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거듭난 삶 2024. 2. 25.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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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개종을 설명하는 바울

 

성 경: [26:12-18]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26:12]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세와 위임을 받고 - '그 일'이란 '그 용건', '그 목적' 즉 그리스도인들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하는 일을 뜻한다.

 

본 절에서 부터 바울은 자기 생애에 있어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던 결정적 순간을 다시 언급한다.

 

이 진술은 9:1-1922:6-21에 이어 세 번째에 해당하며

 

(9:1-19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행하여 다메섹에 가까이 가더니 홀연히 하늘로서 빛이 저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 있어 가라사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뉘시오니이까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6)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하고 섰더라

8)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 사흘 동안을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라

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침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22:6-21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웠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 바 너희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 줄 저희도 아나이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주된 이야기의 흐름은 동일하나 세부 표현에 있어서는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점은 이야기하는 당시의 상황이나 청취자에 따라 강조점을 다소 변화시켜 서술하는 누가의 문학적인 역량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H. Marshall).

 

한편 본 절에서 드러난 차이점을 보면 9:2;22:5에는 사울이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아 간 것으로 언급된 반면,

 

(9: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좇는 사람을 만나면 무론 남녀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22: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여기서는 '대제사장들'로부터 '권세와 위임'을 받은 것으로 표현된다.

본 절의 표현이 더 강렬한 인상을 준다.

 

 

 

[26:13] 왕이여 때가 정오나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서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정오 - , '한 날의 중간'(in the middle of the day)을 나타낸다.

팔레스틴의 정오는 매우 무덥기 때문에 대개 이때쯤이면 일손을 놓고 휴식을 취해야 할 정도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일을 위해 강행군을 하고 있었으니 그의 열성이 어떠했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또한 때가 한 낮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체험이 온전한 정신을 가진 상태에서 있었던 일임을 시사한다.

 

한편 본 절 이하에는 강렬한 빛에 의해 바울의 눈이 멀게 되었다는 언급은 전혀 없으며, 모든 관심은 주님이 하는 말씀에로 집중되어 있다.

 

 

 

[26: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히브리 방언으로 예수께서 - (21: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 이 말은 헬라와 라틴 세계에 널리 알려진 속담과 같은 것으로 본래적 의미는 '신을 대적하는 행동이 어리석고 무모하며 불가능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이 말은 농경 문화에 배경에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가시채'는 끝에 뾰족한 쇠나 뼈를 박은 채찍을 가리킨다.

이 가시채는 밭을 갈 때 소나 말이 잘 듣지 않으면 때리기 위한 것이다. 만약 매를 맞은 소가 반항하여 뒷발질을 하면 할수록 더욱 심하게 찔리고 상하여 고통을 당하게 된다.

 

혹자는 본문의 말씀의 의미는 감히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고 그 정해진 섭리를 거역했던 바울의 무모함과 어리석음을 꾸짖으신 말씀으로 이해함이 더 무난하겠다.

 

바울은 자기가 그리스도를 박해하다가 도리어 그리스도의 사도가 된 것이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 역사에 의한 것임을 이 속담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26:15]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네가 핍박하는 예수 본 절의 문구는 9:5와 문자적으로 일치하나 22:8에는 '나사렛'이란 말이 첨가되어 있다.

 

 

 

[26:16] 일어나 네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사환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일어나 네 발로 서라 - 본문에서는 '아나니아'에 대한 이야기가 생략되고 대신 아나니아를 통해 받은 소명에 관한 이야기를 바울이 직접 주님으로 부터 들은 것으로 진술되고 있다.

 

누가에게 있어서 바울이 소명의 인식을 아나니아를 통해 전해 받았건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았건 그것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가는 상황에 맞추어 요점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부수적인 것들은 언급하지 않고 핵심적인 내용만을 전달하고자 했다.

 

가령 아나니아에 관한 이야기는, 유대인을 상대로 말할 때는 자신의 유대교적 경건성과 정통성을 증거하기 위해 꼭 해야 하는 이야기였지만, 지금과 같이 헬라적 청중들까지 포함된 상황에서 변증할 때는 유대교적 경건과 정통성을 그렇게 중시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여기서는 불가항력적인 주님의 부르심에 바울이 어떻게 이끌림을 당했는가를 증언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졌다.

 

'네 발로 서라'는 말씀은 에스겔과 예레미야의 소명을 상기시킨다.

 

(2:1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3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열조가 내게 범죄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렀나니;

 

1:7-8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뿐만아니라 바울의 소명 내용도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42:5-7에 나오는 여호와의 종의 소명과 유사한 면을 보여준다.

 

(42:5-7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 - 주께서 바울을 부르신 것은 그를 일꾼으로 삼아 보고 들은 바를 증거하게 하려함이었다.

 

여기서 '나를 본 일'은 지금 다메섹에서 경험한 것을 가리키며,

 

'장차 네게 나타날 일', 앞으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보여질 것을 가리킨다.

 

(16:9-10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가로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잠잠하지 말고 말하라;

 

22:17-18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27:23 나의 속한 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고후 12:1-4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2)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3)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4)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7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는 바울이 두려움과 외경심에만 사로잡혀 있을 것이 아니라 주께 받은 사명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나가도록 명령받았음을 시사한다.

 

 

 

[26: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저희에게 보내어

 

구원하여 - 학자들 간에는

 

'선택하여'(Overback,Randall)로 보는 견해와

'구원하여'(Bruce, Haenchen, Meyer)로 보는 견해로 갈린다.

 

그런데 본서의 다른 곳에서(7:10, 34;23:27)이 단어가 '구원하다'의 뜻으로 사용된 사례가 있다는 점에서 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리라 본다.

 

(7:10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

34 내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움 받음을 내가 정녕히 보고 그 탄식하는 소리를 듣고 저희를 구원하려고 내려왔노니;

 

23:27 이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잡혀 죽게 된 것을 내가 로마 사람인 줄 들어 알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구원하여다가)

 

사실상 바울은 과거 여러 차례의 위기 상황에서 구원함을 받았었다.

 

(9:23-25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24)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저희가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25) 그의 제자들이 밤에 광주리에 사울을 담아 성에서 달아 내리니라;

 

21:30-32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31)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32)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23:12-24 날이 새매 유대인들이 당을 지어 맹세하되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하고

13) 이같이 동맹한 자가 사십여 명이더라

14)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가서 말하되 우리가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로 굳게 맹세하였으니

15) 이제 너희는 그의 사실을 더 자세히 알아볼 양으로 공회와 함께 천부장에게 청하여 바울을 너희에게로 데리고 내려오게 하라 우리는 그가 가까이 오기 전에 죽이기로 준비하였노라 하더니

16) 바울의 생질이 그들이 매복하여 있다 함을 듣고 와서 영문에 들어가 바울에게 고한지라

17) 바울이 한 백부장을 청하여 가로되 이 청년을 천부장에게로 인도하라 그에게 무슨 할 말이 있다 하니

18) 천부장에게로 데리고 가서 가로되 죄수 바울이 나를 불러 이 청년이 당신께 할 말이 있다 하여 데리고 가기를 청하더이다 하매

19) 천부장이 그 손을 잡고 물러가서 종용히 묻되 내게 할 말이 무엇이냐

20) 대답하되 유대인들이 공모하기를 저희들이 바울에 대하여 더 자세한 것을 묻기 위함이라 하고 내일 그를 데리고 공회로 내려오기를 당신께 청하자 하였으니

21) 당신은 저희 청함을 좇지 마옵소서 저희 중에서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맹세한 자 사십여 명이 그를 죽이려고 숨어서 지금 다 준비하고 당신의 허락만 기다리나이다 하매

22) 이에 천부장이 청년을 보내며 경계하되 이 일을 내게 고하였다고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고

23) 백부장 둘을 불러 이르되 밤 제 삼 시에 가이사랴까지 갈 보병 이백 명과 마병 칠십 명과 창군 이백 명을 준비하라 하고

24) 또 바울을 태워 총독 벨릭스에게로 무사히 보내기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 명하며;

 

25:3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26: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 이 본문은 사 42:6-7의 말씀을 연상시킨다.

 

(42:6-7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7)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빛으로 세워진 하나님의 종이

 

(42: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어두움에서 헤매이고 있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여 빛의 세계로 인도해야 하듯이 바울도 사람들의 소경된 영안을 뜨게 하여 죄악과 방탕한 어두움의 생활에서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벗어나 빛을 발견케 해야 할 사명을 받았다.

 

(8: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일 1: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 어두움이 사단의 권세를 뜻한다면 빛은 하나님의 지배를 뜻한다.

 

이것을 골 1:13에서는 흑암의 권세와 하나님이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대비시킨다.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흑암의 세계에서는 죄의 지배를 받으나 하나님의 지배 아래서는 죄 사함을 받고 그의 자녀로서 기업을 얻게 된다.

 

한편 본 절에서 사용된 신학적 언어는 개종의 특성에 관한 그리스도인의 전통적인 이해를 반영하며 아그립바가 유대교적 테두리에서 제대로 이해하기는 무리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