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거듭난 삶 2023. 12. 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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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본 환상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2]

 

 

[16:6-10]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 성령이 어떠한 방법으로 누구에게 뜻을 전했는지 언급되어 있지 않다. 누가의 관심은 그 사실 '자체'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환상을 보거나 꿈을 꾸었을 수도 있고

 

(9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유대인의 반대 등으로 계획을 변경했을 수도 있다.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 - 이 지역에 대한 해석은 나중에 바울이 보낸 '갈라디아서'가 북()갈라디아에 보내진 것인지의(()갈라디아설) 문제를 결정짓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에 아주 논란이 많은 구절이다.

 

(1) 이 구절은 헬라 문법상으로 살펴볼 때 '한 지역'을 의미한다는 주장이 있다.

 

즉 남갈라디아설의 측면이 강한 이러한 주장은 행정구역상 갈라디아 주 전체가 아니라 갈라디아의 브루기아 지방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든지 일반적으로 브루기아 방언과 켈트 방언을 모두 들을 수 있는 로마의 갈라디아주 남쪽 내륙의 브루기아 지방에 인접한 지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켈트족이 거주하였던 갈라디아 지역에 들어갔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2) 이 구절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두 지역을 나타낸다는 주장도 있다.

(Lake, Haenchen).

 

바울 일행이 페시누스, 앙키라, 다비움에 이르는 북갈라디아 전역을 휩쓸면서 교회를 세웠으리라고 보며 그래서 나중에 그곳에 '갈라디아서'를 써 보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지리학상으로 치명적인 결점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만일 그렇다면 누가가 그 광범위한 사역을 '디엘돈'('그들이 다녀가다')이라는 한 마디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누가의 서술만으로는 바울의 행적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얻기가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울 일행이 아시아의 본래 선교 목적지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갔다는 것이며 또한 그 여행이 아시아의 동쪽 경계선으로부터 소아시아의 북서쪽에 위치한 무시아로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Marshall).

 

 

 

[16:7]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 앞에 이르러 - 무시아는 소아시아 서북부 지방으로 프로폰트(Propontis)해와 헬레스폰트(Hellespont) 해협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경을 통해 보면 바울이 이곳에서 활동했다는 기록은 없는데 전승에 따르면 오네시보로(Onesiphorus)에 의해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비두니아 - 소아시아의 북서부 지방. 흑해와 마르마라(Marmara)해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 6-10절을 통해 '성령'으로부터 '예수의 영'을 거쳐 '하나님'으로 용어가 조금씩 변화해 가고 있는 것은 단순한 표현 방식의 변화라기보다는 초대교회의 원초적인 삼위일체(三位一體) 신앙이 무의식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성령을 통해 어떻게 복음의 진로를 안내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16:8]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 갔는데

 

무시아를 지나 - 무시아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드로아를 갈 수 없는데도 누가가 '디엘돈테스'('통과했다') 대신 '파렐돈테스'('지나쳐 갔다')라는 분사를 사용했다는 사실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누가는 이러한 용어 선택을 통해 무시아에 머물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타내고자 했을 것이다.

 

드로아 - 에게해 연안에 있는 항구(港口)로서, 소아시아와 마게도니아를 잇는 배가 출입하던 곳이다.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 꿈과 환상은 고대에 있어 하나님의 계시의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

 

(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0:3 하루는 제 구 시쯤 되어 환상 중에 밝히 보매 하나님의 사자가 들어와 가로되 고넬료야 하니,

17 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심하더니 마침 고넬료의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22: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이는 밤이든 낮이든(10:11) 상관없이 사용되었다.

 

(10:11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 오는 것을 보니 큰 보자기 같고 네 귀를 매어 땅에 드리웠더라)

 

 

결국 환상은 단순한 상상이나 추리에 의한 것이 아니고, 시각적인 것을 동반한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한편 어떤 이들은 드로아에서 바울에게 도움을 구했던 마게도냐인이 바로 누가였다고 주장한다.

 

이는 누가가 마게도냐인 즉, 빌립보 출신이라는 사실에 근거한 것으로, 대화하는 가운데 이미 누가가 바울에게 마게도냐에 복음이 필요함을 깨닫게 하였을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이 만남이 환상 가운데 이용하셔서 바울 일행을 마게도냐로 가게 하셨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또 혹자는 드로아에서 바울이 실제로 마게도냐인들의 방문을 받은 바 있고, 이것이 심층 심리 속에서 작용하여 꿈으로 나타났으리라 추측하기도 한다(H.Marshall).

 

어쨌든 이 환상이 하나님이 보내신 초자연적인 환상임에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각양의 짐승들을 보이신 것처럼 바울에게도 환상 가운데서 마게도냐 사람을 보이신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계시가 그 담지자에게 명확히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우리가 - 본서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바로 이 드로아에서이다.

 

(10-17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1)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5) 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17)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우리'라는 형식과 관련하여, 바울 일행이 빌립보로 갈 때에 동행한 빌립보 주민이 있었다는 점과 그 사람이 누가였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우리'라는 표현이 빌립보에서의 사역에 관한 기사(11-40) 이후에는 멈추어져 있다.

 

(2) 두 번째 '우리'라는 부분(20:5-15)이 전도자들의 3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를 재방문할 때 시작되어 있다.

 

- 여기서는 다음날 아침을 뜻한다. 하나님 앞에서 바울의 순종하는 모습이 돋보이는 단어이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지녀야 할 으뜸가는 태도는 '순종'이다.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5: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인정함이러라 - 이는 원래 '결합시키다'는 뜻으로 9:22에서는 '증명하다'의 뜻으로 사용되었으며

 

여기서는 '결론내리다'(assuredly gathering, KJV는 정도의 뜻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