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거듭난 삶 2024. 1. 1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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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의 핍박 2

 

성 경: [18:18-22]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19)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21)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22)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더 여러 날 유하다가 - 바울의 전도여행을 살펴보면 바울은 항상 자신에게 닥친 여러 위험한 상황들이 지난 후에야 자신이 머물던 곳을 떠나곤 하였다.

 

(14:6 저희가 알고 도망하여 루가오니아의 두 성 루스드라와 더베와 및 그 근방으로 가서, 20 제자들이 둘러 섰을 때에 바울이 일어나 성에 들어갔다가 이튿날 바나바와 함께 더베로 가서;

 

16:40 두 사람이 옥에서 나가 루디아의 집에 들어가서 형제들을 만나 보고 위로하고 가니라;

 

17: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20: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고린도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바울이 여기서 '여러 날' 더 머문 것이 앞서 11절에서 언급된 16개월의 기간에 포함되는 것인지 아니면 추가되는 것인지 확실치가 않다.

 

그런데 바울이 갈리오의 뜻하지 않은 옹호를 받게 된 상황을 감안한다면 바울은 고린도를 그렇게 서둘러 떠날 이유가 없었을 것이므로 후자의 견해가 더 적절한 듯하다(I.H. Marshall).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 브리스길라가 그녀의 남편인 아굴라보다 먼저 언급되는 것은 여기 외에도 몇 군데 더 있다(26;16:3;딤후4:19).

 

이는 브리스길라가 아굴라보다 먼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든지 아니면 브리스길라의 신앙이 아굴라의 신앙보다 더 신실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쨌든 이들 부부는 바울의 선교에 매우 헌신적으로 협조한 사람들이었다.

 

(16: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 바울이 고린도에서 그의 선교 사역과 관련하여 어떤 목적을 두고 하나님께 일정 기간의 나실인의 서원(Nazurute viw, 21:17-26 주제 강해 '나실인 제도' 참조)을 하였으며 이제 그 기간이 다 지나갔음을 보여준다(6:2-21).

 

(21:17-26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20)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

23)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 된 것을 고하니라)

 

 

원래 이러한 서원(誓願)은 예루살렘에서 온전히 마감되는데 그곳에서 머리카락을 하나님께 바치고 희생 제사를 드렸다.

 

(6:2-21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남자나 여자가 특별한 서원 곧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거든

3)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하며 포도주의 초나 독주의 초를 마시지 말며 포도즙도 마시지 말며 생포도나 건포도도 먹지 말지니

4)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에는 포도나무 소산은 씨나 껍질이라도 먹지 말지며

5) 그 서원을 하고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은 삭도를 도무지 그 머리에 대지 말 것이라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날이 차기까지 그는 거룩한즉 그 머리털을 길게 자라게 할 것이며

6)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리는 모든 날 동안은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 것이요

7) 그 부모 형제 자매가 죽은 때에라도 그로 인하여 더럽히지 말 것이니 이는 자기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표가 그 머리에 있음이라

8) 자기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9) 누가 홀연히 그 곁에서 죽어서 스스로 구별한 자의 머리를 더럽히거든 그 몸을 정결케 하는 날에 머리를 밀 것이니 곧 제칠일에 밀 것이며

10) 제팔일에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회막문에 와서 제사장에게 줄 것이요

11) 제사장은 그 하나를 속죄 제물로, 하나를 번제물로 드려서 그의 시체로 인하여 얻은 죄를 속하고 또 그는 당일에 그의 머리를 성결케 할 것이며

12) 자기 몸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드릴 날을 새로 정하고 일 년 된 수양을 가져다가 속건제로 드릴지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때에 그 몸을 더렵혔은즉 지나간 날은 무효니라

 

13) 나실인의 법은 이러하니라 자기 몸을 구별한 날이 차면 그 사람을 회막문으로 데리고 갈 것이요

14) 그는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되 번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속죄 제물로 일 년 된 흠 없는 어린 암양 하나와 화목 제물로 흠 없는 수양 하나와

15) 무교병 한 광주리와 고운 가루에 기름 섞은 과자들과 기름 바른 무교전병들과 그 소제물과 전제물을 드릴 것이요

16) 제사장은 그것들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가 속죄제와 번제를 드리고

17) 화목 제물로 수양에 무교병 한 광주리를 아울러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와 전제를 드릴 것이요

18)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은 회막문에서 그 머리털을 밀고 그것을 화목 제물 밑에 있는 불에 둘지며

19) 자기 몸을 구별한 나실인이 그 머리털을 민 후에 제사장이 삶은 수양의 어깨와 광주리 가운데 무교병 하나와 무교전병 하나를 취하여 나실인의 두 손에 두고

20) 여호와 앞에 요제로 흔들 것이며 그것과 흔든 가슴과 든 넓적다리는 성물이라 다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니라 그 후에는 나실인이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느니라

21) 이는 곧 서원한 나실인이 자기 몸을 구별한 일로 인하여 여호와께 예물을 드림과 행할 법이며 이 외에도 힘이 미치는 대로 하려니와 그 서원한 대로 자기 몸을 구별하는 법을 따라 할 것이니라).

 

여기서 바울이 유대의 옛 관습을 좇아 서원을 했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바울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생각했고

 

(고후 11:22 저희가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저희가 아브라함의 씨냐 나도 그러하며)

 

또 제3차 전도 여행을 끝맺음 할 때에도 그는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

 

(23:6 바울이 그 한 부분은 사두개인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인인 줄 알고 공회에서 외쳐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나는 바리새인이요 또 바리새인의 아들이라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을 인하여 내가 심문을 받노라).

 

한편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가까운 곳으로 고린도의 외항(外港)이며 지중해 연안의 여러 도시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 도시에는 바울이 고린도에 체류하며 전도하여 거둔 열매인 여집사 뵈뵈가 봉사하는 교회가 있었다.

 

(16:1-2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2)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18:19] 에베소에 와서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자기는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에베소에 와서 - 이 도시는 로마의 아시아 관할지역의 수도이며 상업 중심지였다. 아울러 이 도시는 원로원과 시의회를 갖춘 자유헬라 도시였다. 이곳에는 아데미 여신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는데 이 신전은 고대의 칠대불가사의(七代不可思議)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A.D. 262년 고트족에 의해 파괴되었다.

 

저희를 거기 머물러 두고 -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이곳에 계속 머물게 하였다는 의미인 듯하며 이들의 체류 기간은 4, 5년 정도로 짐작된다. 이들은 이곳에서 믿음의 형제들을 대접하며 바울의 서신을 통해(고전 16:19) 고린도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기도 하였다.

 

(고전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그리고 이들은 데메드리오의 공격시에(19:23-41) 이곳에 있었고 바울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생명도 아끼지 않았으며

 

(16:4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A.D. 54(56) 글라우디오 횡제가 죽은 후 로마로 돌아갔다.

한편 이 때의 실라와 디고테의 행적에 관해서는 알기가 어렵다.

아마도 고린도 교회에 계속 머물며 그 곳의 사역을 감당했거나 아니면 바울과 계속 동행해 예루살렘에 갔다가 수리아 안디옥을 거쳐 에베소에 돌아왔을 것이다(Longenecker).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변론하니 - 바울이 낯선 땅에 들어서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제일 먼저 회당을 찾는 것은 전형적인 그의 선교 방법이었다.

 

(4안식일마다 바울이 회당에서 강론하고 유대인과 헬라인을 권면하니라;

 

13: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14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7:1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7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그런데 바울이 회당을 찾은 이 날은 안식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회당을 찾으면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꼭 안식일이 아니라 하더라도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드리기 위해서 또는 토론과 담소를 즐기기 위해서라도 회당에 모이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회당을 찾았고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그리고 바울이 회당을 찾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유대인들의 복음에 대한 반응을 알아보고자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8:20] 여러 사람이 더 오래 있기를 청하되 허락지 아니하고 - 다른 곳에서와는 달리 에베소에서의 사역은 매우 전망이 좋았고 사람들도 호의적이었다. 바울의 설교에 깊은 인상을 받은 많은 에베소 사람들이 바울의 체류를 간청하였지만 그는 허락하지 않고 자신의 여행 길을 재촉한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여행 길을 재촉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다. 그가 왜 이렇게 여행을 서둘렀는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있을 수 있겠지만 대략 21절에서 제시되는 바와 같이 몇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18:21] 작별하여 가로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고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만일 하나님의 뜻이면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 바울 자신도 어느 정도 에베소에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듯하다. 그러나 그는 에베소에서의 아쉬움을 남긴 채 에베소의 선교 전망과 이곳에 뿌린 씨앗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에베소를 떠나게 된다.

 

배를 타고 에베소를 떠나 - 바울이 서둘러 에베소를 떠나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던(22) 몇 가지 이유를 추측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서방 사본(Western Text)과 비잔틴 사본(Byzantine Text)에는 본 구절에

 

'내가 반드시 예루살렘에서 다가오는 절기를 지키야 하리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 사본들의 구절을 참고해 보면 바울은 아마도 유월절 내지는 오순절을 지키고자 예루살렘에 서둘러 가려고 했을 것이다.

 

2.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의 성과를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함으로써 예루살렘교회와 이방 교회간의 유대를 공고히 하고자 했을 것이다.

 

3. 바울은 예루살렘을 방문해 성전에서 그의 머리카락을 번제로 드리고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써 그의 서원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고자 했을 것이다.

 

(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21: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 된 것을 고하니라).

 

 

 

[18:22]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 가이사랴는 헤룻 대왕 이후 예루살렘의 항구 역할을 해왔다.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 어떤 학자들(Knopf, baurnfeind)은 본 구절에 예루살렘이라는 지명이 없기 때문에 바울이 가이사랴에 있는 성도들의 안부를 물어보려고 항구에서 가이사랴 성내로 '올라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바울이 가이사랴 항구까지 온 것은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하기 위함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l.H.Marshall).

 

가이사랴는 예루살렘에서 약 104Km 떨어져 있었으며 예루살렘을 향해서는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사실 팔레스틴의 지형상 헤브론쪽의 방향을 제외하고난 예루살렘은 어느 쪽에서든지 윗쪽에 위치해 있었다.

 

바울은 그가 그리스도를 만난 후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했으며 이번이 그중 4번째 였다.

 

(9:26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11:30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그리고 세차례에 걸친 바울의 선교 여행은 모두 예루살렘 방문으로 마감되었다고 본다.

 

(본절 가이사랴에서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15:4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21:15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그는 예루살렘 교회를 방문해서 그의 두 번째 선교 여행의 결과를 보고하고 이 교회와 이방 교회간의 결속(結速)을 다졌을 것이다. 아울러 축제에 참석하여 30일간의 결례기간을 가진 후 성전에 올라가 그의 서원대로 머리카락을 번제로 드리고 희생 제사를 드렸을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그의 방문 목적이 끝나자 그의 이방 선교의 전도 기지인 안디옥으로 돌아갔다. 안디옥은 예루살렘 북쪽 약 480Km 지점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