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거듭난 삶 2023. 12. 18.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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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공의회

 

성 경: [15:1-5]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

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어떤 사람들이 - 이 사람들은 예루살렘에서 온 기독교인들로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다. 또한 이들은 갈2:12에서 바울이 말한 바 있는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과 같은 부류의 인물로 추정된다.

 

(2: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이들은 기독교 안에서 유대교적 전통을 고수하려는 한 분파에 속한 사람들로서 구원을 얻는데 할례를 필수적 조건으로 전제하고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바울과 바나바에 의해 소아시아 이방인들이 기독교인으로 개종하고 이방인 기독교 공동체가 세워지자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켜 자기파에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로 안디옥까지 내려온 듯하다. 이러한 내용으로 볼 때 초대 기독교 안에서 이방인 선교와 함께 분파가 형성되었던 것 같다.

 

6:1에서는 헬라파와 히브리파가 대립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뿐만 아니라 고전 1:10-17에서도 나타나는 바처럼 지도자별로 각 분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고전 1:10-17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11)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서 너희에게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12) 이는 다름아니라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는 것이니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침례를 받았느뇨

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침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침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침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침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특히 24절의 진술에 비추어 볼 때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결정된 바도 없이 이들이 독단적인 행동을 취했다는 점에서 계파간에 배타적 대립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24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이들은 열성적 유대주의자들로서 바리새파에 속했던 사람도 있었는데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바울 서신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논쟁의 대상이 이 부류의 사람들인 것 같다.

 

형제들을 가르치되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 바울과 바나바가 중심이 되어 가르치는 안디옥 교회(13:1)에 할례없이 구원이 불가능함을 가르친 이들의 사상은 바울과 바나바에 대한 일종의 도전이었으며 안디옥 교회에 대한 충격적 도전이었다.

 

(13: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따라서 안디옥 교회 안에서는 적잖은 동요가 일어났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본 구절에서 율법의 계명중에 할례만 언급되었는데 이는 할례가 모든 율법조항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대인들에게 취급되었던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이러한 사실은 할례 문제를 다루던 예루살렘 총회가 결국 할례와 전혀 관계없는 몇몇 의식법의 조항들을 금기 시킨 데서 더욱 분명해진다.

 

 

 

[15:2]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 - 바울과 바나바와 유다파 기독교인들 사이의 논쟁은 매우 격렬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주장은 바울과 바나바에 의해 생겨난 이방 기독교회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바울의 사도권(使徒權)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며 예루살렘 교회의 선교 방침에 대한 문제 제기이기도 하다.

 

이미 11:2에서도 베드로의 이방인 선교에 대해 할례주의자들이 비난하고 도전해 왔음을 보여준 적이 있다.

 

(11: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이 문제는 기독교의 이방 선교와 함께 분명하게 정리해야 할 교리적 문제이기에 모든 교회가 함께 의논하여 해결해야만 했다.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에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 -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안디옥 교회에 속한 몇 사람의 성도를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결정하게 되는데 이 중에 디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Alford, Robertson).

 

(2: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15:3]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이방인들의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저희가 교회의 전송을 받고 - 이 진술에는 다음 두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1) 바울 일행이 안디옥 교회의 공식 대표임을 보여준다.

(2)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유대주의 기독교인들의 가르침에 동요되지 않음을 암시해 준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전송은 예루살렘 교회에 가서 할례없는 기독교인이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확증하고 유대주의 기독교인에 대해 승리하기를 바라는 안디옥 교회의 구체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녀가며 - 바울 일행은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기들이 지나가는 성읍에서 복음을 전하는 열성(熱誠)을 보였다. 이 지역들이 비록 팔레스틴에 속해 있으나 유대인들에게 소외된 지역이면서 큰 성읍에 해당되므로 그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또한 기존 성도들에게 자신들의 교리를 전파했다.

 

베니게는 이방 지역으로서, 11:19에 따르면 스데반의 순교로 예루살렘에서 피신해 간 기독교인들에 의해 교회가 형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11:19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그리고 사마리아에는 빌립에 의해서

 

(8: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기독교 공동체가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지역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싫어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그들이 이방인에 대한 바울 일행의 전도 성과를 듣고 기뻐했을 것이라는 사실은 족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누가는 이 지역들이 바울의 사상에 동조함을 잠시 언급함으로써 바울의 권위를 더욱 세우고 있다.

 

 

 

[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 예루살렘의 온 교회와 지도자들로부터 환영받게 된 바울의 모습은 9:26-30과 매우 대조된다.

 

(9:26-30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27)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본 것과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던 것을 말하니라

28)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

29)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힘쓰거늘

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즉 회심 후 처음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에는 의심과 냉대를 받았지만, 1차 선교 여행 후 지금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큰 환영을 받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미 예루살렘 교회에서는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여행 결과에 대해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한편 헬라어 본문에서는 '사도'가 복수형으로 나와 있다.

이로보아 갈1:18,19에 언급된 예루살렘 방문이 아니라

 

(1:18-19 그 후 삼 년 만에 내가 게바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십오 일을 유할새

19)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

 

2:9에 언급된 방문임을 알 수 있다.

 

(2:9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가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왜냐하면 바울은 갈1:19에서는 야고보만 만난 것으로 진술했으나 2:9에서는 세 명의 사도를 만난 것으로 진술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 예루살렘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와 마찬가지로 선교여행의 결과에 대하여 보고를 하게 되었는데 안디옥 교회에서의 보고와 마찬가지로 바울과 바나바는 자신들의 업적을 하나님이 함께하신 결과임을 말하고 있다.

 

(14:26-27 거기서 배 타고 안디옥에 이르니 이곳은 두 사도의 이룬 그 일을 위하여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부탁하던 곳이라

27)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고하고).

 

누가는 이렇게 하나님의 함께 행하심을 거듭 강조하여 이방인의 선교가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초대 교회에 인식시킴으로써 반대론자들의 도전을 하나님에 대한 도전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15: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 - 당시 예루살렘 교회 안에 바리새파 출신 개종자들도 있었다는 점은 기독교의 세력이 상당히 확장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종교 지도자급의 철저한 유대주의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해 왔음을 보여줌으로써 유대교적 전통과 기독교가 갈등 관계에 놓이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한편 이 바리새파 출신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 교회에서 이방 선교에 대한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에서 이들이 유대교적 기독교 운동의 핵심 인물이었을 것이며, 1절에서 언급된 '어떤 사람들'도 이들이 파송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여기서 언급되는 할례에 대한 주장이 1절에서 언급된 주장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