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거듭난 삶 2024. 6. 5.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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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의 종 4

 

[1:30-32]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1:30-31]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비방하는 자 - 이것은 공적으로 남을 악평하는 자이다.

 

19:16에 말하기를,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였으니, 남을 말로 매장함은 잔인한 일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죄를 범하는 자는 벌을 받나니 그것은 그 자신이 역시 악평을 받음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고 하셨다(7:1).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 - 이 죄들은, 사람이 자기를 과중시(過重視)하여 남들을 무시함이다.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는 헬라 원어로 데오스튀게이스인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라고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능욕하는 자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멸시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교만한 자.” 이 말은 헬라 원어로 훼페레파노스인데 높이 나타나는 자란 뜻이다.

 

실제적 내용은 없이 높은 사람인 체하고 자기를 나타내는 자도 있고, 혹은 실제적 내용이 있고서 그리하는 자도 있다. 실제적 내용이 없이 그리하는 자는 외식하는 죄까지 범하는 자이다.

 

16:18에 말하기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하였다.

 

개인이나 단체나 교만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벌을 받는 법이다.

 

19:29에 말하기를,

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고 하였으니, 오만한 자(거만한 자)의 죄가 어떻게 큰 줄을 우리가 알 수 있다.

 

자랑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자니, 예수님으로 자랑하는 자와 반대되는 자이다.

 

진실로 주 예수로 자랑하는 자는 전적으로 자기를 분토와 같이 천히 보아야 할 것이다.

 

(3: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이득이 되던 것들을 곧 그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손실로 여겼으며

8) 참으로 확실히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라.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의 손실을 입고 그것들을 단지 배설물로 여김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율법에서 난 내 자신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을 통한 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난 의를 소유한 채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라).

 

그 이유는, 자기를 의뢰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음에 대한 적성요소(敵性要素)이기 때문이다.

 

 

악을 도모하는 자. - 이것은, “악한 일을 지어내는 자를 말함이다.

이런 사람은, 자기 한 사람만이 악을 행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악행의 길을 개척하여 주는 셈이다. 이 얼마나 악한가?

 

수리아의 안디오코 에피파네스는 유대인을 괴롭게 한 자니, 그는 모든 악을 도모하는 자라는 칭호를 받았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 -

 

이 죄목들은 애정과 의리(義理)를 배반하는 종류에 속한다.

애정은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인데, 그것을 배반하는 자야말로 극도로 악한 자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거역하는 자는 큰 죄인이다.

구약 시대에는, 불효자는 재판을 받게 하고 돌로 쳐 죽이도록 한 것이다.

 

(21:18-21 어떤 사람에게 고집이 세고 반항하는 아들이 있는데 그가 자기 아버지의 음성이나 자기 어머니의 음성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들이 징계해도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를 붙잡아서 자기 고장의 성문에 이르러 자기 도시의 장로들에게 나아가

20) 자기 도시의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아들은 고집이 세고 반항하며 우리의 음성에 순종하려 하지 아니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요 술주정뱅이라, 하거든

21) 그의 도시의 모든 사람이 그를 돌로 쳐서 죽일지니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가운데서 악을 제거할지니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신약 시대에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불효가 여전히 큰 죄악인 것은 틀림없다.

 

(딤전 5:8 그러나 누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집 사람들을 부양하지 아니하면 그는 믿음을 부인한 자요 불신자보다 나쁜 자니라).

 

우매한 자이것은 사람이 자기가 받은 사랑이나 긍휼에 대하여 지각(知覺)이 없고 그것을 감사하지도 않으며 기억지도 않음을 말함이다.

 

(1:2-3 오 하늘들이여, 들으라. 오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자식들을 먹이고 키웠거늘 그들이 나를 거역하였도다.

3) 소도 자기 주인을 알며 나귀도 자기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며 내 백성은 깊이 생각하지 못하는도다, 하셨도다).

 

도탄 중에 빠진 자가 남의 동정을 구하다가 배척을 당할 때 그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남에게 은혜를 베푼 자가, 그 은혜를 입은 자의 배은망덕의 태도를 볼 때에 느끼는 비통(悲痛)은 그 이상이다.

 

배약하는 자”, 성경은,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해야 한다고 한다(15:4).

 

무정한 자.”,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여기 무정하다 함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대하여 무정함을 가리킨다고 하나, 그렇게 제한을 두어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인정이란 것은 인간에게 위로와 용기와 소망을 주는 것이다.

인정이 활동하면 눈물의 골짜기도 변하여 희열의 낙원이 되는 것이다.

 

무자비한 자.”, 어떤 사람이 불쌍하게 된 원인이 그 자신의 저지른 죄악이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도 혹시 무자비일 수 있다.

크리스챤의 자비는, 조난자(遭難者)의 육신 정황뿐 아니라, 정황까지 불쌍히 여김이다.

 

 

 

 

[1:32]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 죄를 범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는 자는, 고침받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죄를 옳게 여기는 자는 고칠 소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