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거듭난 삶 2023. 12. 2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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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디아의 개종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성 경: [16:11-15]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5) 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16:11]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사모드라게 - 드로아와 빌립보 사이, 에게해 북동쪽에 있는 섬이다. '물과 지진과 말()'의 신인 포세이돈이 산으로 형성된 이 섬에서 고대 트로이 평야를 측량했다고 해서 포세이돈 섬이라고도 불리었다.

이 섬은 북() 에게해를 항해하는 선박들의 기항지(寄港地)가 되었는데, 추측컨대 바울 일행도 여기서 닻을 내렸을 것이다.(Neil).

 

직행하여 - 당시의 화물선이나 여객선의 경우 바람을 잘 만나 순조롭게 항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육지나 바다의 바람과 해류를 잘 이용해야 했으며, 때로는 우회하는 항해도 감수해야 했다.

 

(18:21-22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네압볼리 - 사모드라게로부터 16km 내륙에 위치한 상업 중심지 빌립보의 외항으로, 아드리아해와 에게해를 연결하는 로마의 도로 '이그나티우스 대로'(the great Egnat- ian way)의 동부 지역 종착 지점이었다.

 

한편 여기서는 저자가 함께 배에 타고 있었기 때문에 거쳐 간 항구 이름과 소요(所要) 기간 등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다.

 

(20: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13-15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행선하니 이는 자기가 도보로 가고자 하여 이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올리고 미둘레네에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리고 또 그 다음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참조 : (21:1-8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항해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의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낸 후 우리가 떠나갈새 그들이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를 떠나 항해를 다 마치고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머무르니라;

 

27:1-28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음을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성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 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성에서 가깝더라

9) 여러 날이 걸려 금식하는 절기가 이미 지났으므로 행선하기가 위태한지라 바울이 저희를 권하여

10)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가 보니 이번 행선이 하물과 배만 아니라 우리 생명에도 타격과 많은 손해가 있으리라 하되

11) 백부장이 선장과 선주의 말을 바울의 말보다 더 믿더라

12) 그 항구가 과동하기에 불편하므로 거기서 떠나 아무쪼록 뵈닉스에 가서 과동하자 하는 자가 더 많으니 뵈닉스는 그레데 항구라 한 편은 동북을, 한 편은 동남을 향하였더라

13) 남풍이 순하게 불매 저희가 득의한 줄 알고 닻을 감아 그레데 해변을 가까이 하고 행선하더니

14) 얼마 못되어 섬 가운데로서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대작하니

15)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 대로 두고 쫓겨가다가

16) 가우다라는 작은 섬 아래로 지나 간신히 거루를 잡아

17) 끌어 올리고 줄을 가지고 선체를 둘러 감고 스르디스에 걸릴까 두려워 연장을 내리고 그냥 쫓겨가더니

18) 우리가 풍랑으로 심히 애쓰다가 이튿날 사공들이 짐을 바다에 풀어 버리고

19) 사흘째 되는 날에 배의 기구를 저희 손으로 내어 버리니라

20)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

21)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22)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뿐이리라

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25)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26) 그러나 우리가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

27) 열나흘째 되는 날 밤에 우리가 아드리아 바다에 이리저리 쫓겨 가더니 밤중쯤 되어 사공들이 어느 육지에 가까워지는 줄을 짐작하고

28) 물을 재어보니 이십 길이 되고 조금 가다가 다시 재니 열다섯 길이라).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 빌립보에서 돌아올 때 닷새가 소요되었던 것(20:6)과 비교해 볼 때,

 

(20: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네압볼리까지 250km를 항해하는데 이틀밖에 걸리지 않은 것은 그 순풍의 정도를 짐작해 볼 수 있게 한다.

 

 

 

[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빌립보에 이르니 - B.C.360년경 마게도냐의 필립 2세에 의해 이름이 크레니데스(''이라는 뜻)에서 빌립보로 바뀌었다.

 

이곳은 줄리어스 시이저를 살해했던 부루투스와 캐시우스가 B.C.42년 안토니아 옥타비안(나중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됨)에 의해 패퇴(敗退)당한 장소로 유명하다.

이 지역은 바로 그때 이후 승리의 기념으로 로마의 식민지로 지정되어 황제에게 직접 배속됨으로써 주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유를 누렸으며 공물과 세금을 면제받기도 하였다.

또 이탈리아 도시의 시민들이 누렸던 것과 동일한 권리를 누렸다.

 

이곳은 바다와 육지 양쪽 통로상의 전략적인 위치에 있어서 농업과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으며 특히 금광과 비옥한 평야로 유명하였다.

이밖에도 이곳에는 유명한 의학을 가르치는 학교가 있었다.

 

마게도냐 지경 첫성 - 누가가 빌립보를 이렇게 표현한 사실에 대해 논란이 제기되곤 한다.

 

이에 대해서는 사본들 역시 차이를 보여 정확한 해석을 하는데 있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 nus),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 대다수의 본문에 따르면 '프로테 메리도스 테스 마케도니아스 폴리스'('마케도냐 지경의 첫성')라고 되어 있으나, 실제 첫째가는 도시라 할 만한 곳은 빌립보가 아니라 오히려 B.C.167-146년 사이에는 암비볼리 였고 그 후에는 그 주의 수도 데살로니가였다.

 

그런가하면 어떤 사본들에 '프로테'('첫째')대신 '프로테스'('1')로 되어 있어 빌립보가 '마게도냐 제1지구의 도시'였음을 가리켜 주고 있다.

 

, B.C.146년 전지역이 마게도냐주()로 개편되기 전 B.C.167년에 마게도냐가 로마인들에 의해 4개 행정구역으로 나누어졌는데, 그 중에서 제1지역의 도시였다는 말이다.

 

그런가하면 베자 사본(D)'첫째 '(프로테)'케팔레'('우두머리', '수도')로 이해하여 주() 수도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

 

이때의 수도가 실제로는 암비볼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쟈안(Zahn)은 여러 나라들이 하나 이상의 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어 이 사본을 옹호한다.

 

그러나 '프로테'가 도시의 경칭(敬稱)으로 이용되기도 했지만, 빌립보와 같은 로마 식민지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았다.(Haenchen)

 

이러한 해석상의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부분은 '마게도냐 지구의 첫째가는 도시'로 해석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the chief city of that part of Macedonia, KJV).

 

왜냐하면 행정상의 고려 외에 누가가 이 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16: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안식일에 - 새로운 도시를 방문할 때 도착한 후 첫 안식일에 지역 회당을 방문하여 가급적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의 일반적 관례(慣例)였다.

 

(13: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14:1 이에 이고니온에서 두 사도가 함께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말하니 유대와 헬라의 허다한 무리가 믿더라)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 여기의 '기도처'가 실제 회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Schurer).

 

그러나 본절, 16절의 '기도처'는 회당이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여자들만 있었던 것으로 나타나 있고 또 본서의 다른 곳에서 '회당'이라는 구체적 명칭이 자주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17:1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유대인의 법에 따르면 하나의 회당에는 최소한 10명의 남자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여자들만 언급되는 점으로 보아 이곳의 '기도처'는 여자들이 관습적으로 모여 기도하던 곳으로 추측된다. (Marshall).

 

한편 이러한 기도처의 장소로는 주로 강변, 바다 근처 등이 선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는 유대의 정화 의식에 필요한 물을 구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견해도 있다. (Marshall).

 

문 밖 강가에 나가 - 여기서 '강가'는 갱가이트강(the Gangites) 아니면 크레니트(the Crenides) 강변을 가리키는 말일 것이다.

 

여자들에게 - 남자가 한 사람도 참석하지 못한 이유 중에 하나는, 글라우디오(Cla- udius)가 로마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할 때 그 식민지 도시인 빌립보도 그러한 전범을 따랐기 때문일 것이다(Lenski).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작은 모임도 무시하지 않았다.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단순히 청중들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는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다(18:20).

 

 

 

[16: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 - '루디아'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학설이 있다.

 

렌스키(Lenski)는 누가가 여격을 사용해 개인의 이름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의 루디아는 개인의 이름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은(Bruce ) '루디아'가 이름이 아니라 단지 고대 루디아 왕국의 영토였던 지방에 살던 사람 즉 '루디아(출신의) 여인'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생각한다.

 

당시 루아디라는 직조와 자색 염료 사용 기술로 유명했는데 루디아가 빌립보에 온 것은 계속 그 사업을 확장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한편 그녀는 두아디라에 있을 때 이미 회당에서 유대교의 가르침을 받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들었는데 - 여기에는 '듣고 있었다', '듣곤 했다'는 미완료형으로서 반복되는 모임을 암시한다.

이 동사는 루디아가 바로 첫 안식일에 회심(回心)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Lenski).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 바울의 말을 들을 때에 그녀의 마음을 열어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3:6-7)는 바울의 고백을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다.

 

 

 

[16:15] 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 8:36에 등장하는 에디오피아인의 경우처럼, 루디아가 신앙을 고백한 후 곧바로 침례가 베풀어졌다. 루디아의 집 또한 고넬료의 집처럼 침례를 받았다.

 

(10:47-48 이에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침례 줌을 금하리요 하고

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 하니라 저희가 베드로에게 수일 더 유하기를 청하니라;

 

11:14 그가 너와 네 온 집의 구원 얻을 말씀을 네게 이르리라 함을 보았다 하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