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거듭난 삶 2024. 2. 11. 00:20
728x90

공회 앞에서 변론하는 바울 2

[공회 앞에 선 바울]

 

성 경: [23:7-11]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9) 크게 훤화가 일어날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23:7] 그 말을 한즉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사이에 다툼이 생겨 무리가 나누이니

 

다툼이 생겨 - 바울의 발언은 즉시 효과를 나타내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 신학적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즉 서로 다른 입장을 옳다고 주장하면서 맞세우는 것이다.

 

이 두 종파는 기독교에 대해 그토록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저들 간에 대립되는 신학적 노선에 있어서는 첨예한 분열상(分裂相)을 드러내었다.

이는 비본질적인 문제를 두고 기회만 있으면 논쟁을 일삼는 소위 비신앙적 신학자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23: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 사두개인들은 합리적이고 현세 지향적이며 부유한 계층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내세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았다.

 

특히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복음서에서도 예수와 부딛치는 주제로 등장한다.

 

(22:23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에 예수께 와서 물어 가로되).

 

반대로 바리새인들은 부활, 천사, 영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주제들은 두 집단이 가장 첨예한 대립을 보인 부분이었다.

 

이 두 집단 사이에는 신학적 차이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한 감정적 대립이 잠재해 있었기 때문에 논쟁은 필요 이상으로 격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견해 차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역사의 지배 원리 -

 

바리새인 : 역사는 신적 목적을 가지며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진다고 믿었다.

사두개인 : 바리새인의 견해를 완전히 부정하며 자신의 삶을 영위할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였으며 역사 자체도 그렇다고 주장했다.

 

 

천사론 -

 

바리새인 : 천사와 마귀의 계층이 있다고 믿었다.

사두개인 : 천사도 없고 마귀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자유의지와 결정론 -

 

바리새인 : 자유의지나 또는 하나님의 주권만으로는 다른 일(사람)의 운명을 취소할 수 없다는 중간적인 입장을 취한다.

사두개인 : 자유의지란 궁극적으로 역사 과정의 한 결정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다.

 

 

사회적 활동 -

 

바리새인 : 인간 평등을 주장하면서 다방면에 걸쳐 순수한 민족적 운동을 전개하였다.

사두개인 : 자신들의 이해득실(利害得失)에 민감하여 현상 유지에만 급급하였다.

 

 

 

[23:9] 크게 훤화가 일어날새 바리새인 편에서 몇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가 저더러 말하였으면 어찌 하겠느뇨 하여

 

훤화 - '비명을 지르다', '울부짖다'란 뜻의 '크라조'에서 유래한 말로 큰 외침이나 고함 소리를 묘사하는 말이다. 이것은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의 논쟁이 매우 격렬해졌음을 시사한다.

 

서기관이 일어나 다투어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악한 것이 없도다 혹 영이나 혹 천사 -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논쟁 가운데 누가는 몇 사람의 바리새인이 말한 바울에 대한 변론을 기록하고 있다.

 

본문의 서기관은 율법 전문가를 가리키는데 바리새인이 대부분이었다.

바리새인들의 말인즉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말했다면 그것에 대해 어떻게 반박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여기서 영이나 천사가 바울에게 말했다고 할 때 그것이 다메섹에서의 체험을 말하는 것인지

 

(22:6-10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아니면 그 후 성전에서 기도할 때 주님께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을 떠나 이방인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신 것(22:17-21)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다.

 

(22:17-21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한편 바울을 옹호하는 쪽으로 돌아선 몇몇 바리새인은 본문에 등장하는 자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들의 변호성 발언도 바울에 대한 지속적 지지의 입장을 나타낸 것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다만 이들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적어도 관대한 입장을 지닌 자들이 있었으리라는 가능성은 배제될 수 없다. 왜냐하면 유대인 그리스도인중 다수는 그 생활양식에 있어 다른 유대인들과 별로 상충(相沖)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3:10]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영문으로 들어가라 하니라

 

큰 분쟁이 생기니 천부장이 바울이 저희에게 찢겨질까 하여 군사를 명하여 내려가 무리 가운데서 빼앗아 가지고 - 급기야는 천부장이 바울을 보호하기 위하여 군대를 동원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험악해지고 말았다.

 

'찢겨질까'에는 '깨뜨려 버리다', '산산조각을 내다'는 뜻의 '디아스파오'의 제1부정 과거형으로서 천부장이 특별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바울의 신상에 큰 위험이 있었을 상황이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빼앗아'라는 표현도 사두개인들이 바울을 붙잡고 폭력을 가하려 했기 때문에 강제로 떼내어 데려가야만 했던 상황을 현장감 있게 묘사한다.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 주님께서는 일찍이 생전에 제자들에게 같은 말로 위로했었다.

 

* 참조 : (16: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이제껏 바울은 그의 생을 통해 많은 환상을 보고 주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22: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27:23-24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24)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 상황이 지금처럼("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가깝게 느껴지도록 묘사된 경우는 없었다.

이는 현재 시점의 긴박성을 시사한다.

 

그는 일찍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후에 로마로 갈 계획을 세운 바 있고

 

(19:21 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예루살렘에서의 고난을 이미 각오한 바 있었지만

 

(20:23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1:10-13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자 그의 심정은 적잖이 당혹감에 사로 잡혔을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주님은 그에게 나타나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주셨고 로마 선교에 대한 새로운 비전(vision)을 제공해 주셨다.

 

22:21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는 말씀이 여기서는 '로마'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제 로마로 가는 것은 단순한 바울의 바램이 아니라 주님이 부여해 준 사명(使命)임이 분명하게 제시되며

 

지금 그에게 매우 가깝게 감지되는 격려의 말씀은 이후 2년간에 걸친 로마 전도여행에서 많은 위험이 따름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게 하는 큰 힘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