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거듭난 삶 2023. 11. 27. 00:08
728x90

고넬료 가()의 성령 강림 4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

 

 

성 경: [10:24-33]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

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30)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 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10: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 본 구절에서 구체적 도착 시간은 언급되지 않고 욥바로부터 출발한지 이틀째 되어 가이사랴에 도착했다고 언급되었다.

그런데 30절에 따르면 고넬료가 환상을 체험했던 그때와 어느 정도 일치함을 밝히고 있다.

 

(30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 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그렇다면 그들은 오후 3시를 전후해서 가이사랴에 도착했을 것이다.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 이는 고넬료가 환상을 굳게 믿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며 동시에 형제 사랑과 신앙에 대한 강한 열정을 보여준다. 만약 그에게 그 사랑과 열정이 없었다면 자기 가족만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친족과 친구들까지 초청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자 했으며 함께 구원의 은혜에 동참하고자 원했다.

 

 

 

[10: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

 

베드로가 들어올 때 - 고넬료가 베드로를 맞이한 장소가 고넬료의 집인지 가이사랴로 들어가는 어귀인지 구분할 수 없다.

어떤 사본(D)에서는 베드로가 도시로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으나 24절의 정황으로 보아 집으로 들어올 때라고 보는 것이 문맥상 적절하다(Haenchen).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 고넬료가 베드로를 마중할 때 보여준 자세는 마치 신적인 존재나 로마 황제를 대하는 듯하였다. 이는 당시에 사도들이 지녔던 권위를 보여주며 또한 고넬료의 겸손하고 순수한 성품을 나타낸다.

 

특히 고넬료가 베드로를 대할 때 신적인 권위 앞에 서는 것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베드로를 환상 중에 경험한 천사의 말과 관계된 사람으로서 특별히 선택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참조 : (5네가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10:26]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나도 사람이라 - 고넬료의 행위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은 신적 권위를 사양하며 동등한 사람임을 전제하고 있다.

 

이 같은 베드로의 행위는 겸손을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으나 한편으로는 사도와 일반 성도는 하나님 앞에 동등한 사람으로서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있을 수 없는 것임을 시사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고넬료가 로마 군인이라는 점에서 그의 경배 행위가 로마인들의 황제 숭배와 관련된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인간에 대한 신적인 숭배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암시와 함께 로마 황제에 대한 숭배를 부정하는 의도를 가지고 이러한 말을 했을 것이다.

 

 

 

[10:27]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의 모인 것을 보고

 

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 누가는 이 표현을 통해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음을 강조하려 했을 것이다.

 

즉 베드로가 이방인에 대해 지니고 있던 배타적 우월감을 버리고 15절에서 지시한 주의 말씀을 따라 이방인을 한 형제로 용납하였음을 보여준다.

 

(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한편 이 같은 베드로의 행위는, 17절에서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한 환상의 의미에 대해 고심했지만 지금은 그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0:28]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위법인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 고넬료 집 안에 모여 있는 고넬료의 가족과 가까운 친구들(24)을 향해 베드로는 자신의 방문에 대한 정당성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유대인들의 전통적 관습을 언급하고 있다.

 

(24 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즉 신 7:3, 4규정을 확대 해석하여 모든 이방인과의 교제를 죄악시하고 이방인들이 만들어 낸 물건이나 식품까지도 부정한 것으로 대했던 유대인들의 관습에 따르면 베드로 자신의 고넬료 집 방문은 유대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행위였다.

 

(7:3-4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4)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이러한 사실을 고넬료와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상기시킴으로써 베드로는 자신의 행위가 일종의 모험임을 강조했다.

 

 

 

[10:29] 부름을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뇨

 

사양치 아니하고 왔노라 - 여기서 언급된 '사양치 아니하고''대하는 말을 할 수 없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는 베드로가 고넬료가 보낸 사람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는 이유를 강조해 준다.

 

 

 

[10:30] 고넬료가 가로되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홀연히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나흘 전 이맘때까지 - 고넬료가 환상을 체험한 날로부터

 

(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나흘이 지났음을 밝히고 있는데, 고넬료의 하인들이 이틀 만에 욥바에 도착하였고

 

(9 이튿날 저희가 행하여 성에 가까이 갔을 그 때에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에 올라가니 시간은 제 육 시더라)

 

욥바서 하루를 묶고

 

(23 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 이튿날 일어나 저희와 함께 갈새 욥바 두어 형제도 함께 가니라)

 

욥바에서 가이사랴까지 이틀 걸려 도착하였으므로 34일이 지난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흘'이란 표현은 타당하다.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 본 구절은 3, 4절에 언급된 천사에 대한 묘사로 70인역 자료를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Haenchen).

 

(3-4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4) 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희고 빛난 옷은 거룩한 천사의 옷으로 자주 묘사된다.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28:3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16:5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24:4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10:31]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 4절과 내용상 같다. 다만 4절보다 간략하게 진술되고 있을 뿐이다.

 

용어상의 차이로 4절에서는 '상달하여'가 사용되었으나 본 절에서는 '들으시고'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의미상 아무런 차이는 없다.

 

(4고넬료가 주목하여 보고 두려워 가로되 주여 무슨 일이니이까 천사가 가로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10:32]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하시기로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저가 바닷가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느니라 - 이 부분의 헬라어 본문은 세 가지로 읽혀지고 있다.

 

(1) '바닷가'란 말이 생략되었다.

(2) '바닷가' 다음에 '와서 너에게 말할 자'가 첨가되어 있다.

(3) 개역성경과 같은 독법을 취한다.

 

여기서 대부분의 사본들은 (2)의 독법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청하라'는 말속에 (2)의 첨가된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누가는 앞의 사건을 간략하게 묘사하고 있으므로 (2)의 독법은 타당하지 않다. 따라서 (3)의 독법이 가장 무난하다.

 

 

 

[10:33]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하나님 앞에 - 본 구절이 사본에 따라 조금씩 달리 표현되어 있다.

 

(1) '하나님 앞에, 대부분의 사본이 이 독법을 취한다.

(2) '주님 앞에', 몇몇 소문자 사본이 이 독법을 따른다.

(3) '당신 앞에', 서방 사본과 역본이 이 독법을 따른다.

 

(3)의 독법에 따르면 베드로의 권위가 강조되지만 (1)(2)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자세를 지닌 고넬료의 모습이 강조된다.

 

특히 '하나님 앞에'라는 표현은 구약에서 '여호와 앞에서'와 함께 자주 사용되어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순종과 경건을 나타낸다. 따라서 본 구절에서는 '하나님 앞에'가 가장 무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