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거듭난 삶 2023. 12. 4. 00:09
728x90

야고보의 순교 및 베드로의 투옥

 

성 경: [12:1-5]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12: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그 때에 - 이야기의 무대가 다시 유대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그 시점이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그 때는 헤롯왕이 통치하던 시기이며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扶助)를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하기 이전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바나바와 사울은 헤롯왕이 죽은 후에 방문한 것으로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12:23-25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연대기적으로는 A.D.44년으로 볼 수 있는데 그것은 헤롯이 44년에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Thomas Whitelaw).

따라서 여기서 언급되는 이야기의 시점은 헤롯이 죽던 해, A.D.44년 유월절 전후로 볼 수 있다.

 

(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헤롯 왕이 - 여기서 언급된 헤롯 왕은 헤롯 대왕(B.C.37-B.C.4)의 손자인 아그립바 1(Agrippa I, A.D.37-44)를 가르킨다. 그는 로마 황실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성장했으면서도 티베리우스(Tiberius) 황제 때 투옥되기도 하였다.

 

그가 유대와 사마리아의 통치권을 받게 된 것은 A.D.41년 갈리굴라(Caligula)가 암살당한 후 글라우디오(Claudio)가 황제로 즉위할 수 있도록 공헌한 데 대한 대가였다.

 

그는 친유대교적인 정책을 펴면서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노력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본장에서 역시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기독교인을 탄압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Lenski).

 

손을 들어 - 이 말은 헤롯에 의하여 기독교회에 박해가 시작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문학적 표현으로서 박해에 대한 헤롯의 직접적인 개입을 묘사하는 것이다.

 

그런데 4:35:18에도 이와 유사한 문장이 언급되는데 체포의 의미로 번역하고 있다.

 

(4:3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5: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그렇지만 본절에서는 하반절과 2절에서 박해에 대한 구체적 진술이 나오므로 `체포하다'란 의미보다 `박해의 손을 뻗치다'로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 중 몇 사람 - 교회, 즉 기독교 공동체에 속해 있는 몇 사람이 박해의 대상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몇 사람이라는 말이 교회 전체를 지칭하는 것인지 아니면 2,3절에서 언급된 대로 야고보나 베드로와 같은 몇몇 지도자를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여기서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고 보면 교회에 대한 헤롯의 박해가 전체 기독교인들에게 미쳤을 것이고 또한 그는 그중 몇 사람을 체포하여 죽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박해의 대상을 몇 사람으로 언급하여 헤롯이 유대의 교권주의자들에게 환심을 사기 위해 시범적으로 몇 사람을 체포하여 죽이거나 투옥했던 사실을 보여 주고자 했던 것 같다. 따라서 헤롯에 의해 교회 전체가 핍박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해하려 하여 - `악을 행하다' 또는 `상처를 입히고 고통당하게 하다'이 뜻의 `카코오'70인역에서 60회 이상 사용된 단어이다(Haenchen).

본절에서 이 단어는 고통을 주거나 심지어 죽이는 것과 같이 핍박과 관련된 악행 행위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12:2]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요한의 형제 야고보 - 사도 중에서 첫 순교자로 언급되는 요한의 형제 야고보는 세베대의 아들로 언급되고 있다.

 

(4:21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10: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그의 아버지 세베대는 어부이면서 선주(船主)였던 것으로 보인다.

 

(1:20 곧 부르시니 그 아비 세베대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5: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야고보는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세 명의 수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급하고

 

(9:53-54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는 고로 저희가 받아 들이지 아니하는지라

54)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가로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 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이기적인 성격이었으므로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는 그에게 `우뢰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을 지어주기도 하였다.

 

(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뢰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그런데 이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나

 

(1: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예수의 동생 야고보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15: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21: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12:3]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 사도 야고보를 처형한 헤롯의 행동에 대해 유대인들이 매우 흡족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묘사된다.

 

`기뻐하다'로 번역된 `아레스토스'`기분이 좋은' 또는 `만족한' 상태를 나타내는 동사적 형용사인데 헤롯의 행위가 유대인들을 크게 만족시켰다는 뜻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헤롯의 이같은 행위에는 유대인들을 만족시키고 유대인들로부터 환심을 사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까지 옥에 가둔 헤롯의 행위는 백성들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어 광분하는 독재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잡으려 할새 - 야고보의 참수형을 보고 기뻐하는 유대인들의 반응에 고무되어 헤롯은 베드로까지 손을 뻗쳤다.

베드로가 제자들 중 우두머리 역할을 했으므로 헤롯은 그를 잡게 되면 유대 지도자들이 자기를 더욱 지지할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한편 본 구절에서 두개의 동사형이 함께 나온다.

 

즉 개역 성경에는 정확하게 그 두 동사의 의미가 번역되지 않았으나 헬라어 본문에 따라 본 구절을 직역하면 `추가하여 체포하다'란 의미로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는데 그치지 않고 또 다시 베드로를 체포하려 했다는 의미가 강조된다.

 

특히 여기서 사용된 두 단어는 70인역에 나오는 히브리적 구문인데

 

(4: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8: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어 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18:29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누가는 이와 같은 표현을 통해 유대인들과 헤롯이 기독교를 박해한 공범임을 강조하고 있다.

즉 누가는 복음서에서와 같이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유대 민족으로부터 나왔음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복음서에서 누가는 유대의 지도자 계급, 즉 사두개파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은 기독교에 대해 우호적인 것으로 묘사해 왔다.

그러나 여기서는 유대 대중들도 기독교의 박해에 묵시적으로 동조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때는 무교절이라 - 베드로가 체포되었던 시기가 무교절(無較節) 기간임을 말하고 있는데

 

참조 : (22: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4절에서 언급된 유월절을 니산월 14일 저녁 유월절 식사로 제한 한다면 군사들이 베드로를 유월절이 지난 후에 백성들에게 내어 놓자는 이야기를 했다는 점에서 베드로의 체포 시점은 유월절이 시작되는 시점을 전후한 것으로 보인다.

 

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시점은 유월절이 시작되는 니산월 14일 저녁 해지면서 15일이 시작되고 무교절의 첫날이 되며 유월절 식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다만 무교절 기간 중에 있었던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12:4]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 이로써 베드로는 세 번째로 투옥되는 셈이다.

 

(4:3 저희를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문 고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5:18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이러한 사도들의 모습은 예수가 걸어가셨던 고난과 십자가의 길을 용기있게 따라가는 모습으로 보여지기에 충분하다.

 

군사(軍士) 넷씩인 네 패() - 옥에 갇힌 베드로를 경비하는 군사들의 근무 편성을 소개하고 있는 본문은

 

(1) 베드로의 체포가 공권력에 의한 것임과

(2) 베드로가 중죄인으로 취급받았음을 암시한다.

 

혹자는 베드로를 경비하기 위해 편성된 군인이 한 조에 네 명씩으로 구성되어 모두 네 개의 조로 짜여져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하루 24시간을 한 조가 6 시간씩 지켰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Lenski).

 

이에 반해서 혹자는 밤에만 베드로를 지켰던 것으로 생각하여 세 시간씩 4교대로 보초를 섰을 것으로 단정한다(A.C.Hervey, 아사노중이찌).

 

이 외에 네일(Wiliam Neil)은 낮과 밤에 네 조가 각기 돌아가면서 3 시간씩 4교대로 보초를 선 것으로 추측한다.

 

혹자는 이러한 주장 중 당시 로마에서 투옥된 죄수를 지키던 관습이 두 번째 주장과 같기 때문에 이 견해를 지지한다(I.H.Marshall).

베드로가 천사에 의해 풀려난 사건이 밤중에 일어났으므로 이 견해가 가장 타당한 것 같다.

 

아무튼 두 명은 묶인 죄수 옆에서, 두 사람은 옥문 밖에서 지켰을 것으로 추측된다(6).

 

한편 이같은 근무 편성은 평소의 옥문지기보다 많은 수라고 주장하면서 이미 베드로가 탈옥한 전과가 있었으므로

 

(5:19 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로되)

 

병력을 증가시켰을 것이라고 보는 주장도 있다(Jacquier).

 

그러나 로마군에서는 4명이 한 조가 되어서 세 시간씩 근무를 했다는 점에서 볼 때(Haenchen) 헤롯의 휘하에 있는 병사들도 그에 준했을 것으로 보는 편이 가장 무난하다.

 

유월절 후에 - 베드로를 백성 앞에서 공개 재판하기로 작정한 날로 언급된 유월절 축제는 눅 22:1에서 언급된 바처럼 무교절과 동일시 되어 무교병을 먹는 일주일간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Alford, Haenchen, Hervey).

 

(22:1 유월절이라 하는 무교절이 가까우매)

 

따라서 유월절 후라면 적어도 니산월 21일 후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된 유월절이 유월절 식사를 하는 니산월 14일 저녁을 제한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라고 보는 경우도 있다(Lenski, Zahn, Ephraem Syrus).

 

본문을 통해서는 이 두 가지 견해의 타당성 여부를 구분할 근거를 찾아낼 수 없으나 누가가 유월절이라는 단어를 3절의 무교절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여기의 `유월절 후'는 무교절이 끝나는 니산월 21일 후로 보는 것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 백성들 앞에 베드로를 끌어내고자 하는 헤롯의 의도는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백성들이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합법적 근거도 없었기 때문에 재판을 위한 것이라고 볼 수도 없다(Haenchen).

 

아마도 예수의 수난설화(受難設話)에 맞추기 위한 저자의 의도적 편집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Loisy). 그렇지 않으면 사형 집행을 공개적으로 하겠다는 의도가 있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그가 유대인들을 만족시켰고 또한 자신도 유대인들의 기쁨에 매우 고무되어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헤롯은 정치적 지지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해 베드로의 체포를 선전하고 이용하려 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12: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 베드로의 체포로 인해 교회가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본 구절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의의를 지니고 있다.

 

(1) 성도들이 베드로의 체포를 교회의 위기로 판단했다는 점을 암시해 준다.

이미 영향력있는 사도 야고보가 처형되었다는 점에서, 베드로 역시 처형될 것이라는 결론은 자명했다. 따라서 핵심적 지도자의 상실은 곧 교회의 위기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2) 교회의 단결을 볼 수 있다.

교회가 기도했다는 것은 교회가 하나되어 뭉쳤다는 뜻이다. 즉 교회의 위기 앞에서 두려워 흩어진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단결하였다는 점을 시사해 준다. 이는 고난 중에 있는 교회가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할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3) 고난 중에 해야 될 교회의 본분 중에 기도하는 모습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었다.

따라서 당시 기독교인들은 물리적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했다.

그러나 고난 중에서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이 초능력만을 기대하는 현실 도피적 신앙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인간이 만들어낸 불법적 힘에 맞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기대하고 그것을 따른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4) 기도하는 교회의 모습은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의 구성상 7-11절에서 나타난 기적적 사실과 깊은 관계를 갖는다.

 

(7-11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8)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 오라 한대

9)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10)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성으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절로 열리는지라 나와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11)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나서 가로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즉 교회의 기도는 기도로 끝난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구출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단결과 기도하는 힘은 하나님의 역사와 능력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동기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누가는 이와 같은 교훈적 의미를 초대 교회에 시사해 주기 위해 본문의 이야기를 기록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