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거듭난 삶 2023. 11. 26.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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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넬료 가()의 성령 강림 3

 

 

성 경: [10:17-23]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가로되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새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10: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 '의심하더니'는 본래 출구가 없는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아직 베드로는 환상의 의미를 파악하고 있지 못함이 분명하다.

 

마침 - 이 말은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한 시각을 알 수 있는 단서로 베드로가 환상을 본 직후 도착했음을 의미한다. 이 시각이 베드로의 기도 시작 시간인 정오였는지 아니면 정오가 지난 어느 시간인지는 정확하지가 않다.

 

 

 

[10:18] 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우거하느냐 하거늘

 

우거하느냐 - 이는 '거주하다'는 의미와는 달리 손님으로서 잠시 유숙(留宿)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 보아 베드로는 피장 시몬의 집에 오랫동안 머문 것이 아니라 손님의 자격으로 잠시 머무른 것 같다.

 

 

 

[10:19] 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 - 이 말은 17절의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베드로는 자신이 보았던 환상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으므로 그것을 깨닫고자 고민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환상의 의미를 깨닫기 위해 기도하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 비록 베드로는 환상 가운데 있지도 않았으며 기도하고 있지 않았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이는 성령의 역사가 아무런 제한 없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누가는 그 음성이 성령에게서 비롯되었음을 밝히면서 조금 전의 환상과 구분시키고 있다. 이 같은 묘사는 초기 사도들의 활동이 철저하게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숨은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 베드로를 찾는 이들이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라면

 

(17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두 명이 아니라 두 명의 하인과 한 명의 종 졸을 포함해서 모두 세 명이어야 하는데

 

(7마침 말하던 천사가 떠나매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

 

여기서는 두 명이라고만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두 명이란 표현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언급된 두 명은

고넬료의 직접적인 사명을 부여받은 두 사람을 가리키며 그들을 호위한 종 졸은

그 수에 포함되지 않았을 뿐이기 때문이다.

 

 

 

[10:20] 일어나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내려가 의심치 말고 함께 가라 - 내려가라는 성령의 지시는 베드로가 기도하기 위해 지붕 위에 올라간 후 아직 내려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편 성령은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유없이 무조건 두 말하지 말고 그들을 따라가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것은 성령의 주권적인 역사를 암시한다.

 

내가 저희를 보내었느니라 - 고넬료로 하여금 하인을 베드로에게 보내도록 지시한 이가 4절에서는 하나님의 사자 곧 천사들로 묘사된 반면, 여기서는 성령으로 언급되었다. 따라서 천사와 성령이 동일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3,4절의 천사는 환상 중에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로서 묘사되지만 본 절의 성령은 환상 중이 아니라 음성으로 직접 말씀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된다.

 

따라서 결코 동일한 표현으로 볼 수 없다. 특히 본 절에서 '내가'(에고)가 강조됨으로써 그 음성의 주제가 하나님이심을 부각시키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성령'이란 표현이 적절하다.

 

 

 

[10:21] 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가로되 내가 곧 너희의 찾는 사람이니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무슨 일로 왔느냐 - 베드로는 성령의 지시에 담긴 의미를 알고 싶은 마음에서 다른 말보다도 제일 먼저 그들이 온 목적에 대해서 물었다.

 

이로 보아 아직도 베드로는 환상과 두 사람의 방문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

 

 

 

[10:22] 저희가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저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너를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대

 

의인이요 - 유대인들이 말하는 의인은 율법 준수의 기준에 따라 구분되었다(Lenski).

 

그런데 고넬료는 유대교로 개종한 자도 아니고 더욱이 유대인들을 지배하는 로마의 군인이기에, 그에게 붙여진 의인이라는 말은 매우 파격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의인이라는 표현을 유대인들이 고넬료에게 직접 사용한 것인지 아니면 두 하인이 그렇게 표현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가 비록 유대교로 개종하지는 않았지만 회당 예배에 참석했다는 전제하에서 유대인들에 의해 고넬료의 경건한 삶이 인정되었을 것이며, 그에 따라 그는 의인으로 칭송받았을 것이다.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 베드로와 대면한 고넬료의 하인들은 먼저 자신들을 보낸 주인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그 소개의 내용 중 유대 온 족속들이 고넬료에게 하고있는 칭찬을 언급한 것은 베드로가 유대인이므로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본 구절은 하인들이 베드로를 설득시키기 위해 특별히 언급한 이야기로 이해된다.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 계속해서 집중적으로 강조되는 점은 이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행위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4절에서 언급되었던 '천사'(앙겔로스) 앞에 '거룩한' 명령임을 시사하고 있다.

 

(4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또한 '지시하다'라는 말에는 고넬료가 받은 지시가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명령이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방인에 대한 선교는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임을 베드로로 하여금 깨우쳐 주고 있다.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 ''에는 생동감 있는 말씀을 의미한다. 여기서는 베드로의 입을 통해 나오는 성령에 감동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은 베드로의 설교뿐 아니라 간증이나 예수 사건에 대한 베드로의 증언 등을 포괄하고 있다.

 

 

 

[10: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새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베드로가 불러들여 - 방문객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후 그들을 집 안으로 영접한 베드로의 행위는 그 방문객들이 이방인이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의를 지닌다.

 

즉 베드로가 그들의 말을 신뢰하였다는 뜻과 함께 이방인을 한 형제로서 용납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유대인인 베드로가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을 시몬의 집으로 영접한 것은 아직 이방인과의 접촉이 신학적으로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 비추어 보아 잘 이해되지 않는다.

 

아마 베드로는 그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자신이 본 환상의 의미를 깨달았으므로 그렇게 행동한것 같다.

 

유숙하게 하니라 -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을 집으로 불러들이고 함께 잠을 자게 한다는 사실은 당시에 매우 반 유대교적 행위로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11:1-3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3) 가로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그럼에도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된 베드로는 자신이 경험한 환상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게 되어 이제 무할례자인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버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베드로가 그들을 유숙하게 한 것은 그들이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왔으므로 다시 가이사랴까지 가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던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본 절의 핵심은 이방인을 전적으로 용납하였다는 사실에 대한 강조다.

 

욥바 두어 형제 - '두어'로 번역된 부정대명사 '티네스'는 확정되지 않고, 또한 많지도 않은 수효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런데 11:12에서 여섯 명이 베드로와 함께 고넬료의 집으로 갔다고 언급되어 있으므로 본 절에서 언급된 형제는 세 명이 분명하다.

 

(11:12 성령이 내게 명하사 아무 의심 말고 함께 가라 하시매 이 여섯 형제도 나와 함께 가서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가니)

 

이 표현상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해결할 수 있다.

누가는 본 절은 관찰자의 입장에서 기록하고,

11:12은 베드로의 고백의 입장에서 기록되었으므로 베드로의 고백 부분에서는

정확한 숫자가 언급되어 그 고백의 사실성을 드러낸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누가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므로 정확한 숫자를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한편 욥바에서 세 사람이 베드로를 동행하게 된 이유에 대해

본문에서 명백하게 언급되지 않고 있다.

 

다만 다음 두 가지로 추측할 수 있다.

 

(1) 이방인에게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그 세 사람이 목격하고

증인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함

(2) 아직도 고넬료가 보낸 사람의 신분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베드로가

그들과 동행하게 되어 혹시 어려움에 처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