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로마서 4장(1~4절)의 대의(大意)

거듭난 삶 2024. 7. 3. 00:09
728x90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

 

로마서 4(14)의 대의(大意)

 

(4:1-4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2)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3)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

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이미 기술된 바울의 구원관(구증관)’과 아울러 읽도록 하라‘)

 

사람은 어떻게 하여 하나님 앞에 의롭게 되는가(의롭다 하심을 얻는가)?

 

그리고 제1로 이방인은 어떻게 하여?

물질문명을 자랑하고, 윤리, 도덕, 철학을 입으로 하면서,

종교를 경시하고 복음을 조소하는 자는 어떻게?

그들 자칭 문명 인사는 과연 하나님 앞에 서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을까?

 

그들의 학문이라는 것을 보라,

그들은 하나님은 없다고 주창하면서 하나님 아닌 것을 높여 하나님으로서 제사하지 않는가!

 

그들의 행위를 보라, 그들이 윤리, 도덕, 철학을 입으로 ()하는 가운데 투기, 쟁투, 궤휼, 참해, 훼방, 오만, 배약, 부정의 제약은 끊임없이 그들 사이에 행해지고 있지 않는가?

 

문명의 이름은 아름답다. 철학의 소리는 높다. 하지만 실행은 어떤가?

곡학(曲學), 아세(阿世), 불의(不義) 부덕(不德),

누가 그들을 하나님의 의인으로서 인정할 자 있으랴!

 

당치 않다, 하나님은 그들을 의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의 노는 그들의 불건, 불의에 향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난다.

 

(1:18-32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이방인은 그러하다.

그렇다면 유대인은 어떨까?

그들은 언제나 이방인을 비난하고 그 죄를 떠들어 자기의 청정을 말하는 자이다.

 

하지만 특히 묻는다. 하나님의 선민이라고 하는 유대인은 과연 하나님 앞에 서서 의인될 수 있을까?

 

너희가 만약 유대인의 이름을 가지고,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고, 그 뜻을 알며, 율법을 배워 사물의 시비를 분별할 줄 알고, 스스로 소경의 길잡이, 암흑에 있는 자의 빛, 어리석은 자의 인도자, 어린이들의 교사라 생각하며, 또 율법에 있어서 지식과 진리의 식을 얻는 자라고 생각하면, 그렇다면 너(그대), 남을 가르치는 자여, 너는 어찌하여 자신을 가르치지 못 하는가’(2:17).

 

유대인은 하나님에게서 율법을 받고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

문명이 이방인을 구원하지 못하듯 율법은 유대인을 구원하지 못한다.

다만 율법을 가지는 것은 그 사람을 의로 하기에 족하지 못하다.

 

율법을 듣는 자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이 아니다. 의롭다함을 얻는 자는 율법을 지키는 자이다’(2:13)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율법은 도리어 죄를 더하는 것이다.

율법이 없는 곳에 죄과는 없다.

 

유대인은 완전한 율법을 가지면서, 도리어 이것을 어김의 위험이 있는 자이다.

율법은 도리어 유대인을 죄로 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찌할까?

이방인도 죄인, 유대인도 죄인, 윤리도덕은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하고, 율법도 역시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한다.

 

유대인도 그리스인도 모두 죄 아래 있다.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그러면 의롭게 될 길은 없는가?

 

옳다, 있다.

윤리 이외, 율법 이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이다.

 

지금은, 율법과는 달리 하나님의 의는 나타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 이것이다’(3:21-22)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도 이 길에 의해서이다.

 

즉 신앙의 길에 의해서이다(4). 우리들은 신앙에 의해 아브라함의 참된 자손으로 되는 것이다.

이상이, 118절 이하 제4장의 끝에 이르기까지의 바울의 의론의 대의이다.

 

의인은 신앙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라는 성어의 해설이다.

 

*내촌감삼의 로마서 주석에서 참조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