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거듭난 삶 2024. 2. 27.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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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판결을 받는 바울

 

성 경: [26:24-32]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26: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베스도가 크게 소리하여 가로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 봇물이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바울의 말을 베스도가 가로막았다.

그러나 바울의 변증은 이 부문에서 사실상 끝나고 있다.

 

가이사랴에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들의 종교에 대해 문외한인 베스도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부활에 관한 이야기를 너무나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바울을 볼 때 순간적으로 그가 미친 것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또한 베스도의 생각에는 바울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그토록 몰두함으로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민족적 차원의 반감을 불러일으키게끔 자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렇듯 현세적이고 실제적인 분야에만 주된 관심이 있는 베스도의 모습은 복음의 신령한 메시지에 초미(焦眉)의 관심을 보였던 구브로 총독 서기오 바울과 대조를 이룬다.

 

(13:7 그가 총독 서기오 바울과 함께 있으니 서기오 바울은 지혜 있는 사람이라 바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더라,

12 이에 총독이 그렇게 된 것을 보고 믿으며 주의 가르치심을 기이히 여기니라).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 베스도는 바울이 너무나 공부를 많이 해서 미친 것이라고 보았다.

 

이는 베스도가 바울의 폭넓은 지식과 논리적이고 막힘이 없는 달변에 깊은 감명을 받았음을 시사하기도 한다.

 

사실상 바울은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율법에 정통하게 되었으며 그밖에는 희랍의 철학이나 당시의 최고 학문에 대해 폭넓은 지식이 바울을 미치게 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베스도가 자신의 무지를 바울의 미친 탓으로 돌렸을 뿐이었을 것이다.

 

복음에 대한 확신과 소명에 대한 철저한 헌신은 바울로 하여금 미친자라는 소리까지 듣게 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소리를 듣는 것에 개의치 않았으며 도리어 하나님을 위하여 미친자되었음을 고백하였다.

 

(고후 5:13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만일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주님께서도 살아생전에 미친자라는 소리를 들으셨다.

 

(10:20 그 중에 많은 사람이 말하되 저가 귀신 들려 미쳤거늘 어찌하여 그 말을 듣느냐 하며).

 

 

 

[26:25]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차린 말을 하나이다

 

참되고 정신차린 말 - '건전하고 정상적인 마음'을 뜻한다.

 

자신의 무지를 바울의 미친 탓으로 돌리는 베스도의 비난에 대해 바울은 조금도 이성을 잃지 않고 정중한 태도로 자신의 온전함을 진술하고 있다.

 

 

 

[26: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 바울은 베스도가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함을 알고 더 이상 그에게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아그립바 왕에게 호소했다.

 

바울은 결코 비굴하지 않게 모든 것을 '담대히' 말하고 있다.

 

여기서 '담대히 말하노니''모든 것을 거리낌 없이 말함'을 의미한다.

 

사실상 바울은 숨기거나 왜곡시키지 않고 진실대로 말했고, 아그립바왕은 대제사장에 대한 임명권을 가진 성전의 보호자였고, 유대교와 구약성경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했으므로 바울의 증언을 충분히 이해하였을 것이다.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 로소이다 - 바울은 자기의 증언이 어떤 은밀한 종교 집단의 주관적인 주장이 아니라 실제로 이루어진 생생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것이요 만나는 사람에게 마다 공공연하게 선포된 것임을 강조한다.

 

예수의 삶이 공개적인 것이었고

 

(22:53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에 내게 손을 대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그분의 죽음 또한 여러 증인들에 의해 목도 되었고

 

(23:26 저희가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로서 오는 것을 잡아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좇게 하더라,

35-37 백성은 서서 구경하며 관원들도 비웃어 가로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병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포도주를 주며

37) 가로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예수의 부활 역시 '빈 무덤'이라는 객관적 증거와 현현 체험자들에 의해 뒷받침되었던 것처럼

 

(28:9-11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 하시거늘 여자들이 나아가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니

10)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

11) 여자들이 갈 제 파수꾼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고하니;

 

16:12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시니,

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제자들의 복음 선포도 공개적으로 행해졌다.

 

(20먼저 다메섹에와 또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 선전하므로;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2:14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16: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시니라).

 

 

 

[26: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 이 말 속에는 '선지자를 믿는다고 하면 예수의 메시야 되심과 부활 또한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뜻이 담겨있다.

 

사실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선지자를 믿는다.

아그립바는 성전의 보호자로서 선지자를 믿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유대인으로서의 교육을 받았다고는 하나 그것은 피상적 지식 차원에 불과하였으므로 예언된 바 메시야에 관련된 구절들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듯하다.

 

 

 

[26: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 '적은 말로''짧은 시간 안에'(in a short time)로 해석이 가능하다.

 

아그립바왕의 대답은 상당히 애매하여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판별하기가 어렵다.

 

그리하여 혹자는 그의 대답에는 냉소적(冷笑的)인 부정의 의미가 있다고 보기도 하며, 혹자는 간접적인 긍정의 뜻이 있다고 보기도 한다. (Overbeck, Haenchen).

 

당시 상황을 고려할 때, 만일 아그립바가 긍정의 뜻을 확실히 표현했다면 바울을 미친 자로 생각한 베스도의 말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고 전격적으로 부정했다면 유대인들의 눈이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바울의 말에 크게 동조도 않고 반대도 않는 미지근한 태도를 택했으리라 본다.

 

 

 

[26:29] 바울이 가로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노이다 하니라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 여기서 '말이 적으나 많으나''길거나 짧거나'(whether long or short)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결정적인 의미의 차이는 없다고 본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의 대답이 부정이건 긍정이건 간에, 그리스도인이자 복음 증거자로서의 자신에 대한 강력한 자부심과 아울러 애정 어린 소망을 기원법의 동사(워사이멘)를 사용하여 진술하고 있다.

 

여기서 바울 자신과 같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뜻하며,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18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바울의 마지막 말과 행동은 매우 감동적이다.

그는 가이사랴 최고의 권세가들 앞에 상대적으로 왜소하고 초라해 보이는 모습으로 서 있다.

 

더구나 그의 손에는 사슬이 매여 있다. 그런 모습의 바울이 자기 앞에 앉아 있는 권세가들에게 자신에 찬 목소리로 진정한 영적 자유에로의 초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슬 묶인 손을 들어 보이며 마지막 말을 맺을 때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아마 깊은 감명을 받았을 것이다.

 

 

 

 

[26: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

 

바울의 최후 진술이 끝나자 아그립바 왕과 총독과 버니게 그리고 함께 배석했던 사람들이 일어섬으로써 그날의 청문회는 조용히 마감을 하게 되었다.

더 이상 바울을 비난하거나 미쳤다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26: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사가 없다 하더라 -

 

심문소를 빠져나간 참석자들은 다른 장소로 옮겨가 바울의 증언에 대한 논의를 하였고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거나 결박하여 둘 만한 혐의점(嫌疑點)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바울의 무죄는 천부장 루시아와

 

(23:29 송사하는 것이 저희 율법 문제에 관한 것뿐이요 한 가지도 죽이거나 결박할 사건이 없음을 발견하였나이다),

 

베스도에 이어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25:25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 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저가 황제에게 호소한 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

 

 

 

[26: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일러 가로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아니하였더면 놓을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자기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을 하는 장면이 이어지는데, 여기서 바울의 무죄가 최종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바울이 가이사에게 호소하지 않았다면 석방이 되어도 무방하다는 것이 아그립바의 결론이다.

 

아그립바는 그밖에도 베스도가 항소 이유서를 작성할 때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을 것이다.

 

바울의 무죄가 확인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석방되지 않는 것에 대한 표면적인 이유는 그가 가이사에게 항소를 하였기 때문인 것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바울이 석방되지 못하고 로마의 가이사에게 가야되는 현재 상황의 배후에는 주님의 뜻이 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23:11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

 

바울의 석방되지 못함은 도리어 그에게 가장 안전한 로마행을 의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