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거듭난 삶 2023. 12. 1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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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공의회 1

[이방인의 구원]

 

성 경: [15:6-11]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15:6]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 그 의안(議案)은 앞서 언급된 대로 바리새파 출신들이 제기한 이방인에 대한 할례 문제를 검토하기 위한 것이다. 이 회의는 기독교가 발생된 후 최초로 시작된 교회 총회라는데 큰 의미가 부여되고 있다.

 

즉 기독교가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자 유대인들이 그동안 매우 자랑스럽게 지켜왔던 선민의식에 큰 상처를 받게 되면서 나타난 민족적 감정에 교회가 공식적으로 대응했다는 점과 종교적으로 중요한 구원에 관한 교리를 취급했다는 점에서 종교 회의의 모태가 된 것이다.

 

 

 

[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 회의 진행을 압축적으로 전해주는 본 구절을 통해 회의가 상당히 진지하고 열띤 분위기 속에서 장시간 계속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기서의 변론(제테시스)은 논쟁이나 토론을 뜻하는 말인데, 일방적인 변론이 아니라 상호간의 주장을 내놓고 토의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회의에는 유대주의자들의 주장과, 바울과 바나바를 지지하는 주장들이 맞서 열렬한 토론이 진행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베드로가 일어나 - 매우 긴 시간의 토론 속에서 언급된 발언자는 베드로와 야고보(13) 두 사람 뿐이다.

 

(13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를 미루어 베드로와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역할을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특히 베드로의 발언이 결정적(決定的)인 것으로 언급된다는 점에서 베드로의 영향력이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절대적인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너희도 알거니와 - 이 말은 10:1-48에서 언급된 내용, 즉 가이사랴의 고넬료가 베드로에 의해서 기독교인이 된 사실과 하나님이 보여준 환상(10:10-16)을 뜻한다.

 

(10:10-16 시장하여 먹고자 하매 사람이 준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12) 그 안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13) 또 소리가 있으되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거늘

14)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한대

15) 또 두번째 소리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16) 이런 일이 세 번 있은 후 그 그릇이 곧 하늘로 올리워 가니라)

 

베드로는 이방인을 구원시키는 자신의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임을 밝힘으로써 이방인 선교에 대한 정당성을 못 박아 두고자 한다.

 

 

 

[15: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 베드로는 이방인도 유대인과 동등하게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이방인에게도 성령이 임재함을 진술하고 있다.

 

이 사실은 고넬료 뿐 아니라 그와 함께 있던 모든 이들이 성령을 받았다는 10:44-47의 내용과 관계가 있다.

 

(10:44-47 베드로가 이 말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 오시니

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47)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이미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를 방문한 사건을 두고 할례자들이 공격해 왔을 때에도

 

(11:2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의 친지들이 성령 받은 사건을 언급함으로 그들을 잠잠케 한 바가 있다.

 

(11:18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여기서도 역시 아무도 베드로의 말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고 있다.

 

(12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15:9]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

 

하나님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차별하지 않는 이유가 믿음 때문임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 전통이나 민족에 의한 차별을 통해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배타적인 선민의식이나 우월감(優越感)은 지양되어야 한다. 어느 누구나 하나님 앞에서 동등한 것이다.

 

지금까지 베드로의 변론은 공의회가 소집하게 된 내용인 할례 문제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고 단지 이방 선교의 정당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는 회의 진행 도중 이방 선교 자체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추측케 한다.

 

 

 

[15:10]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어찌하여 - 이 말의 헬라어 ''는 의문 대명사(who)로 쓰이기도 하고 이유를 묻는 부사(why)로 사용되기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의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문맥상 단순히 이유를 묻는다기보다는 왜 그러는지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는 뜻으로 말하면서 책망하는 형식의 어투로 보는 것이 좋다.

 

하나님을 시험하여 - 할례를 강조하는 유대인들의 행위를 베드로는 하나님에 대한 시험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언급된 '시험'이라는 단어 '페이라조''시도하다', '시험하다'(make trial of)외에 '유혹하다'(tempt,KJV)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본문에서의 의미는 문맥상 하나님의 일을 그르치도록 장애물을 설치하거나(Alford) 하나님의 일에 인간이 간섭하는 불경건한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 - 베드로의 논점은 유대인 자신들조차 메지 못하는 멍에를 이방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상징적으로 언급된 '멍에'는 무거운 짐을 끌거나 밭을 갈기 위해 쟁기를 끌도록 소의 목에 걸었던 도구로 구약성경에서는 인간에 대한 강제적인 압제

 

(9: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또는 인간에게 가하는 고통을 상징하며

 

(28:48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핍절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서 필경 너를 멸할 것이라)

 

신약성경에서는 율법이 인간에게 요구하는 종교적 의무나 율례를 뜻한다.

 

여기서도 역시 5절에서 언급된 바 있듯이 유대교의 종교적 의무나 계율을 뜻하며 '조상'과 우리가 모두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유대교의 전통적 율례를 뜻한다.

 

특히 초기 기독교 당시(1세기 중엽) 베드로가 활동하던 때에는 샴마이(Shammai)학파의 극단적인 해석으로 율법이 그 어느 때보다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F.F.Bruce).

 

바울도 역시 율법을 종의 멍에로 묘사하며 그것을 비인간적인 억압 구조로 이해하였다.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이러한 율법을 조상 때부터 지금까지 완전하게 지켜내지 못했음을 베드로는 전제하고 율법의 멍에는 사람이 질 수 없는 것이므로 강요해서는 안 됨을 강하게 암시해 준다.

 

그런데 베드로는 바울 서신에서와 같이 율법과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 관계에 대해서 당시에 분명한 신학적 입장이 없었거나 베드로 자신이 그것에 대해 아직 명확한 인식이 없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5:11]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 베드로가 유대인들에게 확신시키고자 하는 설교의 핵심이 언급되고 있다.

 

즉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하나님 앞에 동일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그의 사상은 바울의 사상과도 일맥상통(一脈相通)한다.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3:30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2:14-16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바울이 베드로를 이방인들에게 개방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한 적이 있듯이

 

(2:11-14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베드로는 바울만큼 율법과 그리스도인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갖고 있지는 못했지만, 본 구절처럼 이방인 선교의 정당성(正當性)에 있어서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는 아마 베드로 자신이 고넬료 사건을 직접 체험한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