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거듭난 삶 2024. 1. 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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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게도냐 사역

[이방교회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권면]

 

성 경: [20:1-5]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2)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3)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라

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20:1] 소요가 그치매 바울이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소요가 그치매 - 여기서 소요란 데메드리오 사건(19:23 이하)으로 에베소 극장에서 일어난 소동을 말한다.

 

이 소요는 바울의 에베소 사역 가운데 가장 극적인 사건의 하나이다. 이제 소동이 진정되자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것이 그 자신의 안전과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자신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서 두려움 속에서 소요가 그치는 틈을 타서 서둘러 도망가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바울은 복음 증거하는 일을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소요가 그치매'라는 문구는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게 된 이유나 동기를 진술하고 있다기보다는 떠나가게 된 시간에 관해서 진술하고 있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R.C.H. Lenski).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 이것은 바울이 놀라움에 가득차서 갑작스럽게 야간 도주하듯이 그들을 떠난 것이 아니라 작별의 의식을 다 갖추고 그들과 진지하게 헤어졌음을 뜻한다.

 

'권한 후에'는 격려하고 위로하며 권면한다는 뜻이다. 이제 자신의 전도 계획에 의해서 떠나려는 바울은 그들이 믿음 위에 굳게 서기를 격려하고 권면하며 또한 위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따라서 여기의 권한다는 말 속에는 기독교 설교의 포괄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또한 '작별하고'는 권함이 끝난 후 서로 포옹하고 사랑의 입맞춤을 나눈 것을 뜻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초대교회의 작별에 대한 일반적인 관습은 서로 안고 입 맞추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37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 19장의 폭동이 있은 직후에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마게도냐로 향했다.

 

(19: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람세이(Ramsay)는 바울이 에베소에서 드로아로 항해하는 연안 무역선을 탔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는 이전에 고린도 교회의 심상치 않은 사태에 대한 소식을 알고자 파견했던 디도를 드로아에서 만나 보고를 들을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도를 만나지 못하였으므로 드로아에서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활짝 열려 있었는데도

 

(고후 2:12-13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13)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치 못하여 저희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고린도 교회에 대한 여러 생각들 때문에 곧장 마게도냐로 향하였다.

 

 

 

[20:2]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에 이르러

 

그 지경으로 다녀가며 - '지경'에는 특정한 지리적인 위치를 지적하는 낱말로서 에베소에서 고린도에 이르는 긴 육로 여행도를 다 망라(網羅)하고 있다.

 

즉 바울은 처음 전도의 옛 중심지인

 

빌립보

(16: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데살로니가

(17: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베뢰아의 공동체를 재방문했을 것이며

 

(17: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이 기간 중에 바울이 로마서 15:19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일루리곤(Illyricum)까지도 갔을 것이다.

 

(로마서 15: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또한 이때 그가 이그나티우스 대로(the Egnatian Road)를 따라 서쪽으로 여행하여 그 길의 끝인 아르리아 해의 두로하키움(Dyrrhachium)에 까지 여행했다고도 볼 수 있다(F.F. Bruce).

 

고린도 후서도 이때 기록한 것으로 본다.

 

(고후 7:6 그러나 비천한 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이 디도의 옴으로 우리를 위로하셨으니).

 

바울의 여행의 주 목적은 그곳 교회들을 계속 격려할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의 곤궁(困窮)한 신자들을 돕기 위하여 연보를 거두는 데 있었다. (Tyndale).

 

바울은 이 연보를 위해 갈라디아와 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방의 교회들에게 준비시켰던 것이다.

 

(15:25-32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26)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

27)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28)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저희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를 지나 서바나로 가리라

29) 내가 너희에게 나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30)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31) 나로 유대에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서 구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하고

32) 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고전 16:1-4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3) 내가 이를 때에 너희의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4)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저희가 나와 함께 가리라).

 

이방인 교회들의 연보는 단순히 사랑을 나타내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서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한 몸 된 교회를 이루고 있음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였다.

 

 

 

[20:3] 거기 석 달을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석 달을 있다가 - 그곳은 헬라, 즉 아가야 지방이었지만 실제로 바울이 체류하였던 곳은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였다. 체류 기간은 삼개월로 A.D. 56-57년에 걸친 겨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Bruce).

 

바울은 고린도에서 가이오의 따뜻한 대접을 받으면서

 

(16:23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이 성의 재무 에라스도와 형제 구아도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이 기간에 로마서를 기록하였다.

 

이 서신은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그의 방문에 대한 준비도 시키고 또한 체계적이면서도 포괄적으로 복음의 내용을 설명해 주기 위함이었다. 바울이 이처럼 로마에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장차 로마를 복음 전파를 위한 전진 기지로 사용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5:17-23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이며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21)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22)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23)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려는 원이 있었으니).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로 다녀 돌아가기를 작정하니 - 바울은 고린도에서 이제 어느 정도 자기의 사역이 완성되었음을 알고 헬라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람세이(Ramsay)에 의하면, 바울은 유월절 명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원하는 자들이 타고 가는 순례선(Pilgerschiff)을 타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18:18 바울은 더 여러 날 유하다가 형제들을 작별하고 배 타고 수리아로 떠나갈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함께 하더라 바울이 일찍 서원이 있으므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깎았더라).

 

그런데 바울을 박해해 오던 유대인들이 그가 배에 탔을 때 그를 암살하거나 또는 배 밖으로 밀쳐 버림으로써 없애버릴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부득불 노정을 변경하여 해상보다 훨씬 늦은 육로를 통하여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하였다.

 

여기서 '공모'는 그의 생명을 노리는 필사적인 음모를 뜻한다.

 

그리고 '작정하니''결단을 내렸다'(He decided)라는 뜻으로서 그의 생각이 우연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도적인 계획에 의해 결정되었음을 나타낸다.(Bruce).

 

 

 

[20:4]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라. -

 

'함께 가는' '그와 동행했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바울을 수행(隨行)하는 것을 말한다(E. Haenchen).

 

이 일곱 사람은 지난 2년 동 안 이방 교회들이 예루살렘 교회의 궁핍한 성도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연보를 냈던 것을 맡아 가지고 가는 사명을 받은 각 교회의 대표자들이다.

 

바울은 결코 자신의 손으로 이 연보를 관할하지 않고 각 교회의 대표자들에게 맡겼는데 이것은 초대 교회의 사도적 결정을 따른 행위로서 매우 지혜로운 일이었다.

 

(6:1-6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그러면 이제 바울과 함께 동행한 각 교회의 대표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소바더 -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로서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한다. 16:21에 나타난 바울의 친척 소시바더와 동일인인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다.

 

아리스다고 - 19:29의 아리스다고와 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는 로마까지 바울을 따라 갔으며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하는 데살로니가 출신이다(27:2;4:10;24).

 

세군도 - 마게도냐 교회를 대표한 데살로니가 출신으로 단지 여기만 나오는 인물이다.

 

가이오 - 더베 출신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대표한다(19:29).

 

디모데 - 루스드라 출신으로 갈라디아 교회를 대표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인물이다(16:1-3).

 

두기고 - 아시아 사람으로 아시아 교회를 대표하며 언제나 바울과 동행한 인물로서 골로새와 에베소 교회에 바울의 서신을 전달한다(6:21;4:7;딤후 4:12;3:12).

 

드로비모 - 에베소 출신으로 아시아 교회를 대표한다(딤후 4:20).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주목되는 것은 고린도 교회의 대표자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대표해서 예루살렘에 간 것 같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디모데를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디모데는 아가야 지방과 고린도 교회에 잘 알려졌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고후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또 온 아가야에 있는 모든 성도에게)

 

하지만 고후 8:6 이하로 미루어보건대 고린도 교회의 연보는 바울이 그 교회에 보낸 디도와 다른 형제에게 맡겨져 보내졌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여기서 디도가 언급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에 대해서는 디도가 누가의 형제였다는 주장(Ramsay)에서 신빙성 있는 답변을 찾는다.

 

따라서 누가 자신이 고린도 교회의 연보를 수령하기 위하여 디도와 함께 파견된 두 형제 중 한 사람이었으리라고 짐작된다(F.F. Bruce). 아무튼 바울 사도는 그의 활동의 절정기에서 여러 수행인들에 둘러싸여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한다.

 

 

 

[20: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그들은 먼저 가서 - 여기서 그들이란 앞절에 언급된 일곱 사람을 말한다.

 

그들은 빌립보를 떠나 네압볼리를 경유 드로아로 갔다. 그들이 무엇 때문에 먼저 갔는지 그 이유가 뚜렷하지 않으나 바울은 빌립보에서 누가와 합류(合流)해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일곱 사람보다 후에 드로아로 가기로 여정을 짰던 것으로 추측된다.

 

우리를 기다리더라 - '우리가' 누구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다만 우리 가운데 누가가 들어 있는 것만은 틀림없다.

 

(16: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따라서 누가를 포함한 바울 일행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