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문제
마가복음 2장 23-28절 :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참조 : (마태복음 12장 1-9절 누가복음 6장 1-5절)
예수는 영의 사람이며 새로운 사람인데 대하여,
바리새인은 율법적 규칙적인 사람이며 낡은(옛)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양자의 충돌은 면할 수 없었다.
이미 죄의 사유에 대하여, 제자의 선택에 대하여, 속인과 음식을 함께하는 일에 대하여,
금식(단식)의 일에 대하여, 의견의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 또 안식일의 일에 대하여 충돌이 일어났다.
신앙의 근본에 있어서 상위(相違)가 있어가지고서,
인생의 모든 일에 있어서 충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십계명 제4조에 말하고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이를 거룩하게 지키라’고.
안식일 성수의 필요에 대해서는 십계 연구의 때에 말했으므로,
지금은 이것을 되풀이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이것을 지키느냐 하는것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이것을 율법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당시의 유대인의 입장이었고,
정신적 즉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예수의 주장이었다.
당시의 유대인의 규칙에 따르면, 사람은 안식일에 2천 큐빗(약 900미터 편자)이상의 거리를 여행해서는 안 되었다.(안식일에 대해서는 10권 23, 9권 112역주 참조)
이것은 시내 광야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이 살던 천막에서 하나님의 성막에 이르는 거리였다.
사람은 안식일에 밀을 추수해서는 안 된다. 또 타작해서는 안다.
들에 있어서 밀을 잘라 먹는 것은, 추수하여 타작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것을 하는 것은, 동시에 두 가지 죄를 범하는 것이다.
사람은 안식일에 보통 행하는 일 이외의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치통을 앓는 경우에, 물로 양치질을 하는 것은 가하지만,
아픔을 멈추려고 식초(치통수)를 쓰면 안 된다.
안식일에 특별요법을 행하는 것은 죄이다.
기타 모두가 이런 유이다.
안식일의 성수에 관한 39개조의 금령이 있었고, 그 각조에 또 세척이 부쳐져 있었다고 한다.
그 번쇄(troublesomness)함이란 추측할 만하다.
이같이 하여, 환희의 날, 감사의 날, 찬미의 날이어야 할 안식일이 중하(重荷)의 날, 곤고의 날, 우민(agony)의 날이 되기에 이르렀다.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은 안식일을 위선자의 손에서 구출하여,
이것을 원시의 평안으로 돌려야 할 필요가 있었다.
천지가 이룩된 때,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뻐 소리쳤다’(욥 38:7)고 있는데,
어찌하여 이것을 기념하는 날에 감사와 환희로 넘치지 않는 것일까?
안식일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이것을 환호의 날로 하는 일이다.
거룩하게 함은 그 일면에 있어서 축하하는 말을 하는 것이다.
영어에 있어서도 hallow는 ‘거룩하게 하다’(깨끗이 하다)를 의미하고, 또 ‘소리치다’라는 뜻이다.
안식일에 천연(天然)을 즐기는 것은 죄가 아니다.
안식일에 아픔을 제거하고 병을 고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바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아들의 축일이다. 이것은 규칙으로서 사람을 매는 날은 아니다.
자유를 주어 그를 해방할 날이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이 자유, 이 환희를 사람에게 주시기 위해 마련하신 것이다.
그리고 인자는 사람의 주(主)이시므로, 동시에 안식일의 주이시다.
‘안식일은 사람 위해 마련한 것이고 사람은 안식일 위해 마련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이다’라고 하신다.
실로 깊은 말씀이다. 이 세상의 나라의 경우에 있어서도 법률은 백성 위해서지 백성은 법률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법률이 백성의 안녕 행복을 방해하는 경우에는, 국왕은 그 지상권을 가지고서 이것을 변경하는 일도 중지하는 일도, 혹은 또 폐지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나라의 법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의 왕이신 인자 그리스도는 그 지상권을 가지고, 하나님의 나라의 법률을 변경할 수도 개정할 수도 있다.
이같이 말하여 그리스도는 자신에 대하여 놀라운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안식일 문제는 여기에 이르러 그리스도 신성 문제로 옮기신 것이다.
사복음서의 기록하는 바에 의하면 예수는 7회, 유대인의 안식일에 관한 법칙을 깨뜨리고서
고의로 이 문제에 대하여 그들에게 싸움을 건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싸움을 즐겨서의 도전이 아니라, 자기 증명위한 최량수단이었다고 생각한다.
안식일 문제는 예수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지상권을 증명 확립하기 위해 가장 적당한 문제였다.
그는 사실을 가지고 안식일의 주인임을 증명하여, 자신이 참으로 하나님의 독자, 구약의 철폐자 이시며 신약의 설치자, 사람이 의롭다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신앙에 의한다는 이른 바 ‘새 계명’을 세상에 주시기 위해 오신 분임을 증명하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주의 말씀에 의해 내가 과거 1900년간 그리스도 신자가 취해온 관례에 따라 일요일로써 나의 안식일로 정하고, 이것을 지켜 오늘에 이른 나의 입장을 변명한다.
그리스도 신자의 안식일은 일 주의 제1일, 즉 일요일이라는 것은 명백한 일로서, 별로 그 가부를 논의할 필요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요즈음 미국에서 ‘말세의 복음’이라는 것이 들어와
이 재래의 관례에 반대하고, 안식일은 제7일 즉 토요일이라고 한다.
일요일을 안식일로서 지키는 자는 성서에 어긋나며 하나님께 거슬리는 일이라고 제창하며, 그 공격의 창끝을 내게까지 돌리는 것을 본다.
미국은 교파의 발생지로서, 거기서 일어난 교파는 수백을 헤아릴 수 있다.
모두 나야말로 성서적이고, 남은 모두 이단이라며 복음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일 실로 심하다.
‘말세의 복음’ 같은 것, 미국 그리스도 신자의 의견의 하나로 보면 그것뿐이다.
다만 우리나라(일본) 사람 중에 안식일 문제로 시달리며, 부분적 문제를 가지고 전체문제로 보고 무용의 파란을 우리나라 신자 사이에 일으키는 것은 가장 슬퍼할 일이다.
나는 그리스도 신자의 안식일은 일요일이라고 믿는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는 주(週)의 제1일 즉 일요일 아침 무덤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성서에 다른 아무런 증언 없대도 이 분명한 사실에 의해 그리스도 신자가 유대인의 안식일인 토요일을 지키기를 그치고 일요일을 성일로 하여 지키는데 이른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일요일을 지켜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한다.
그리고 안식일의 주이신 그리스도가 안식일을 폐하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의 토요일을 고쳐 그리스도 신자의 일요일로 했다고 하여, 조금도 이상함은 없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한 일은 아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분이 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부활은 천지의 창조 이상의 일이었다.
그리고 조화완성을 기념하기 위한 안식일을 고쳐 그리스도 부활을 기념하기 위한 안식일로 하신 것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참되신 하나님의 역사(일하심)로서 가장 합당한 일이시다.
나는 그리스도 신자의 안식일로서 주(週)의 제 1일을 지킨다.
하지만, 지킨다고 하여 유대인이 제 7일을 지키듯 율법적으로는 지키지 않는다.
죄를 사함 받은 은혜의 자녀로서 감사와 환희로써 이것을 성수 한다.
‘하나님의 율법이 명하는 제 7일 안식일’이라는 것은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나의 안식일은 아니다.
‘말세의 복음’ 신자는 규례 또는 율법 또는 법도 또는 계명이라는 등의 말을 써서, 제 7일 안식일의 성수를 우리에게 강박하지만 이것은 전혀 구약의 말인 것으로서 신약에 있어서는 실로 의미 가벼운 말씀이다.
결국 영미인, 특히 미국인은 실리주의 백성인 것으로서 무엇보다도 외면적인 질서 즉 법률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신앙이 어느 사이에 율법에 되돌아가는 것이다.
메도디스트 교회가 알미니안 주의이고, 신앙보다도 행위를 중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유니테리안 주의, 흘리네스 운동, 그리고 또 이 제7일 안식일 성수의 주장, 그 부르짖는 교의는 다르지만, 그 근본은 영미인의 율법적 사상이다.
우리들은 바울 따라 이들 율법적 신자에게 말할 것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이제 약하고 하찮은 소학에 돌아가 다시 이것에 종 되기를 원하는가?
너희가 삼가 달과 날과 절기와 해를 지킨다 하니, 나는 너희에 대하여 염려한다’(갈라디아 4: 9-10)고.
‘말세의 복음’ 신자는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 월삭과 매안식일에 모든 혈육에 이르러 내 앞에 경배하리라’는 이사야서 66장 22, 23절을 인용하여,
오인에게 토요일 성수를 촉구한다 해도 오인이 그들에게 묻고 싶은 것은 그들은 동시에 매 월삭(매달 초하루)의 성수를 주장하는데, 필경 그들의 신앙은 신약보다 구약에의 후퇴이다.
오인은 단지 안식일 문제에 대하여 그들과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아니다.
신앙의 근본을 달리하는 것이다.
성서를 존중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는 점에 있어서 그들과 신앙을 같이하는 것으로 보이나, 이는 단지 외면의 유사에 지나지 않는다.
오인은 다시 바울의 말을 인용하여, 이 문제에 관한 오인의 입장을 분명히 한다.
즉 ‘그러므로 혹은 마시는 일,
혹은 먹는 일, 혹은 절기,
혹은 월삭(매달 초하루),
혹은 안식일의 일로 사람으로 하여금 너희를 비난하지 말게 하라’ (골로새서 2:16).
*내촌감삼의 ‘갈릴리의 길’을 연재중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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