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 십자가의 길

마가복음 1장 1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

거듭난 삶 2024. 3. 1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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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시작

 

마가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개역한글)

 

어느 저서에 있어서나 가장 중요한 것은 권두(卷頭) 제일의 말이다.

그것은 문제의 제출이며, 해답의 예고이고, 정신의 발표이며,

그 전부의 축사(reduction)가 아니어서는 안 된다.

 

() 저술의 특징은, 그 깊이, 무게, 짧은 권두(卷頭)의 일언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성서 66권은 모두 대저작의 모범이다.

 

창세기 제11절은 창세기의 축사이며, 동시에 또 전()성서의 예언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은 이 글을 부르기를,

권두 제1의 말, 베레쉬트(‘처음에란 뜻)이라고 한다.

출애굽기, 민수기 등 모두 마찬가지이다.

 

신약성서에 이르러서는, 마태복음 제11절은 전편을 예표하고,

유명한 누가복음의 서문은, 저자의 예수전이 어떠한 것일지를 소개하여 부족함이 없다.

요한복음 권두의 일언에 이르러서는, 그 깊이와 넓이는, () 우주와 그 크기를 함께 한다고 할 수가 있다.

 

만약 성서의 대의를 알고자 하면, 각서 권두 제1의 말을 연구하는 것이 좋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인 증거의 하나를 이 점에 있어서도 또한 볼 수가 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

 

이것이 마가복음 권두 제1의 말씀이다.

원어에 있어서는 관사를 합하여 불과 7, 4복음서 중, 가장 간단한 서언이다.

간단하기는 하나 의미심장하여 간결한 마가복음에 가장 알맞은 서언이다.

마가복음 전체는 이 짧은 일언 내에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원어의 순서에 따르면,

처음’(시작), 복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다.

모두 중요한 말이다.

 

처음’(시작) ‘처음(시작)에 하나님, 천지를 만드셨다고 창세기 11절은 말한다.

처음에 말씀 있었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라고

요한복음 11절은 말한다.

 

처음’(시작)은 실로 중요한, 의미 깊은 말이다.

처음은 새로운 시작이다.

아직 이전에 있었던 일이 없는 것이 있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만물에 시작이 있었다고 하며, 복음에 시작이 있었다고 한다.

말 그것이 유신론적이다.

 

무신론 또는 근대 유행의 유물적 진화론에 처음’(시작)이라는 것은 없다.

 

그들은 말한다,

 

사물로서 원인 없는 것은 없다. 우주는 원인 결과의 연속이다.

처음이란, 우주 이외에서 온 신세력의 주입이다. 그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성서는 말한다.

 

처음 있었다

우주는 하나님이 시작(처음)하신 것,

그리스도의 복음도 또한 하나님이 시작하신 것,

그리고 사람이 크리스천이 되는 때마다 새로운 창조가 행해지는 것이라고.

 

성서는 무한히 그것 자신 진화 발달하는 우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우주는 창조된 것, 그러므로 처음(시작) 있은 것.

복음도 또한 역사상의 필요에 강요되어 절로 나타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지에 따라, 그가 택하신 때에 있어서,

그의 기뻐하시는 사람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은 성서가 명백하게 가르쳐 주는 바이다.

 

일은 철학상의 대문제이다.

하지만 성서의 이 교시(가르침)를 받지 않고서 신앙적 생명이라는 것은 없다.

기도라든가 섭리라든가, 구원이라든가는

모두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을 믿는데 의해서인 것이다.

 

만약 이것 없을 것인가?

 

기도하지 않음만 같지 못하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이상,

우주를 영구히 절로 회전하는 기계로서 볼 수는 없다.

 

여기에(이것에) 새로운 세력의 주입이 있다. 새로운 활동의 개시가 있다.

이것 있는 까닭에 우리에게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작하셨다.

그리고 지금도 그대로 이것을 속행하시고 있다.

그리고 시작(처음) 안에 또 시작이 있어서,

그는 크리스천 각자의 마음의 중심에 선한 일을 시작하시어,

이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에 완성하시려 하고 있다(빌립보서 1:6).

 

이러므로, 누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때는 새로이 피조된 것이다.

옛것은 지나가고 모두 새것이 되는 것이다’(고후 5:17)라고 있음은 이것이다.

 

진화론의 말로서 하면<뮤테이션 mutation>이다.

절대적 신종의 나타남이다.

그리고 천연계에 이 일 있는지 없는지는 미결문제라 해도,

심령계에 이 실험 있음은, 허다한 크리스천이 증명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2의 중요한 말은 복음이다.

 

원어의 유앙겔리온(euangelion), ‘즐거운 소식이라는 뜻이다.

환천희지의 천래의 소식이다.

복음이라는 문자가 너무 경하게 쓰이는 오늘의 세상에 있어서는,

우리들도 또한 이것을 얕게 해석(해득)할 위험이 있다.

하지만 복음은 무게 있는 깊은 말이다.

크리스마스의 저녁, 천사가 목양자에게 고하여,

내가, 만민에게 미칠 큰 기쁜 소식을 너희게 전한다고 한 이 복음이다.

 

즉 하나님이 사람이 되시어, 이 세상에 나타나,

그 죄를 지시고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시고,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

그리고 다시 와서 만물의 부흥을 행하신다는,

그 일이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그리하여 복음이라고 하여 단지 음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아름다운 음악은 아니다. 노래는 아니다. 이상은 아니다.

역사이다. 확고한 사실이다. 확실히 있은 일이다. 즐거운 사실의 소식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복음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하여,

그 역사 또는 전기라고 해도 지장이 없는 것이다.

 

마가복음은 그리스도의 생애에 관한 사실의 기록이다.

더구나 간결하고 이상화되지 않은 사실 그대로의 기록이다.

마가복음의 귀함은 이것 때문이다.

 

이것을 불타(10401이 역주)의 경전에 비교하여 보아 천지의 차가 있다.

복음은 비유(1033역주)가 아니다. 또 철학이 아니다.

지상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아들의 생애를, 인류역사의 일부분,

옳다. 그 중심으로서 기록한 것, 그것이 유앙겔리온 즉 복음이다.

 

복음의 역사적 성질을 인정하고, 이것을 해득하는데 신앙뿐 아니라,

또 이른바 사적 감능이 필요한 것을 알 수 있다.

 

잘 사실의 진위를 변별하는 능력을 가진 자, 그것이 진정한 사가(史家)이다.

영국의 프리먼, 독일의 몸젠, 이탈리아의 페레로 등은 모두 이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기적을 수록했기 때문에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사학이 아니라 철학이다.

사가는 사실을 판단하는 자이기 때문에 있었던 사실은 사적 사실로서 이것을 취급한다.

 

전하는 말이 있다.

지리와 연대는 역사의 양안이다라고.

 

그리스도의 역사인 복음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지리와 연대를 게을리 할 수는 없다.

우리들은 각자 단지 신앙양성 위해서 뿐 아니라, 세계 역사 수득 위해,

각자 상응의 사적감능을 이용하여 복음서의 연구에 임해야 할 것이다.

 

3으로 중요한 말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는 인명이고, 그리스도는 직명이다. 그리스도이신 예수이다.

그리스도는 히브리어 메시아의 그리스역으로서, 기름부음 받은 자의 뜻이다.

 

아브라함 이래 예언자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 선민 이스라엘에 대하여

약속하신 모든 약속이 채워진 분이시다.

다윗의 아들로서, 이스라엘의 백성의 이상의 왕이시다.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로서, 그들에게 완전한 독립과 무궁한 영광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라 칭함은, 나사렛의 예수는 이 왕이시라는 것이다.

(사실)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최대 문제였다.

예수는 예언자의 1인이라는 것을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그가 그리스도시라는 것은,

옛날도 지금도, 이스라엘인의 다수가 부정하여 마지않는 바이다.

 

그리고 베드로가 12제자를 대표하여, 예수에게 향하여

주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입니다고 한 때,

그는 대()고백을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론은 이방인에게 있어서는 소문제였으나 유대인에게 있어서는 최대문제였다.

 

그리고 오늘이라 해도, 유대인과 크리스천과의 구별은 이 점에 있어서이다.

크리스천은 예수는 그리스도시라 하고, 유대인은 아니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가는 그리스도적 역사가로서, 대담하게, 명백하게 예수 그리스도라 칭하여,

그 놀라운 생애의 사적을 기술한 것이다.

 

4로 중요한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이것은 단지 다윗의 아들이라는 것 같은 메시야 즉 그리스도의 별명은 아니다.

마가복음 기사 그것이 분명하게,

예수가 인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리켜 보이는 것이다.

 

만약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부른 사람이 마가 한 사람에 한한다면,

이를 그리스도의 별명이라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신약성서는 다른 많은 곳에 있어서 분명히 예수의 신성을 말하는 것이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라 하고,

 

만물, 그에 의해 창조되고, 또 그에 의해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기타, 예수의 선재 및 만능성에 대하여 말한 것은 많이 있다.

마가복음은, 사람이신 예수의 전기(傳記)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다.

그렇게 보지 않고서 난해백출, 도저히 그 진의를 찾을 수가 없다.

하나님의 아들의 전기(傳記)이다.

 

그러므로 그 안에 기적이 있음은 당연하다.

우리들은 그 각오로 연구에 착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