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거듭난 삶 2023. 12. 20. 00:16
728x90

예루살렘 공의회 3

[야고보의 연설]

 

성 경: [15:12-20]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15:12]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 고하는 것을 듣더니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 베드로의 변론을 듣는 청중들의 분위기를 묘사하는 본문은 7절과 대조를 이룬다. 이것은 논쟁으로 시끄럽던 회의장이 베드로의 변론으로 침묵하게 되었다는 말로 베드로의 주장이 회의에서 받아들여졌음을 암시해 준다.

 

이로써 공의회는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활동을 공인하고 바리새파 출신을 중심한 유대교적 기독교인들의 주장을 배격하게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준다.

 

하나님이 자기들로 말미암아 - 이미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영접을 받고 이방 선교에 관한 보고를 한 바 있다. 여기서는 공식적 회의장에서 자신들의 경험을 이야기하여 이방인들이 구원받았다는 객관적 사실을 설명하고자 한다.

 

즉 바나바와 바울은 여기서도 4절에서 언급한 바처럼 자신들의 이방선교를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진 것이며 이방인들이 구원받게 된 것은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임을 증언하고 있다.

 

표적과 기사 -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언급한 것은 이방인들에게 나타난 기적적인 사건이었는데 아마 14:3,8-10에서 나타난 기적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8-10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본 적이 없는 자라

9)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10)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

 

이는 이방 선교가 철저히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15: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야고보가 대답하여 - 여기서 언급된 야고보는 주의 형제(13:55)를 말하며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예루살렘 교회에서 존경받는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던 것 같다.

 

(12:17 베드로가 저희에게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21: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2:9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의회에서는 의장의 직분을 담당하여 회의를 이끌고 마무리 짓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13-21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가로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따라서 야고보가 베드로의 연설에 곧이어 응답한 것은 의장으로서 베드로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하면서 회의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15: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저희를 권고하신 것을 시므온이 고하였으니 -

 

야고보는 베드로의 연설내용을 다시 상기시키며 이방인을 부르시는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을 선택하여 부르신 사건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고넬료의 집에서 일어난 성령 강림 사건(8절 주석 참조)을 예로 들고 있다.

 

야고보는 베드로의 이름을 시므온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이는 베드로의 히브리식 옛 이름으로서 베드로가 야고보와 상당한 친분 관계가 있음을 암시하며 회의장에서 언급되었다는 점에서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모두가 베드로의 옛 이름을 알 정도로 서로를 잘 아는 유대인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히 이방 선교 문제를 거론하면서 베드로의 히브리식 이름을 사용한 것은 의장인 야고보가 아랍어로 말하고 있음을 암시하거나(Haenchen) 아니면 그 회의에 모인 사람들이 유대인들 뿐 이었음을 암시한다.

 

 

 

[15: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합하도다 기록된 바

 

선지자들의 말씀이 - 야고보는 구약성경 중 선지서를 인용하여 그 예언이 베드로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증명하여 줌으로써 베드로의 주장을 회의 결론(結論)으로 확정지으려 한다.

 

 

 

[15: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이후에 내가 돌아와서 - 마소라 히브리 본문(Masoretic Text)에서는 '그 날에 내가 다시 돌아와'로 읽혀진다. 그리고 70인역도 마소라 본문과 동일하게 읽고 있다.

 

그러나 야고보가 인용할 때는 한글 개역성경과 같이 변형되어 있다.

 

이처럼 야고보의 인용이 정확히 70인역(LXX)의 암 9:11,12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야고보는 70인역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들에게 읽혀지던 히브리어 본문이나 아람어 본문을 인용했을 것이다.

 

(9:11-12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천막을 일으키고 그 틈을 막으며 그 퇴락한 것을 일으키고 옛적과 같이 세우고

12) 저희로 에돔의 남은 자와 내 이름으로 일컫는 만국을 기업으로 얻게 하리라 이는 이를 행하시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 본문은 아모스의 예언을 베드로의 연설과 접목 시키면서 아모스가 예언한 '그 날'이 바로 지금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야고보는 허물어진 다윗 왕국을 다시 세우고 퇴락한 것을 다시 지어낸다는 아모스의 예언을 유대주의의 배타적 세계관이 무너지고 메시야에 의해 재건된 세계관으로 전환됨을 강조하기 위해 인용했다.

 

 

 

[15: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그 남은 사람들 - 마소라 본문(MT)에서는 '에돔의 남은 자'로 되어 있는데 70인역에서는 단순히 '남은 사람들'로 번역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 살아남은 자가 마소라 본문에 따르면 이방인을 가리키는 말이 될 수 있으나(Robertson) 70인역의 번역은 유대인들 중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의미할 수 있다.

 

이로 보아 아마도 야고보는 마소라 본문 보다는 70인역과 유사한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 본문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본문을 인용하여 유대인을 언급하고자 했던 것 같다.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 - 이는 야고보가 강조하고자 했던 핵심 내용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모든 이방인들을 한정짓는 관계절인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하나님의 백성이 된'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구절은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가능성이 구약 시대에서부터 열려있었음을 확언하는 말이 된다.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짓게 되는 목적이 모든 이방인들이 주를 찾도록 하는 것에 있음을 강조하여 야고보는 이방인들의 기독교인 됨이 구약의 예언 성취임을 밝히고 있다. 이로써 이방 선교의 정당성이 구약의 예언(豫言)을 통해 확증된 셈이다.

 

 

 

[15: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 본문은 야고보의 자유로운 변형이거나 인용일 수 있다.

 

'예로부터'라는 말이 아모스의 본문에서 나타나지 않으나 야고보의 말에서는 첨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야고보는 사45:21의 어투를 따왔거나 아니면 야고보가 인용한 사본에 이 말이 첨가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45:21 너희는 고하며 진술하고 또 피차 상의하여 보라 이 일을 이전부터 보인 자가 누구냐 예로부터 고한 자가 누구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나니 나는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베푸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한편 본 구절은 이방인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의도가 구약 시대에도 계시되어 왔음을 밝혀준다.

 

이 사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이방인의 구원 사업을 계속적으로 펴왔음을 뜻한다.

 

 

 

[15:19]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그러므로 - 여기서는 결론이 자명한 것을 연결해 준다.

즉 야고보가 인용한 아모스의 예언대로라면 자신이 제안하는 다음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이다.

 

내 의견 - 이 말의 헬라어 '에고 크리노''내가 판단하다' 또는 '내가 심판하다'의 의미로 야고보 자신이 단순히 의안을 상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토론의 결론을 내리는 재판장으로서 최종 판결을 내리는 듯한 어감을 주고 있다.

 

이는 '내가'(에고)란 표현이 강조적으로 사용된 점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한편 본절에서 야고보의 의견을 채택하는 형식 절차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야고보의 의견을 최종적 결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로 보아 예루살렘 교회에서 야고보의 권위가 대단했음을 알 수 있다.

 

괴롭게 말고 - 여기서 괴롭히고 있는 주체는 유대주의적 기독교인들이며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5 바리새파 중에 믿는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그 내용은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는 요구인데 이는 엄격한 의미에서 이방인들에 대한 유대인들의 배타적 우월감의 상징이다. 야고보는 이와 같은 우월감을 유대인들이 포기할 것을 요구했다.

 

여기에 제시된 네 가지 권면 조항은 세 개의 의식적 부분과 하나의 도덕적 구분으로 구분된다. 이로보아 예루살렘 총회에서 논의된 내용이 단순히 할례 문제만이 아니라 율법 전반(全般)에 대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15:20]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하는 것 - 이 어투는 강제적 명령이라기보다는 권면의 성격을 띠고 있다.

 

우상의 더러운 것 - 29절에서는 '우상의 제물'로 다시 언급된다.

 

이는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의미한다.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에 관한 논쟁은 이방 선교 과정에서 부딪힐 수밖에 없는 문제 중의 하나였다.

 

예루살렘 총회는 우상의 음식에 대해 부정적인 결론을 내렸으나 고전8:1-13;10:27,28;2:11-14에서 바울은 각자의 양심에 맡김으로써 보다 자유로운 입장을 취했다.

 

(고전 8:1-13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7)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악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

9)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13)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고전 10:27-28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하매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11-14 게바가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할 일이 있기로 내가 저를 면책하였노라

12) 야고보에게서 온 어떤 이들이 이르기 전에 게바가 이방인과 함께 먹다가 저희가 오매 그가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매

13) 남은 유대인들도 저와 같이 외식하므로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

14) 그러므로 나는 저희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로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을 좇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

 

이 부분의 권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음식 섭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상 숭배로 빗나가는 신앙을 경계하는데 있다.

 

음행 - 십계명에 언급되어 있는 이 규정이 예루살렘 총회의 권면 조항에도 나타나게 되었으므로 학자들에게 여러 가지 해석을 불러일으켰다.

 

그 해석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우상에 바친 음식을 먹음으로써 범하는 영적 음행(Beza, Selden).

(2) 우상의 신전에서 행하는 육체적 음행(Stolz, Heinrichs).

(3) 음행을 조장하고 매개하는 포주(抱主)의 죄(Salmasius).

(4) 축첩행위(J.Calvin).

(5) 근친혼(Lightfoot).

(6) 이도교와의 결혼(Teller, Bruce, J.W.Packer).

(7) 재혼(Schwegler).

(8) 돼지고기(Bentl- ey).

(9) 금지된 혈종간의 결혼(Haenchen).

 

 

목매어 죽인 것과 피 - 이는 이미 구약에서 금지된 것이다.

 

(9: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 것이니라;

 

17: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느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피인즉 무릇 피를 먹는 자는 끊쳐지리라;

 

12:16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23 오직 크게 삼가서 그 피는 먹지 말라 피는 그 생명인즉 네가 그 생명을 고기와 아울러 먹지 못하리니).

 

여기서 목매어 죽인 짐승은 피가 체내에 남아 있기 때문에 피채 먹지 말라는 것과 동일하다. 그리고 구약에서 피를 먹지 못하게 규정한 것은 피가 생명을 뜻하기 때문이다.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