단어가 생략되어 있다. 생략된 대로 직역하면 '네 모퉁이로 땅 위에 머물렀다'란 표현이 되어 그 뜻이 매우 애매 모호하게 된다.

 

이는 보자기 같은 그릇의 네 귀가 땅에 드리워진 모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지 않고 개역 성경처럼 번역되면 그 그릇의 네 귀가 매여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이 강조된다.

 

그런데 여기서 보자기 같은 것이란 표현으로 보아 네 귀가 매여 땅 위로 드리워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그것의 네 귀퉁이가 동서남북 사방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으며 하늘로부터 땅 위로 내려왔다는 점에서 땅 위의 모든 영역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Lange, Bengel, Neander).

 

즉 환상에서 보여주듯이 정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구별을 파기한 것처럼 유대의 배타적 선민의식(選民意識)도 파기되고, 하늘이 온 세상을 덮듯이 온 세계가 유대인과 이방인 곧 민족적 구별이 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암시하고 있다.

 

 

 

[10: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 - 짐승들에 대한 이 목록은 창 1:24, 25을 연상하게 하는 데 아마도 여기서는 하나님의 거룩한 피조물임을 암시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24-25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즉 이 짐승 목록은 14절로 보아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부정한 짐승이라고 규정하여(11; 14:3-20)상종하지 않으려 했던 짐승들을 가리킨다.

 

(14:3-20 너는 가증한 물건은 무엇이든지 먹지 말라

4) 너희의 먹을 만한 짐승은 이러하니 곧 소와 양과 염소와

5) 사슴과 노루와 불그스럼한 사슴과 산염소와 볼기 흰 노루와 뿔 긴 사슴과 산양들

6) 무릇 짐승 중에 굽이 갈라져 쪽발도 되고 새김질도 하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라

7) 다만 새김질을 하거나 굽이 갈라진 짐승 중에도 너희가 먹지 못할 것은 이것이니 곧 약대와 토끼와 사반 그것들은 새김질을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아니하였으니 너희에게 부정하고

8) 돼지는 굽은 갈라졌으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런 것의 고기를 먹지 말 것이며 그 사체도 만지지 말 것이니라

9) 물에 있는 어족 중에 이런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니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것은 너희가 먹을 것이요

10) 무릇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너희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에게 부정하니라

11)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12) 이런 것은 너희가 먹지 못할지니 곧 독수리와 솔개와 어응과

13) 매와 새매와 매의 종류와

14) 까마귀 종류와

15) 타조와 다호마스와 갈매기와 새매 종류와

16) 올빼미와 부엉이와 따오기와

17) 당아와 올응과 노자와

18) 학과 황새 종류와 대승과 박쥐며

19) 또 무릇 날기도 하고 기어 다니기도 하는 것은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먹지 말 것이나

20) 무릇 정한 새는 너희가 먹을지니라)

 

여기서 창조물의 목록 중 물고기가 빠져 있다. 아마도 물이 없는 공중의 그릇이라는 이유로 물고기를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Weiss, Knowling).

 

 

 

[10: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잡아 먹으라 - 누구의 음성인지 전혀 언급없이 베드로에게 보여준 짐승들을 잡아 먹으라는 명령문이 언급되고 있다. 이 명령은 10절에서 베드로가 배가 고파 먹을 것을 준비했다는 진술과 상응하고 있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먹고자 하는 식욕 앞에, 제공된 짐승을 잡아먹으라는 명령은 매우 반가운 제안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명령에 베드로를 시험하는 의도가 내포된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명령은 베드로의 대답을 예견한 명령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에 대한 베드로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것이었다.

 

 

 

[10: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 베드로의 대답은 당시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대표적 생각을 나타낸 것뿐이다. 즉 그의 대답은 생활과 종교 영역에서 뿐만 아니라 먹는 음식에까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는 유대인들의 이분법적 사고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편 베드로는 '결코...아니다'라는 강한 부정어를 사용하여 전면적으로 주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다.

 

이 같은 부정적 대답은 주의 명령을 거부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이 얼마만큼 철저한 율법적 생활인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 같은 베드로의 대답은 모든 유대인들의 대답으로 상징될 수 있다.

 

(4:14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죽은 것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을 먹지 아니하였고 가증한 고기를 입에 넣지 아니하였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 - 본 구절은 베드로가 그 짐승들을 잡아먹을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다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1) 제공된 짐승이 종교적으로 부정한 짐승으로서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먹지도, 가까이하지도 않는 속()된 것이기 때문이다.

(2) 자신이 어려서부터 이 짐승들을 멀리하고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철저하게 구별하며 살아온 바처럼 지금도 지켜야 될 규범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역시 이 같은 베드로의 대답은 유대인들의 일반적 견해다.

베드로는 아직 환상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10: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니 말라 - 이 말은 곧 유대인들이 이제까지 전통적으로 규범시해 왔던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를 뒤엎는 타격적 선언이다. 이 같은 메시지는 이미 12절에서 짐승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연상케 하고 11절에서 하늘이 열리고 짐승들을 담은 그릇이 땅에 늘어져 닿았다는 표현 속에 암시되어 있다.

 

본 절에서 하나님의 선언은 베드로에게 보인 짐승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고 있다. 본 구절은 당시 속되다고 인식되던 것을 깨끗하다고 하나님께서 선포하시면 속되지 않다는 의미를 지니므로 전통적인 유대인들의 사고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의 이분법적 상상들을 인간 구원이라는 차원에서 파기(破棄)하고 일치와 화해, 용서와 사랑의 시대를 선언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 같은 메시지는 초기 기독교의 중요한 과제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0: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 여기서 말하는 '이런 일'이 이제까지 묘사된 환상을 말하는 것인지 15절에서 언급된 음성,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속되다 하지 말라'는 선언을 뜻하는 것인지 아니면 베드로가 계속 명령을 거부하기 때문에 세 번씩 같은 말을 반복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어쨌든 저자 누가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속된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명령에 대해 베드로의 거부가 세 번 반복되었다는 데 있다.

 

즉 전통적으로 세 번 반복하는 형태가 지극히 강조적 묘사라는 점에서

 

(21:15-17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16) 또 두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양을 치라 하시고

17) 세번째 가라사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가로되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양을 먹이라),

 

 

본 절의 세 번 반복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보이신 환상이

 

(1) 매우 명백했다는 사실과

(2) 베드로가 반드시 실천해야 할 사실과 관련이 있음,

(3) 베드로가 유대적인 전통을 하나님 앞에서 고집했음을 의미한다.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 베드로가 체험한 환상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이 구절은 11절의 '땅에 드리웠더라'는 표현과 대응되는 구절이다.

 

즉 하늘로부터 내려왔던 그릇과 짐승들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 묘사는 이야기 전체가 나타내고 있는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유대인들이 거룩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하늘에서 그들이 속되고 부정한 것이라고 규정하는 짐승들이 내려오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통적 사고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며, 그들이 속되고 부정하다고 판단한 것들이 깨끗하고 거룩된 것이 될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예수가 세상에 오심 이후부터 깨끗하고 부정한 것의 구별이 없고 이방인과 선민이라는 구별도 파기되었다.

 

(고전 10:25-26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