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거듭난 삶 2024. 2. 2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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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로마행

[로마로 향하는 바울]

 

성 경: [27:1-8]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음을 허락하더니

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성에 이르러

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 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성에서 가깝더라.

 

 

[27:1]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우리 - 본서에는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본문이 네 군데 있는데

 

(16:10-17 바울이 이 환상을 본 후에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1)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경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14) 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5) 저와 그 집이 다 침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16)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17)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하며;

 

20:5-15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6)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7)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 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8) 우리의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9)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았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층 누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 보니 죽었는지라

10)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저에게 있다 하고

11)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12) 사람들이 살아난 아이를 데리고 와서 위로를 적지 않게 받았더라

13) 우리는 앞서 배를 타고 앗소에서 바울을 태우려고 그리로 행선하니 이는 자기가 도보로 가고자 하여 이렇게 정하여 준 것이라

14)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올리고 미둘레네에 가서

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리고 또 그 다음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21:1-18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5)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새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

7)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 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15)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새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려 함이라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이곳이 마지막 네 번째이다.

 

(27:1 우리의 배 타고 이달리야로 갈 일이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사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그러니까 본문의 '우리'21:1-18 이후 2년 만에 처음 나오는 셈이다.

이는 가이사랴에서의 2년간(24:27)은 바울이 구금되어 있는 상태였고

 

(24:27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

 

또한 기록의 초점도 바울의 선교 사역에 집중되었으므로 '우리'라는 표현을 쓸 이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누가가 바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 이제 바울이 가이샤라를 떠나 로마로 이송되는 시점에서 누가와 아리스다고가 다시 합류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누가는 다시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다른 죄수 - 본문에는 죄수들의 죄질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없으나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이들이 사형 판결을 받은 자들로 로마 원형 극장에서 맹수들의 싸움 대상으로 보내어지는 것이었다고 본다. (Lenski, Ramsay, Robertson),

 

아구사도대 - 아구사도대(Augustan Cohort)는 당시 로마의 한 군대 조직인 듯하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 아그립바 왕의 친위대 (새번역, 현대인의 성경, 표준성경, NIV, Holtzmann)이다.

 

(2) 사마리아의 군대이다.

이는 아구사도대의 헬라어 '스페이레스 세바스테스''세바스테스'가 사마리아의 수도 '세바스토스'와 유사한 점에 착안한 것이다. (Alford).

 

(3) 로마의 황제와 지방의 주둔군 사이의 연락 업무를 맡은 부대로서, '프르멘타리'(frummentarii)라 불리기도 했다. (Ramsay,Mommsen).

 

바울 시대에는 이러한 업무를 수행한 군인들을 '스페쿨라토레스'(speculatores)라고 일컬었던 것 같다. (Longenecker, Lenski, Bruce).

 

대부분의 학자들은 (1)(3)의 견해에 동의한다.

 

따라서 '아구사도대'는 로마 황제의 직할 부대로서 전방 부대를 지도, 통제, 연락하는 '친위대'라고 할 수 있다.

 

백부장 율리오 - 이 사람은 바울과 다른 죄수들을 이송하는 아구사도대의 인솔자로 그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여기서 '율리오' (율리오스)는 가문명(家問名)일 뿐이다.

 

 

 

[27:2]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행선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아드라뭇데노 배 -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아드라뭇데노 라는 항구 도시에서 온 배인데, 아시아 지방에서 서방을 오가는 무역선인 것 같다.

 

아드라뭇테노는 소아시아 북서 해안에 위치한 무시아의 항구 도시이며 레스보스(Lesbos) 섬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오늘날의 이름은 '아드라미티'(Adramiti) 혹은 '에드라미트'(Edramit)이다. (Whitelaw).

 

이들이 탄 배는 소아시아 해안을 따라 운항하는 비교적 적은 규모의 배였으므로 그것을 타고 지중해를 건널 수는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중간 어디에선가 지중해를 횡단하는 큰 배로 바꿔 탈 계획이었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가이사랴를 출발하여 알렉산드리아를 거쳐 바로 로마로 향하는 큰 배를 타는 것이었으나 때맞추어 그런 배를 만나지 못한 듯하다.

 

아리스다고 - 바울이 로마로 이송될 때 그와 동행한 자는 누가 말고도 아리스다고라는 사람이 더 있었다.

 

많은 학자들은 '누가는 의사로, 아리스다고는 바울을 시중드는 자로 함께 승선(乘船)하였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혹자는, 이 두 사람이 바울의 노예로 자처하여 동행함으로써 백부장 율리오의 눈에 바울을 중요한 인물로 보이게끔 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Ramsay).

 

아무튼 아리스다고는 몬 24 절과 골 4: 10에서 바울의 동역자요 함께 갇힌 자로 재등장하는데,

 

(24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이 두 서신이 로마 감옥에서 씌어진 것이라고 볼 때, 아리스다고가 바울의 로마 여행에 계속 동행했음은 분명하다.

 

 

 

 

[27:3] 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음을 허락하더니

 

시돈에 대니 - 시리아 해안의 조류(潮流)는 북쪽으로 흐르는데,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이 조류를 따라 약 23시간 가량 걸려 시돈에 도착한 것이다.(Breusing).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음을 허락하더니 - 본절과 43절은 백부장 율리오의 특별한 친절을 보여 준다. 아마 베스도는 바울을 율리오에게 넘겨주면서 다른 죄수들처럼 다루지 말고 관대하게 대우하도록 특별히 지시를 하였을 것이고, 율리오도 바울의 언행과 그와 동행하는 사람들(누가와 아리스다고)의 극진한 시중을 보고, 결코 함부로 대할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을 것이다.

 

아마 배는 짐을 내리거나 싣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따라서 율리오는 이 시간 동안에 바울이 친구들을 만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여기서 친구들은 스데반의 순교 후에 각지로 흩어진,

 

(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성도들 가운데 시돈에 자리잡고 복음을 전파하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고 봄이 무난하다.

 

 

하르낙(Harnack)에 의하면 본문의 '친구'라는 명칭은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을 부르던 칭호였다고 한다.

 

(요삼 15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러 친구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너는 각 친구 명하에 문안하라).

 

황제 앞에서의 재판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고, 또한 항해를 하는 중 어떤 위험이 닥칠지도 모르는 불안한 여정(旅程) 가운데서도 성도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바울에게 커다란 위안과 용기가 되었을 것이다.

 

 

 

[27:4] 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바람의 거스림을 피하여 -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출항하여 구브로의 남서 해안을 지나 아드라뭇데노로 직항하고자 하였으나 동쪽 지중해로부터 불어오는 서풍을 만나 더 이상 직진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서풍을 막아줄 수 있는 구브로 섬 동쪽 해협을 따라 우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27:5]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성에 이르러

 

루기아의 무라 성에 이르러 - 배는 구브로를 서쪽에 두고 북상하여 길리기아와 밤빌리아의 해안을 지나 항해를 계속하였는데 이 항해는 그 해안을 따라 흐르는 해류와 밤에 대륙에서 바다를 향해 부는 대륙성 기류의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 빠른 속도는 아니었을 이 항해는 그럭저럭 소아시아의 가장 남단에 자리잡고 있는 루기아의 항구 무라에 도착하였다. 이때 소요된 항해 기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으나, 서방 사본에 의하면 14일이 걸린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무라 항은 애굽에서 오는 곡물을 로마로 보내는 항구로 유명했으며 무라 성읍은 항구로부터 내륙 쪽으로 약 3.2 Km거리에 있었다.

 

바울 일행을 태운 아드라뭇데노 배는 가이사랴에서 무라까지 항해하였고, 무라에서 바울과 다른 죄수들을 내려주고 계속해서 아드라뭇데노로 향했을 것이다.

 

 

 

[27: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 - '이달리야'는 로마를 수도로 하는 이탈리아 반도를 가리킨다.

 

한편 본문의 알렉산드리아 배는 곡물 운반선이었을 것이다.

 

당시 애굽은 로마 제국의 주요 곡창지(穀創地)였고,

거기서 생산되는 곡물들은 알렉산드리아 항구에서 곡물 선을 통해 로마로 운송되었다.

 

곡물 선들은 알렉산드리아 항을 떠나, 그레데 남방을 거쳐 로마로 직접 항해하는 것이 빨랐지만, 대부분의 선박들은 풍향 사정 때문에 무라 항을 거쳐가는 것이 상례였다.

 

바울 일행이 올라탄 배는 알렉산드리아에서 로마까지 곡물을 운반하는 전형적인 곡물 운반선이었지만

 

(38배부르게 먹고 밀을 바다에 버려 배를 가볍게 하였더니),

 

여객선 역할도 하며 무려 276명이나 되는 사람을 태울 수 있었다.

 

당시에는 이런 배들이 많았는데, 개인기업의 소유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로마 정부와 특별한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로마 정부에 대해 의무와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 바울 일행을 배에 태우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27: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 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의지하고 행선하여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 무라를 출발한 배는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하다가 강한 북서풍을 만나 매우 어려운 항해 끝에 겨우 니도에 이르렀다.

 

'간신히''수고', '고생'을 뜻하는 말로 많은 고생을 하면서 어렵게 항해하여 니도에 다다랐음을 말해준다.

 

니도는 소아시아 서남단의 도리스 반도 서남쪽 끝에 있는 도시로 무라에서 약 223Km정도 떨어져 있어서 순풍을 등지고 항해 할 경우 이틀 정도면 족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 정도의 거리를 여러 날 걸려 힘겹게 갔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항해였는가를 짐작케 한다.

 

니도는 아시아 지역의 자유 도시였고 이탈리아 반도를 향하여 에게해를 가로질러 가려는 배들이 서쪽으로 항해하던 중 마지막으로 기항(寄港)하는 항구였다.

그런 만큼 니도항의 규모는 제법 컸고 정박하는 배들을 위한 편의 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레데 - 무라를 출발한 배는 니도를 경유하여 서쪽으로 항해를 계속하려 했다.

 

그래서, 그레데 섬을 남쪽으로 바라보며 에게해를 통과하려 하였으나, 이러한 계획은 역풍을 받지 않고 순풍만을 의지할 수 있을 때 가능한 항로였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니도에 이르렀을 때는 북서풍이 너무 강하여 더 이상 서쪽으로의 항해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이제 바울 일행을 태운 배는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 니도에 머물면서 순풍이 불기를 기다리던지, 아니면 본문에서처럼 니도에서 남하하여 살모네를 지나 그레데 섬을 바람막이로 하여 서쪽으로 항해를 하는 것이다.

 

그레데 섬은 그리이스 본토에서 남쪽으로 100Km정도 떨어져 있는 지중해의 큰 섬들 가운데 대표적인 섬으로 해상 교통의 요충지였다.

이 섬의 동서 거리는 약 255Km 정도이고 남북의 거리는 10Km에서 50Km에 이르는 좁고 길쭉한 섬이다.

좁고 길다란 이 섬을 방파제 삼아 서쪽으로 항해 할 경우 북서풍이 상당히 많이 차단되므로 항해는 계속될 수 있었다.

 

1:5에 의하면 그레데 섬에도 교회가 있었고 디도가 그곳에 파송되어 사역을 한 적도 있다.

 

(1:5 내가 너를 그레데에 떨어뜨려 둔 이유는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

 

한편 본문의 살모네는 그레데 섬의 동쪽 끝의 돌출부에 위치해 있었다.

 

 

 

[27:8]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성에서 가깝더라.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성 - '미항'은 말 그대로 '아름다운 항구'라는 뜻인데 이곳은 지금도 동일한 뜻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리메오나스 칼로우스, Limeonas Kalous).

 

이 미항은 그레테 섬의 중간쯤에 위치한 남해안의 자그마한 만()만으로 오래도록 머물 만한 곳은 못되나 잠시 바람을 피할 수는 있었다.

 

그레데섬이 바람막이 역활을 해주었지만 완벽하게 바람을 막아 준 것은 아니어서 항해는 결코 쉽지가 않았고 따라서 미항에서 쉬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본절에서도 항해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7절에서 처럼, '간신히'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라새아 성'은 이곳 '미항'에서 동쪽으로 8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주여,

 

그리스도의 복음 선교를 위해 그의 생애 전체로 열정을 다하는 바울의 위대성으로

세계 복음화가 이룩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습니다.

 

우리들, 나중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바울의 믿음과 열정을 배워

만난을 잘 극복하여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