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리 & 십자가의 길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거듭난 삶 2024. 5. 5.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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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

 

마가복음 1213-17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14)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15) 우리가 바치리이까 말리이까 한대 예수께서 그 외식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다가 내게 보이라 하시니

16)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화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가로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17) 이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저희가 예수께 대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더라.

 

*참조 : 마태복음 2215-22, 누가복음 2020-26.

 

바리새파는 국권주의의 독립당이었다.

 

로마 정부의 보호 아래 존재하는 헤롯 왕조에 반대하고, ‘나라를 이스라엘에 돌릴 것이라고 하여, 유대국의 독립을 기대한 자였다.

 

헤롯당은 그 정반대로서 로마 황제의 권위에 의해 헤롯 왕조를 유지하려한 자였다.

 

그러므로 평상시 서로 반목하는 당파였는데, 예수에 대해서는 이당이 결합했던 것이다.

 

이 세상의 당파는 모두 그러하다. 그들은 이익위해 서로 다투는 까닭에 이익위해서는 쉽게 일치한다.

 

예수는 양편에게 있어서 공동의 적이었다.

그 당시의 사람에게 있어서 바리새인과 헤롯당이 제휴했던 것은, 오늘의 일본에 있어서 헌정회와 정우회가 제휴했다고 하는 이상의 기관이었으리라.

 

그러나 괴이히 여길 것 못 된다.

이 세상 사람들이 성선(聖善)의 주이신 그리스도에 대하는 때는 언제나 이 길을 취하는 것이다.

 

세금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고 실로 음험(crafty)하기 그지없는 질문이다.

예수를 괴롭히기 위한 질문으로서 이것 이상의 것은 없다.

 

옳다고 대답하면, 독립을 열망하는 백성을 노엽게 할 것이고,

나쁘다고 대답하면, 반역의 이유로서 정부에 제소될 것이다.

 

백성의 적이냐, 정부의 적이냐?

예수는 그 태도를 분명히 하도록 강요된 것이다.

 

마치 우리나라(일본)의 관리 교육가들이 그리스도 신자를 괴롭히려 하여,

그리스도교와 우리나라 국체와의 관계 어떤가의 질문을

종종 제출하는 것과 한가지로, 악의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하나님의 아들 못 되는 우리들은 이 질문을 받고서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는지를 알 때,

예수의 이 경우에 있어서의 곤란을 헤아려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들과 달라 훌륭하게 이에 응하는 길을 아셨다.

그는 질문자에게 향하여 그들이 납세용으로서 사용하도록 명함 받은

로마 정부 주조(鑄造)의 은화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도록 그들에게 요구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것을 보여,

그 화폐에 새겨진 상과 그 주위의 문자가 누구를 나타내는지를 반문하셨다.

그리고 가이사라는 대답을 얻어, 이에 대해 대답하셨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리라.

 

실로 놀라운 말씀이었다. 반대자는 이에 대하여 한마디도 대답할 말이 없었다.

 

데나리온은 로마 황제 칙명아래 주조된 화폐로서, 제국에 바치는 제세는 모두 이 화폐로서 했다.

이는 가이사의 것을 가이사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제국의 통치를 받는 자의 누구나가 할 일이었다.

 

납세는 신민 제1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납세라고 하여 세금을 헌납하는 것은 아니다.

빌린 것을 돌려드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가이사가 받아야 할 것을 그에게 돌리는 것이다.

복종 독립의 문제가 아니다. 의무 실행의 문제이다.

 

가이사는 질서를 주고, 백성은 이에 대하여 세금으로서 세를 바친다. 대차 관계의 실행이다.

 

질문자의 dounai domen(바친다, 준다)에 대해,

예수는 apodote(돌려주라, 지불하라)로써 대답하셨다.

 

가이사의 것에 대해 하나님의 것이 있었다.

당시의 유대인 사이에 이종(二種)의 은화가 유통했다.

하나는 데나리온이고, 로마 정부에 납세를 위해 사용되었다.

기타의 것은 세겔인데 이것은 성전에 헌금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 의미에 있어서 데나리온은 황제의 것, 세겔은 하나님의 것이었다.

예수는 여기서

 

데나리온 이것을 정부에 바치라, 세겔은 이것을 하나님께 바치라하셨다고 해석하여,

크게 틀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예수는 여기서 정교분리를 가르치신 것이라고 해석하는데,

그 의미도 혹은 그 안에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께서 여기서 가르치신 것을 다시 정세하게 전한 것이,

로마서 136-8절에 있어서 바울이 말한 말씀이다.

 

이르기를, ‘너희는 조공을 바치라. 그들은 하나님의 용인으로서 언제나 이 직을 행하고 있다.

너희는, 부채면 누구에게도 이것을 갚으라.

조공을 받을 자에게는 조공을, 세를 받을 자에게는 세를,

경외를 받아야 할 자에게는 경외를, 공경을 받아야 할 자에게는 공경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을 지는 외는 누구에게도 아무것도 지지 말라.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도,

부채는 이것을 갚아야 한다.

 

하나님도 우리에게서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것을 주셨으며,

우리들은 그에게 모든것을 돌려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에 대하여,

우리들은 이는 내 것이라고 칭할 것 하나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전부를 드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먼저 첫째로 내 하-(heart)를 드릴 것이다.

내 소유는 물론 나 자신이 당신의 것이라고 하여,

그 앞에 전심 전령을 드릴 것이다.

 

실로 바울이 말한 대로 이 몸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거룩한 산 제물로서

그에게 바치는 일은, ‘이것, 마땅히 할 제사이다.

 

(로마서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이 정당한 요구에 응할 수 있는 자는 어디에 있는가?

 

바리새파와 헤롯당의 사람들은 예수에게 이 질문을 발하여 자기들의 허물을 지적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것을 의아하게 여겼다고 있어서, 예수의 지혜와 권위와 통찰에 놀란 것이다.

 

국체 문체로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우리나라의 거짓 충신과 거짓 애국자에 대해서도

우리들은 동일한 필법으로서 그들을 설복할 것이다.

 

*내촌감삼의 십자가의 길을 연재 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