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거듭난 삶 2024. 2. 2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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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랴에서의 구류 2

 

 

사도행전 2427: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바울의 예루살렘 상경은 어느 점으로 보나 실패였다.

유대교회와 이방교회와의 화합일치를 도모하렴의 목적은 전연 실패했다.

 

교회는 바울이 다년 고심한 결과로서 멀리서 가져온 기부금을 받았으나,

이에 답하는데 있어서 사랑과 감사로서 하지 않았다.

 

바울을 적의 박해에 그대로 맡겨 두고, 그를 구하려 하지 않았다.

바울은 새로이 적을 만들기 위해서, 신앙의 형제에게 의심 받기 위해서,

그 두 가지 위해 일부러 원로(遠路) 도성에 올라간 듯한 결과로 되었다.

 

그와 그의 일행의 실망은 어떠했으랴!

 

만약 보통 사람이었다면,

그는 이 결과를 보고 신앙을 버리고 전도를 그만두었으리라.

하지만 하나님은 그를 지키셨다.

 

기적적으로 그를 위험에서 구출하셨다.

그리고 가이사랴에 있어서 2년간 그를 금고의 몸으로 하여,

그에게 정사 묵고의 기회를 주셨다.

 

사람의 무정(無情)은 하나님의 유정(有情)에 의해 치유된다.

하나님께 인도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실망 속에 성공의 길이 가로 놓여있다.

 

예루살렘은 그를 물리쳤으나 가이사랴는 그를 영접했다.

그것도 유폐의 고요함으로서 그를 영접했다.

 

여기서 그는 과거를 회고하면서 장래를 계획했다.

과거의 총 결산을 행하여 미래의 대 발전을 꿈꾸었다.

위인의 생애에 있어서 무위(無爲)의 연월이 가장 유의의 연월이다.

 

바울은 여기서 그의 활동의 한 중간에 2년간의 휴지를 불가피하게 되어,

일단의 향상과 일배의 발전을 했다.

 

이라 하여 2년을 지난 후, 보르기오 베스도, 벨릭스의 직을 대신했다’(24:27)고 있다.

 

불과 1절의 반분이지만, 실로 중요한 반절이다.

 

이에 의해, 우리들은 바울의 가이사랴 금고가 2년간에 걸쳤던 것이었음을 안다.

또 이에 의하여, 우리들은 얼마쯤 정확하게 바울의 연대기를 정할 수 있다.

 

베스도의 유대 부임의 해는 역사상 거의 명백한 해이므로, 만약 정확하게 그 해를 알 수 있다면,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건의 연설을 거의 정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역사의 대가가 깊은 연구를 이 일 절에 경주한 것이다.

 

베스도가 벨릭스에 대신하여(후임으로) 유대 지사로 가이사랴에 달한 해’,

 

그 해는 기원의 몇 년이었는지, 이것을 알 때, 바울전은 확실한 전기로서 우리들 앞에 나타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여러 대가의 연구의 결과를 열거하면

 

바이젤러-(Widesler) 기원 60

하르나크-(Harnack) 56

렘지-(Ramsay) 57

터너-(Turner)58

래컴-(Rackham) 57

 

그래서 빠르면 56, 늦으면 60, 그 중간의 57년은 베스도의 가이사랴 도착의 해로 정하여, 이보다 앞서거나 뒤서거나로, 바울전의 대체를 정할 수가 있다.

 

그의 개신(改信)은 기원의 32, 그의 순교는 64년경이 되리라.

 

바나바가 다소에서 인도하여 온 것은 동 42년에 해당 되므로,

바울은 개신 후 14년간, 그의 고향에서 침묵의 생애를 보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최초의 전도여행이 기원의 46년에 시작된 것으로 되면,

그의 전도적 생활은 18년 계속된 것으로 된다.

그는 아마도 나이 67, 8세로 그 일생을 끝마쳤으리라.

 

그리고 기원의 57년은 우리나라의 스이닌데노의 86년에 해당되므로, 퍽 옛 일이다.

야마도 다께루노 미꼬도(일본 국가통일 시대의 영웅)의 도우미 정벌(아이누정복)보다 100년전의 일로서, 격세의 감(시대차의 기대)없지 않으나,

 

그러나 신앙의 형제이매,

바울은 우리들의 골육의 형제처럼 생각된다.

 

하나님에게서 한 없는 생명을 받아, 때는 무관한 것으로 된다.

 

바울의 예대를 알 때, 그가 오랜 옛 사람이었음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영생은 실로 영생인 것으로서, 때를 초월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바울은 가이사랴의 금고 2년 동안에 무엇을 했을까?

성서는 아무 기록하는 바 없다.

 

다만 벨릭스가 백부장에게 명하여

 

(지키되) 그를 자유롭게 하여, 그 친구가 그를 돌보아주는 것을 금하지 말라’(24:23)고 있는대로,

 

그에게 전도자 빌립과 그 4인의 딸의 방문, 공급 등이 있었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의 입은 봉해졌지만도 그의 붓은 움직였을 것이므로,

 

그는 여기서 많은 귀중한 서간을 써 보냈으리라는 것은 이유없는 사상은 아니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의 3서간은 그가 가이사랴 유폐 중에 썼으리라는 설은 취하기 어려운 설 아니다.

 

바울 같은 활동의 사람이 만 2년간 절대적 침묵을 지켰으리라는 것은, 믿기에 아주 어려운 바 있다.

 

그가 무엇을 했는지, 그것을 알길 없다 해도,

가이사랴 유폐가 바울의 사상 신앙의 대변화를 준 것은 명백하다.

 

그것은, 그가 유폐 이전에 쓴 서간과,

유폐 이후 또는 유폐 중에 쓴 서간을 비교해 보면 잘 알 수 있다.

 

로마서를 전자의 대표로 하고,

에베소를 후자의 그것으로 보고,

이자를 비교하여 볼 때,

그 사이에 비상한 상위가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일견하여 동인의 작이 아닌 듯이 보이는 점 없지 않다.

 

그러나 나는 에베소에 있어서 바울의 유폐 2년간의 자취를 인정하고자 한다.

로마서가 만약 완전한 신학론이라면 에베소서는 절미한 찬미가이다.

복음의 수정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어서의 박해와 가이사랴에 있어서의 금고가 바울에게서 이것을 낳게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촌감삼의 글에서)

 

 

* 주여!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 동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분주할 때나 한가 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건강 할 때나

 

바울처럼,

주님 영광을 위하여 드려지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