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거듭난 삶 2024. 2. 22.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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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을 재판한 인물들

 

사도행전 241-26: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어떤 장로들과 한 변사 더둘로와 함께 내려와서 총독 앞에서 바울을 고소하니라

2) 바울을 부르매 더둘로가 송사하여 가로되

3)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을 인하여 여러 가지로 개량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감사무지하옵나이다

4)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5)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

6) 저가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 하므로 우리가 잡았사오니

7)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8) 우리의 송사하는 이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9)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10)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쁘게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못되었고

12) 저희는 내가 성전에서 아무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과 또는 성중에서 무리를 소동케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송사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저희가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저희가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저희가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송사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저희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가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22) 벨릭스가 이 도에 관한 것을 더 자세히 아는고로 연기하여 가로되 천부장 루시아가 내려오거든 너희 일을 처결하리라 하고

23) 백부장을 명하여 바울을 지키되 자유를 주며 친구 중 아무나 수종하는 것을 금치 말라 하니라

24) 수일 후에 벨릭스가 그 아내 유대 여자 드루실라와 함께 와서 바울을 불러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듣거늘

25) 바울이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하니 벨릭스가 두려워하여 대답하되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 하고

26) 동시에 또 바울에게서 돈을 받을까 바라는 고로 더 자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더라.

 

 

 

재판에 대해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가? 성도는 세상을 심판한 자임을

너희는 알지 못하는가? 우리는 천사를 심판할 자임을,

하물며 이 세상일들이랴?’(고린도전서 6:2-3)이라고.

 

즉 신자는 세상을 심판할 자로서 세상에 심판되어야 할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말한 바울이 몇 번이나 사람에게 심판된 것이다.

그는 그의 주()와 한가지로 이 세상의 법정에 끌려 나가 그 심판을 받았다.

 

심판하는 자는 심판된다. 그것이 이 세상이다.

 

가야바나 빌라도와 같은 속물이 하나님의 아들을 심판하는 시대이다.

하찮은 거짓된 세상이다.

 

바울은 어떠한 사람에 의해 심판되었던가?

 

그것을 아는 일은 그와 그 시대를 아는데 있어서 퍽 중요하다.

하나님은 그것을 알도록 필요한 재료를 우리 위해 예비하셨다.

 

요세푸스라는 역사가를 일으켜, 당시의 유대 역사를 자세히 후세에 전하게 하셨다.

요세푸스의 유다 역사에 있어서, 예수 및 사도들의 역사적 배경을 엿볼 수가 있다.

이는 실로 놀라운 섭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을 심판한 자의 1인은 방백(궁사) 벨릭스였다.

 

그는 어떠한 사람이었던 가고, 로마 역사 및 요세푸스를 통해 조사하여 볼 때,

그는 그리스인(헬라인)으로서, 황제 글라우디오의 어머니 안토니아에 속하는 노예였다.

 

그 사람이 형인 팔라스와 함께 석방되어 자유의 몸이 되고, 형이 황제에게 중용되기에 이르러, 그 친족 등용에 의해, 아우인 벨릭스는 입신하여 마침내 유다 지사로 되었다.

 

하지만 출신이 노예였기 때문에, 그는 고위고관에 올랐다지만 종생 그의 노예근성을 끊을 수가 없었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에 대하여 기록했다,

 

벨릭스는 노예의 마음(심뽀)으로써 왕의 권력을 떨쳤다.

 

그러므로 그의 하는 일이 모두 비열했다.

그는 소위 낮은 데서의 입신출세의 귀족이었다.

그리고 그런 자의 상례로서, 귀족명문과 인척관계에 들어가 자기의 지위를 굳히려 했다.

 

행전 2424절에 그것을 보여준다.

 

수일 후, 벨릭스 그 아내 유대 부인인 드루실라와 함께 왔다, 바울을 불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들었다 .

 

도대체 두루실라라는 부인은 어떠한 자였는가에 대해, 요세푸스는 자세히 그것을 기록하고 있다.

 

그녀는 유대왕 헤롯의 딸로서, 후에 한가지로 바울을 재판한 아그립바왕의 누이동생이다.

 

즉 영아 예수를 죽이려한 헤롯대왕의 증손으로서, 침례 요한의 목을 그 딸 살로매로 요구케 한 대음부(大淫婦) 헤로디아의 조카 딸에 해당한다.

 

* 참조 : (마가복음 6:17 전에 헤롯이 자기가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장가 든고로 이 여자를 위하여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잡아 옥에 가두었으니).

 

헤롯가에 미인 많고, 그리고 모두가 음부(淫婦)였다.

그녀는 일찍이 에메사의 왕 아지즈에게 출가했다.

그런데 전에 노예이다가 이제 로마의 대관인 벨릭스의 유혹을 받아 그에게 재가했다.

나이 17세가량 되었을 무렵의 일이라는 것이다.

 

벨릭스는 자기 지위를 굳히기 위해 왕가의 딸을 취하고,

드루실라는 허영에 달려 정당한 남편을 버리고서 권력의 집으로 시집갔다.

 

취하는 자도 취하는 자,

출가하는 자도 출가하는 자이다.

 

모두 이욕과 허영에 쫓겨서의 결혼이다.

세상은 옛날도 지금과 다름없다. 옛날에 있던 일은 지금도 그대로 행해진다.

 

그리고 하나님은 누가로 하여금 사도행전을 저술케 함과 동시에,

요세푸스로 하여금 유대 역사를 쓰게 하여,

후세의 우리로 하여금 당시의 명암 양방면을 엿보게 함은 실로 기이하다.

 

그 벨릭스와 드루실라가 동반하여 바울을 그 앞으로 불러낸 것이다.

나이 17세의 조숙의 드루실라, 이미 두 사람의 남편을 가져 처녀의 결백은 간데 없다.

 

다만 평판의 바울을 만나 그의 설교를 듣고자 했다.

 

죄 없는 듯이 보이면서 죄 많은, 가련한 소녀였다.

그녀의 남편 벨릭스는 아마도 그녀 보다 적어도 20세 이상의 노정치가였으리라.

 

그들 앞에 그리스도의 종인 다소의 바울이 사슬에 매인 채 선 것이다.

 

심판하는 자와 심판 받는 자와, 어떠한 대조랴! 콘스트라스트랴!

 

하지만 이것은 이 세상의 일상의 상태이다.

 

바울은 이 어울리지 않는 부처(夫妻)에게 향하여 신앙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바울이, 공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에 대하여 논하니,

벨릭스는 두려워하여 대답하기를, 너는 잠시 물러가라.

내가 마땅한 때(좋은 시기)에 다시 너를 부르리라’(24:25).

 

여기서 심판자가 심판될 것이다.

공의와 절제와 장차 올 심판을 듣고서는,

벨릭스와 드루실라는 잠시도 견딜 수 없었다.

 

하나님의 정의로서 심판되어,

그들은 바울에게 얼굴을 마주할 자격 없는 죄인이었다.

 

벨릭스는 바울에게 퇴장을 재촉했다.

젊은 두루실라는 아마도 심판의 두려움조차 느끼지 못하고,

도리어 바울의 무례함을 괴이하게 여겼으리라.

 

기타, 제사장 아나니아에 대하여, 또는 아그립바왕과 함께 바울을 심판한,

그와 두루실라의 자매인 베니게에 대해서도 거의 같은 것을 말할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 역사는 공평하게 사람을 심판하여 그릇하지 않는다.

 

벨릭스와 두루실라,

치욕을 후세에 남기고 가고,

 

바울의 영광은 더욱 더 빛을 더하여 한 낮에 이르렀다.

 

우리는 실망한 것 아니다.

 

(내촌감삼의 글에서)

 

 

* 주여, 본문에서 바울은

 

너희는 알지 못하는가? 성도는 세상을 심판한 자임을

너희는 알지 못하는가? 우리는 천사를 심판할 자임을,

하물며 이 세상일들이랴?’(고린도전서 6:2-3).

 

그런데 그렇게 말한 바울이 몇 번이나 사람에게 심판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법정에 끌려 나가 그 심판을 받았습니다.

 

가야바나 빌라도와 같은 속물이 하나님의 아들을 심판하는 것이 거짓 된 세상의 모습입니다.

 

그대로 그리스도인은 제자로서의 삶에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