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듭난 삶 2024. 1. 2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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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도에서 예루살렘까지

 

사도행전 211-16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새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려 함이라.

 

바울의 일행은 무교절 후, 빌립보를 출발하여, 아시아로 건너가, 드로아에서 바다라(21:2)까지 해안을 따라 항해하고, 여기서 해로를 끝내고, 육로 가이사랴에 이르러 거기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오순절 조금 전에 그곳에 닿았다.

 

만약 1927년의 금년이었다면, 이달(4)19일경 빌립을 떠나, 5월초에 예루살렘에 닿았으리라. 아름다운 에게해(그리스 소아시아간의 지중해만 입부)의 봄의 항해이다.

대륙과 섬과의 사이를 누비며, 항구마다 정박하면서 평안한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곳곳마다 상륙하여 신앙의 형제의 안부를 묻고, 혹은 하루, 혹은 이레, 함께 머물면서 영교를 따뜻이 하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아갔던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서 좋은 휴양이었던 동시에, 또 좋은 전도여행이었으리라.

해로(海路)의 예루살렘 상경으로서, 거기에 환난누수가 그를 기다리는 줄 알면서도, 내일의 일을 염려하는 일 없이, 오늘의 은혜로 내일의 노고를 잊고, 평온 감사의 여로를 계속했으리라.

 

바울은 이르는 곳마다 격렬한 적을 가졌다.

에베소로, 고린도로, 특히 예루살렘으로, 그의 대적은 그의 뒤를 따르고, 그의 살을 먹지 않고서는 마지않는 무저의 증오를 가졌다.

 

이에 대하여 그는 이르는 곳마다 그를 열애하는 친구를 가졌다.

이 여행에 있어서 이것이 잘 보였다. 드로아에서, 밀레도에서, 두로에서, 가이사랴에서, 그는 친구의 사랑의 환영을 받았다.

 

밀레도에서는 그들은 모두 크게 소리 내어 울고, 바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고, 그 다시 자기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는 말로 특히 슬퍼하고, 그를 배까지 배웅했다’(사도행전 20:37)고 있다.

 

마치 애인의 이별 같다.

 

또 두로에 있어서는, 체류7일 후에 우리가 떠나 여로에 올랐다. 그들이 처자와 함께 우리를 전송하여 성밖까지 이르렀는데, 함께 바닷가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서로 작별하고 나서, 우리는 배에 오르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21:5-6)고 있다.

 

그리스도 신자의 교제의 아름다움, 지금도 옛날도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다시 남하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여기서도, ‘형제들의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머물렀다’(21:7)고 한다.

 

거기서 육로, ()따라, 갈멘산가를 넘어, 로마의 정청의 소재지인 가이사랴에 이르니, 여기서는 전도자 빌립이 그의 가족과 함께 바울과 그의 일행을 영접했다.

 

빌립은 순교자 스데반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의 최초의 집사로서 택함 받은 7인중의 1인으로서, 전에는 주거를 정하여 이방 전도에 종사했다.

그 빌립이 이제 전의 박해자 바울을 그 집으로 맞이하여, 형제의 사랑으로서 그를 접대했다는 것이다.

 

(8:26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그리스도로 맺어져, ()의 적()은 지금의 형제였다.

바울이 빌립의 집에 객이 된 것은, 스데반의 집에 객이 된 것과 같은 일로서, 이런 아름다운 일은 없다.

 

주객(主客) 상대하여 옛말을 말한 때에 실로 감개무량했으리라.

 

 

빌립에게 4명의 딸이 있었다. 모두 예언자로서 처녀였다고 한다.

 

무척 애교(愛嬌) 없는 듯이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예언자란, 성령에 충만되어, 전도, 위자 등의 봉사의 임무에 임하는 일이었다.

 

처녀란, 남편에게 시집가는 일없이 종생 사랑의 임무에 임하는 일이었다.

빌립의 아내의 기재 없음을 보면, 그녀는 이미 별세했던 것으로 보이고, 여기서 4명의 딸이 공력하여 그들의 늙은 아버지의 전도를 도운 것이리라.

실로 아름다운 일가로서, 바울의 일행은 여기서 모범적 전도사의 가정을 보았으리라.

 

처녀에 대해서는 바울은 전에 고린도인에게 자세히 써 보내 말했다.

 

처녀, () 출가하지 않은 자는 몸도 영도 거룩하기 위해 주의 일을 생각한다. 출가한 자는,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까고, 이 세상일을 생각하며 염려한다그러므로 출가하는 자의 일은 좋다. 출가하지 않은 자의 일은 더욱 좋다’(고린도전서 7:25이하).

 

여기서 바울이 말한 바를 빌립은 이미 실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녀로서 사는 것은, 비구니(여승)가 되어 세상 버린 자(은자) 되는 것 아니다.

보통 이상으로 사랑의 활동의 생애를 보내는 것이다.

 

인생 최대의 행복을 결혼에 있어서 구하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많은 어진 여자는 빌립의 딸의 취하는 길을 취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누가는 특히 빌립의 딸들에 대하여 일언을 써서 남긴 것은, 이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였으리라.

 

바울은 가이사랴에 있어서의 빌립의 집에 유하기를 수일, 친구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거기서 큰 고난을 만나, 살해될 것을 면하고, 로마 시민권을 이용하여 로마병에게 수호되고, 다시 가이사랴에 호송되어, 여기서 2년간 감금되었다.

 

그리고 이 오랜 연월동안, 재옥(在獄)의 그를 위로한 자는, 전도자 빌립과 그의 딸들이었으리라.

 

그리고 누가는 바울과 함께 가이사랴에 왔다가 그와 함께 여기를 떠났기 때문에, 이 동안의 사정을 잘 목격하여, 부인의 미덕을 예찬하는 일을 기뻐한 그가 특히 여기서 빌립의 딸들에 대하여 기록했으리라.

 

(내촌의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