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거듭난 삶 2023. 12. 2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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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공의회 4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

 

성 경: [15:21-27]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26) [25절과 같음]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15:21] 이는 예로부터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하더라

 

각 성에서 모세를 전하는 자가 있어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 글을 읽음이니라 - 이는 이방인 지역마다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살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에는 회당이 있었으며 그곳에서 유대인 교사들이 가르쳤다.

 

그렇게 때문에 유대인들의 율법이 이방인들에게 전혀 생소한 것이 아니므로 이방인 개종자들은 예루살렘 총회에서 결정된 네 가지 조항도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야고보가 이 사실에 대해 언급한 것은 그 권면 조항들이 지닌 의미에 대해 이방인 개종자들이 잘 모르고 있기 때문에 자세한 것은 자기들이 살고 있는 지역의 회당 교사들에게 배우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15:22]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 이는 예루살렘 총회의 구성원들에 대한 진술이다.

 

여기서 온 교회는 모든 지역 교회의 대표를 의미하므로 사도 및 장로와 함께 언급됨으로써 예루살렘 총회의 결의 사항이 모든 교회의 찬성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강조해 주며 바울 일행과 동행(同行)하게 된 자들의 권위도 암시한다.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 21절과 22절은 매우 압축적으로 문장이 연결된다.

 

즉 이방 선교 문제에 대한 어떤 결정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고, 그 대신 사람을 뽑아 바울과 바나바와 동행하게 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예루살렘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의 선교 활동을 공인했음을 간접적으로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 바울의 선교 활동뿐 아니라 그의 가르침도 공식적으로 교회 지도자들에게 인정을 받고 그 정당성이 확인되었다. 이 파송으로 인해 바울은 실라를 만나게 되어 이후 함께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가결하니''생각한다', '작정한다', '결정한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예루살렘 총회가 유다와 실라를 보내기로 결정하게 된 것이 반드시 찬반(贊反)을 묻는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고는 볼 수 없다. 즉 이 용어를 만장일치 또는 이의 없이 그 두 사람을 보내기로 결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형제 중에 인도자 -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나 그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직임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바사바라 하는 유다 - 유다에 대해서는 그가 선지자라는 것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요셉 바사바의 형제일 가능성이 있다(1:23)는 사실 외에 이렇다 할 자료가 없다.

 

(1:23 저희가 두 사람을 천하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실라 - 본서에서는 그의 히브리식 이름인 '실라'로 언급되지만 바울 서신에서는 로마식 이름인 '실루아노'로 언급된다.

 

(살전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따라서 실라도 바울과 같이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16: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그는 바울의 2차 선교 여행에 동행하게 되는데

 

(40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16:19-29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 갔다가

20) 상관들 앞에 데리고 가서 말하되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21)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22) 무리가 일제히 일어나 송사하니 상관들이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 하여

23)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24) 그가 이러한 영을 받아 저희를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웠더니

25)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27)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28)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고;

 

17: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베뢰아에 혼자 남은 적도 있고

 

(17: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디모데와 함께 전도한 사실도 있다.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고후 1: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베드로전서를 소아시아의 교회에 전해준 사실이 있는 것으로 짐작되며 베드로와 친분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벧전 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5: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 - 이 표현 '형제된 사도와 장로들'로 번역되어야 자연스럽다.

 

이방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주체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자인 '사도와 장로'가 언급된 사실은 편지의 권위를 확정지어 주는 의미를 지닌다.

 

이방 교회에 편지를 보내는 주체로서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자인 '사도와 장로'가 언급된 사실은 편지의 권위를 확정지어 주는 의미를 지닌다.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 - 이는 편지를 받게 될 지역에 대한 진술이다. 수리아 지역을 언급하면서 그 지역의 수도인 안디옥을 특별하게 언급한 것은 논쟁의 발단이 안디옥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수리아 지역에 대해 언급한 것은 바울이 처음 개종하여 다메섹 등지에서 활동했기 때문이다.

 

(9:19-22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0)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21) 듣는 사람이 다 놀라 말하되 이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이 이름 부르는 사람을 잔해하던 자가 아니냐 여기 온 것도 저희를 결박하여 대제사장들에게 끌어가고자 함이 아니냐 하더라

22)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명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굴복시키니라).

 

그리고 길리기아는 바울의 고향 다소를 중심한 수리아 북서 지방을 말한다. 길리기아 지역 교회는 바울이 다소에 머물렀었으므로 바울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된 자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9:30 형제들이 알고 가이사랴로 데리고 내려가서 다소로 보내니라;

 

11: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15: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 사도와 장로들은 이 문구를 사용하여 예루살렘 교회에서 그런 사람들을 파손한 바가 없음을 재확인하며 강조하고 있다.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 이방 기독교인들을 괴롭히는 것이 폭력적 박해가 아니라 유대 기독교인이 저지르는 말, 곧 그들이 전파하는 잘못된 가르침임을 밝히고 있다.

 

여기서 ''은 이방인들에게 유대의 율법적 규정들을 강요하는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점에서

 

(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종교적 갈등과 혼동을 촉발시키는 거짓 진리를 뜻한다.

 

마음을 혹하게 한다 - 이는 '너희의 혼을 파괴하면서'이다. 이는 유대인들이 이방 교회의 성도들을 단순히 미혹하는 차원이 아니라 교회 자체를 붕괴(崩壞)시키려는 의도로 그들의 가르침을 전파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여기서 '혼을 파괴한다'는 것은 각 사람의 마음에 심각한 신앙적 갈등을 일으키게 하여 결국 믿음의 도에서 떠나 사망의 길로 가게 한다는 의미다.

 

 

 

[15:25-26]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사람을 택하여 - 22절에서 사용된 형태와 같은 관용구다.

 

이는 유다와 실라가 예루살렘 교회의 공식 대표임을 보증함과 동시에 바울과 바나바 역시 예루살렘 교회가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선교사임을 뜻한다. 이로 미루어 아직까지 바나바와 바울의 권위보다는 예루살렘에서 직접 보냄을 받는 특사로서의 권위가 더 신뢰있게 받아들여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물론 그 권위는 파송되는 유다와 실라의 권위가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를 뜻한다. 그 이유는 아직 예루살렘에 대부분의 사도들이 머물고 있었으며 그들에 의해 최초로 교회가 설립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는 사도들의 권위에 의해서 지지되었다.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 - 이 표현은 잘못된 가르침과 투쟁한 바나바와 바울을 격려하고 이방 기독교인들 앞에 찬사하며 그들의 노력과 공적을 치하하고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 공적인 보증을 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의 논쟁은 바울과 바나바의 승리로 끝나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가 보내는 이 같은 애정어린 찬사는 이방 기독교인에게 보내는 격려이며 유대교적 기독교인들의 공격으로부터 해방을 선언하는 것이고 공격자들에 대한 예루살렘 교회의 거부를 암시한다.

 

뿐만 아니라 바나바와 바울의 공식화된 권위를 뜻한다.

이 편지에서 바울보다 바나바가 먼저 언급된 점으로 보아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는 바울보다 바나바가 더 친숙함을 엿볼 수 있다.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회가 처음 확장될 때 헌신했던 자였다.

 

(4: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그런 이유로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와 장로들은 바나바를 바울보다 먼저 언급했을 것이다.

 

일치 가결 - 한 마음이 되어 뜻을 모았다는 말이다. 이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결집된 총의(總意)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파송되는 유다와 실라 그리고 바나바와 바울의 권위를 보증하기 위한 표현이다.

 

 

 

[15: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 '이 일'25,26절의 내용 곧 바나바와 바울에 대한 공식적인 보증 및 유다와 실라의 파송에 대한 것으로 이해될 수 있으나 문맥상 자연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유다와 실라가 파송된 것은 예루살렘 교회의 권위에 의한 것임을 선포하기 위함이 아니라 바나바와 바울의 가르침을 이방 교회에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또한 예루살렘 총회의 의결사항을 전달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일'은 예루살렘 총회의 의결 사항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