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거듭난 삶 2023. 12. 3.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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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 교회의 구제 활동

 

성 경: [11:27-30]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11:27]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때에 - 앞에서 언급한 바나바와 사울의 활동 기간을(일 년) 지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의 황제는 글라우지오로 그는 A.D.41-54년까지 로마를 통치했다.

그의 통치에 대한 전승(傳承)에 의하면 그 기간 동안 로마 제국 내에 심한 기근이 여러 번 있었다고 전해진다.

 

바울의 고린도 전도 여행시에도 글라우디오가 아직 황제로 있었으며 글라우디오가 유대인들에게 로마에서 떠나라고 명한 것은 A.D.50-52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18:1-2 이 후에 바울이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이르러

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그리고 12장에 언급된 헤롯이 죽은 시기는 A.D.44년 경이다.

만약 본서가 연대적인 순서를 철저히 따른 기록이라면 본 구절의 `그 때'A.D.44년을 넘지 않는다.

 

특히 12:25에서 언급된 대로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扶助)의 일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돌아온 시점과 헤롯의 사망 시기가 서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12: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따라서 본절은 A.D.44년경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흉년 이전의 어느 때를 가리킨다.

 

선지자들 - 본서와 바울 서신에만 언급되고 있는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15: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21:9-10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고전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3: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살전 5:20 예언을 멸시치 말고)

 

이들은 초대 기독교에서 영감있는 교사들을 지칭하는 말로서 성경에 관해 가르치고 예언의 은사를 받아 예언을 하기도 하며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고전 12: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사도 다음으로 중요한 직분으로 인정받았다.

 

(고전 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셋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예루살렘 이르니 - 이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오게 된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다만 28절에서 예언이 언급된 점으로 보아 흉년에 대한 예언을 전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흉년을 대비해서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한 구제 헌금을 요청하기 위해 그들이 안디옥을 방문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당시에 있었던 헤롯의 박해(12:1)를 피해 이곳을 찾았을 것으로도 추정된다.

 

(12: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11:28]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아가보 -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인 아가보는 유대 출신 기독교인으로 보인다.

 

그는 두 가지를 예언한 것으로 본서에서 언급되는데 본문 외에 21:10, 11에서 사울의 투옥에 관하여 예언하였으며, 이 두 가지 모두 성취되었다.

 

(21:10-11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성령으로 말하되 - `말하되'로 번역된 `세마이노'`표시하다', `지시하다', `알리다'의 뜻을 갖고 있는데 신탁(信託)을 전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Haenchen).

 

특히 이 동사의 명사형 `세메이온'은 요한복음에서 `표적'으로 번역되었다. 이는 `세마이노'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발생하는 특별한 사건을 나타냄을 암시한다.

 

천하가 크게 흉년들리라 - 이 말은 과장된 표현이다.

 

그 당시 개별 지역에 흉년이 들었다는 전승은 있으나 세계 전역은 아니었다.

특히 46-48년 사이에는 팔레스틴에 큰 기근이 있었지만 역시 세계적인 것은 아니었다(Haenchen).

 

누가는 당시 로마 제국의 영향권 안에 있는 모든 지역을 `천하'라고 했다.

특히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 구제 헌금한 점으로 비추어 보아 아가보가 예언한 흉년은 팔레스틴 지역에서 극심했던 것 같다.

 

그런데 본 절의 흉년은 A.D.46-48년 사이에 있었던 팔레스틴 지역의 큰 흉년을 지칭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절의 흉년은 A.D.46년 이전과 관련된 기록이기 때문이다.

 

글라우디오(Claudius) - 그는 헤롯 아그립바 1(12:1)의 정치적 세력을 배경으로 등극하였다.

 

(12:1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그는 초기에는 유대인들에게 우호적인 정책을 폈으나 말년에 가서는 유대인들의 종교 집회를 금지하였을 뿐 아니라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시키기도 했다.

 

(18:2 아굴라라 하는 본도에서 난 유대인 하나를 만나니 글라우디오가 모든 유대인을 명하여 로마에서 떠나라 한 고로 그가 그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달리야로부터 새로 온지라 바울이 그들에게 가매).

 

그리고 그는 바울에 대한 유대인의 고소를 기각(棄却)시켰다.

 

(18:12 갈리오가 아가야 총독 되었을 때에 유대인이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대적하여 재판 자리로 데리고 와서).

 

또한 그는 황제 예배를 강요한 대표적인 로마 황제로 알려졌다.

그는 조모를 여신으로, 조부를 신으로 모시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을 예루살렘 성전 안에 두게 하여 유대인들의 반발을 사기도 하였다.

 

 

 

[11:29]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 유대에 사는 기독교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기근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지칭한다.

 

부조(扶助) - 이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코니아'는 본래 `봉사'의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는 `구제 헌금'의 의미로 예루살렘에서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기독교인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초대 교회의 역사에서 예루살렘을 위해 헌금한 교회는 안디옥 교회뿐만 아니라

 

갈라디아 교회

 

(2: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 생각하는 것을 부탁하였으니 이것을 나도 본래 힘써 행하노라),

 

고린도 교회

 

(고전 16:1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그리고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15:26)로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15: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이 같은 사실 즉 이방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헌금을 했다는 사실을 이방 교회와 유대 교회와의 우호적 관계를 시사해 주는 것이다(F.F.Bruce).

 

이방 교회 역시 독립된 교회로서의 위치가 확인될 뿐만 아니라 유대 교회와 동일한 기독교 공동체로서 인정된 것이다.

 

이제는 유대와 이방인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와 성()과 속()으로 구분짓는 배타적 분리주의도 없어졌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유대 예루살렘 교회가 이방 교회로부터 도움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11: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 안디옥 교회가 헌금한 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할 대표로 사울과 바나바가 언급된다.

 

`손으로'라는 말은 `통해'라는 단순한 의미로 70인역에 자주 사용되었다(Haenchen).

 

그러나 여기서 누가는 단순히 전달된 사실을 강조하기보다 오히려 전달자인 바나바와 사울을 강조하여 안디옥 교회의 대표성을 바나바와 사울에 두었다.

 

이는 이방 교회의 대표로서 바나바와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가 받아들인다면 곧 이방 교회가 실제적인 기독교 공동체로 공인됨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 안디옥 교회에서 보내는 헌금의 수령자(受領者)가 장로로 언급됨으로써 처음으로 신약적인 의미의 장로라는 직분이 나타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장로란 생소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장로와 신약 시대의 장로는 차이점이 있다.

 

구약 시대`장로'는 성읍의 정신적, 행정적 지도자로서 백성들 간에 분쟁이 생겼을 때 재판관 노릇을 하여 공의를 확립하였다.

이 외에도 장로는 사회 기강을 확립하는 제반 업무 및 중요한 정치, 종교, 사법적인 일에 직 간접적으로 관여했으며 간혹 군사 지도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8:10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백성을 점고하고 이스라엘 장로들로 더불어 백성 앞서 아이로 올라가매;

 

삼상 4:3 백성이 진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로 오늘 블레셋 사람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신약 시대에는 `장로'가 목회 임무를 수행하며(벧전 5:1-4;5:14) 가르치며 권면하는 일도 행했다.

 

(벧전 5:1-4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3)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5:14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일반적으로 사도들은 교회를 개척한 후 그 교회의 대표자로 `장로'를 세웠다.

그런데 `장로'란 말이 간혹 사도들에게도 적용되기도 했다.

 

(벧전 5:1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예할 자로라;

 

요이 1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요삼 1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그리고 이 직분은 초대 교회 당시 `감독'의 직분과 별 구분이 없었으나 후에 이그나티우스(Ignatius)에 의해 장로직과 감독직이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아무튼 본 절에 언급된 `장로'가 사도를 지칭하는지 아니면 6장에서 언급된 일곱 집사를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런데 누가는 본서에서 사도들을 장로로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장로와 사도가 동일시 될 수 없다.

누가는 구제를 위해 선출된 집사에게 장로라는 직함을 붙였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