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 십자가의 길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거듭난 삶 2024. 4. 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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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률

 

마태복음 7:7-12: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참조 : (누가복음 6:31, 11:5-13절 제7-8)

 

구하라. 그리하면 주어질 것이다.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질 것이다.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 것이다.

그것은 누구든지 구하는 자는 얻고,

찾는 자는 찾고, 문을 두드리는 자는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구하여 얻지 못하면 찾으라, 찾아 얻지 못하면 두드리라고 하여,

예수는 여기서 사람이(누구나) 항상 기도하여 낙담말 것’(누가복음 18:1이하참조)

가르치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누구든지 아무것을 구하여도 주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후절에 말씀한대로, 아들이 아버지에 대한 태도로써 선한 것을 구하는 때에 이것을 받게 된다는(주어질 것이라는) 가르치심이다.

 

우리들은 첫째로,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후에, 한결같은 열심으로 이것을 기도하여 구할 것이다.

 

누가복음 1113절의

 

하늘에 계시는 네 아버지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으랴고 있는데 주의 할 것이다.

성령은 사람이 하나님께 구해야 할 지상(地上) ()이다.

 

 

9-10: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조수(鳥獸) 또한 은()을 안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고 한다.

사람도 그 아들에게 좋은 것을 줄 줄 안다.

하물며 하나님에 있어서야 라고, 예수는 말씀하신 것이다.

 

돌은 빵 비슷하고, 뱀은 물고기에 비슷하다.

보다 나쁜 것을 주지 않고, 그 반대로 보다 좋은 것을 준다.

 

여기에 이라고 하는 것은, 갈릴리 호반의 생선회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설이 있다.

혹은 그럴지도 모른다.

어버이(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하나님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을 부자의 애정으로서 나타낸 말이다.

 

 

11: ‘너희가 악한 자인데도라고 한다.

 

예수는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한 자임을 말씀하여 주저치 않았다.

이것은 물론 사람에게는 선한 것 절대로 없다는 것은 아니다.

부모 자녀의 정 같은 것, 선성(善性)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아들의 눈으로 볼 때, 사람은 모두 악한 자이다.

자기중심이다. 인색(stinginess)하다. 자기 자식에게 마저 주기를 아까워하는 자이다.

 

그런데, 그런 너희들마저, 좋은 것을 그 자식에게 줄줄 안다.

하물며 하늘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에 있어서랴는 것이다.

 

사람에게 있는 선심이 하나님께 없을 리 없다.

 

아비가 그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103:13참조).

 

성시인(聖詩人)은 하나님의 이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은,

너희도 남에게 그 같이(대접)하라

 

이것은 유명한 황금률 Golden Rule이다.

산상의 수훈의 최고까지 올라간 곳, 그 절정이다.

따라서 또 그리스도교 도덕의 극치이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는 별도로 하고, 사람에 대한 의무, 즉 도덕은 이것으로 그치는 것이다.

그 대체의 의미는 명료하다.

그리고 이에 의해 생각나는 것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 이를 남에게 하지 말라'는 공자의 가르치심이다.

 

그리고 공자의 가르치심과 같은 것이 그리스도 이전의 유대인 교사에 의해서도,

또 그리스, 로마의 철학자들에 의해서도 가르쳐졌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치심과, 이들 교사의 그것과의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

 

전자는 적극적인데 대하여, 후자는 소극적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 있어서, 적극 소극의 차이는 천지의 차이이다.

 

하라는 안에 하지 말라는 것은 들어있으나,

하지 말라는 안에 하라는 말은 들어있지 않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는 교훈은 동일한 일의 되풀이는 아니다.

 

선을 행하는 자는 악을 피하나, 악을 피하는 자는 허다한 경우에 선을 행치 않는다.

논보다 증거이다.

 

동양 도덕은 악을 피하는데 있어서 유효하나, 선을 행하는데 있어서는 극히 미약하다.

사람에게 괴로움을 끼치지 않으려고는 힘쓰지만, 나아가서 선을 행하려고는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유력한 자선, 또는 사회개량은 행해지지 않는다.

 

외국전도 같은 것, 보기에 족할 만한 것은 없다.

자기의 안전을 꾀하고, 남에게 괴로움을 끼치지 않으면 인생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동양인 전체의 기풍(character)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은 전혀 이와 다르다.

그의 제자 된 자는 나아가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가 원하는 바, 이것을 남에게 시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랑은 활동적이다.

이웃을 비롯하여, 전 인류를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하지 않고서는 마지않는다.

사람에게 괴로움을 끼치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로 하여금 행복되게 하려고 힘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사람의 사람에 대한 태도가 일변하다.

단지 사해(四海) 모두 형제라고 하여, 철학적 평아에 잠기지 않는다.

형제 됨의 열매를 올리고자 한다.

 

리빙스텬(후세최대 유물 38역주), 저드슨, 엘리자벳 프라이(프라이). 플로렌스 나이팅게일(나이팅게일) 같은 사람을 일으켜,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전 인류를 포옹(embrace)하려 한다.

 

더 자세히 황금률의 문자를 연구함의 필요가 있다.

 

일본역 대로 읽을 때, 이것을 오해할 위험이 있다.

이는

 

사람에게 대접 받고자 하는 일은, 모두(무엇이든지) 사람에게 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많은 해를 가져온다.

이 교훈의 중심은 그처럼’(그같이, 하는대로)이라는 문자에 있다.

 

무엇이든지 사람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은 너희도 남에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같이 사람에게 하라이다.

너희가 대접 받고자 하는 그 마음으로서 하라로 해석할 수가 있다.

 

문제는, 하는 일은 아니다. 일을 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간단히 말하면 사랑으로서 하라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함과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의미는 그것으로 다 그치는 것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처럼’(그같이, 하는 대로)이란, 7절에서 11절까지를 관련시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너희를 취급해 주시기를 바라는 대로,

너희도 또한 사람(누구나)을 취급하라는 것으로 생각한다.

 

즉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완전하심 같이, 너희도 완전해 지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신자의 규범은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께 배우는 것(본받아 따름)이 신자의 본분이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 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누가복음 6:36)고 하신다.

너희는 사랑받는 자녀같이 하나님을 본받으라’(에베소서 5:1)고 하신다.

 

하나님을 본받아 사람에게 행하라.

 

무엇이든지 사람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것은

너희들 하나님이 너희에게 하신대도 사람에게 행하라고 하는 것이

황금률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같이 해석하는 자는 나 한 사람만은 아니다.

유명한 주해자 벵겔(8202역주)도 이렇게 해석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석하여 그 의미가 한층 깊고, 넓고, 높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본받는다(닮는다)는 것은, 도저히 사람이 미칠 바 아니라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만 도덕 그것이 도저히 달할 수 없는 이상이다.

그러므로 귀하다고 철학자 칸트(7141역주)는 말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본받기에 아주 쉬운 분이다.

우리는 지혜와 능력에 있어서 하나님을 닮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랑에 있어서 배울 수가 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즉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에 따라, 사람을 사랑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는 결코 어려운 일 아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은, 이는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다.

계명은 어렵지 (무겁지) 않다’(요한 제15:3)고 요한이 말한 대로이다.

 

이것은 만인에게 적용되는 가르치심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것을 특히 그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으로서

이것은 특히 신자도 도덕으로서 해석할 것이다.

 

크리스천은 사람에게 무엇을 해 주기 바라는가?

 

재산을 나누어 가지려고 않는다. 기타, 몸에 관한 조력을 해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죄를 사함 받기를 원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진리를 전수 받기를 원한다.

 

이러므로, 그는 먼저 사람의 죄를 사한다.

또 자기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그들에게 나누어 주고자 한다.

그리고 이것을 하는데 있어서, 그 정신과 방법은 하나님께서 그를 취급하신 정신과 방법으로서이다.

 

그처럼’(그같이)이다. ‘하나님을 본 받아서이다.

 

하나님이 내 죄를 사하시고, 나를 은혜주시는 그 정신 방법에 따라,

사람의 죄를 사하고, 그들을 사랑하며, 돕고자 한다.

이것이 황금률의 특별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축복의) 방법을 우리들은 잘 알 수가 있다.

하나님은 할머니가 그 손자를 사랑하듯 우리를 사랑치 않으신다.

어떤 때는 그 얼굴을 숨기신다. 어떤 때는 아픈 채찍을 가하여 우리를 징계하신다.

 

그는 허다한 경우에 있어서 은혜의 이슬이 아니라, 사르시는 불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이시다.

옳다. 참 사랑이신 까닭에 그는 그처럼 우리를 취급하신다.

 

우리들도 또한 하나님의 그 사랑을 받아, 그 방법에 의해 사람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은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사람에게 환영되는 사랑은 아니다.

하지만도 그 사랑이 참된 사랑으로서 사람에게 인정되는 때는 반드시 온다.

 

황금률은 행하기에 쉬운 가르침(교훈)은 아니다.

그것 때문에 어떤 종류의 십자가에 올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에게 미움받기까지에 사람을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인생의 최대비극이다.

 

*내촌감삼의 갈릴리의 길을 연재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