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사함의 은총
성 경: [롬 4:4-8]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7)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 일하는 자에게는 - 본 구절에 대해 혹자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땅히 열심으로 추구해야 할 선행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적을 내세워 자기 공로를 자랑하려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설명하고 있다(Calvin).
본 구절 전체가 일상적인 고용 관계에 대한 것을 비유적으로 진술하고 있는 점에서는
1차적으로 삶을 위해 일하는 일꾼을 의미하며,
2차적으로는 다음절에 기록된 '일을 한 것이 없는 자'와 '믿는 자' 등과
대조를 이루는 개념으로서 단지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는 자들을 의미한다.
▶ 그 삯을 - 일꾼이 요구하는 '삯'은 문자적으로 일해준 것에 대한 품삯을 의미하지만,
(눅 10:7 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얻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
딤전 5:18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느니라)
은유적으로는 '보상'(reward)을 뜻하는 말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외에도 신약에는 삯을 뜻하는 말로 '와소니온'이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이는 눅 3:14에 병사의 급료라는 뜻으로 쓰였으며,
(눅 3: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본서에서는 죄의 '삯'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일꾼이 그의 일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며 당연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본절에서 바울이 이 정당한 요구를 '빚'(오페일레마)이라는 개념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은 매우 특이한 용법이다.
▶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 '빚'(오페일레마)은 '삯'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쓰였으나 '은혜'(카리스)와는 대조적인 뜻으로 사용되었다.
'빚'은 히브리어로 '맛솨아'로서 주로 모세의 율법에 나타나는 바, 채무 관계를 지적하는 데 쓰여졌다.
(출 22:25 네가 만일 너와 함께한 나의 백성 중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이거든 너는 그에게 채주 같이 하지 말며 변리를 받지 말 것이며).
무엇을 빌린 자는 반드시 갚아야 했으며 만일 채무자가 정당하게 갚지 못했을 경우 채권자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고 채무자로부터 생계 수단이 되는 어떠한 것들을 전당물로 잡을 수 있었다.
(신 24:6 사람이 맷돌의 전부나 그 윗짝만이나 전집하지 말지니 이는 그 생명을 전집함이니라).
신약에서 '오페일레마'는 구약에서와 같이 사업적인 용어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눅 7:41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특히 비유 속에서는 채무자를 용서하거나 또는 죄인으로 취급할 때 쓰였다.
채무자는 빚을 다 갚기 전에는 옥에 갇혀 있어야 했으며,
(눅 12:57-59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아니하느냐
58) 네가 너를 고소할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저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관속에게 넘겨 주어 관속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9) 네게 이르노니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여서는 결단코 저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또한 송사(訟事)하는 자에 의하여 재판관에게 고발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본절에서 일하는 자가 삯을 요구하는 것은 마치 채권자가 송사하는 것과 같이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을 요구하는 것으로서 빚을 탕감받은 자들이 탕감받은 것을 은혜로 여기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서 '일'은 자랑이며 동시에 정당한 자기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바울은 일하는 자들의 정당한 삯을 언급함으로써 다음절에 나오는 일하지 아니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용서와 칭의(稱義)의 위대함을 강조하고 있다.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는 자에게 있어서 행위의 결과는 일꾼이 일한 것에 상응한 대가를 받는 것과 똑같은 이치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설 만한 자리가 없다. 오로지 행위의 주체인 자신의 자랑만이 존재할 뿐이다.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 일을 아니할지라도 - 삯을 위해서 일하지 않은 사람, 즉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는 자가 아니라 의를 얻기 위해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킨다.
바울이 본절에서 의를 얻기 위해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서 의롭게 되는 것에 대하여 계속 진술했듯이 오직 하나님은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신다.
4절과 비교해 볼 때, 이 믿음은 곧 하나님의 은혜로운 활동과 관련된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경건치 아니한 자 - 이는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 애쓰지 않는 자와 동의어지만 죄인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그보다 더욱 강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이 용어는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와 넓이를 보여 주고 있다(Murray).
▶ 의롭다 하시는 - '의로 여기시나니'(톤 디카이운타)라는 현재 분사형 표현은 그 시제에 있어서 '믿는 자'(피스튜온티)와 일치하는 것으로서 의롭다 여기시는 것이 철저하게 믿는 것과 연결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경건치 아니한 자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죄인에게도 임한다는 구원의 진리를 적용한 것으로서 아브라함에게 적용되었던 원리와도 일치한다.
[롬 4:6]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 일한 것이 없이 - 이 말은 원문상으로 '행위와 상관없이'라는 의미를 지닌다(without works, KJV).
바울이 거듭 강조하여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 것이 인간의 행위 내지 노력과 아무 상관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 '행복'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카리스몬'은 '축복'이나 '행복'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특별히 이 단어는 단순한 '축복'이나 '행복'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총'에 강조점이 있다.
그래서 혹자는 '하나님으로부터 복되다고 선포되는 것'이라고 의역하기도 했다(Black).
이 해석을 따를 때, 본절은 '하나님으로부터 사람이 받은 바 축복에 대한 다윗이 선포하기를'로 번역될 수 있다.
따라서 '사람이 받은 축복'이라는 구절은 그 속에 이미 하나님의 은총을 내포하며 동시에 믿음으로 참여한 모든 자들에게 임할 동일한 축복을 선언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롬 4:7]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 '불법'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하이 아노미아이'이다.
이 말은 '율법'(노모스)이란 말에 부정 접두어 '아' 가 첨가되어 이루어진 파생어이다.
포괄적으로는 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의미하나 보다 정확하게는 '율법을 어긴 행위'를 가리킨다.
그리고 '율법을 어긴 행위'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죄로 규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에서 '불법'과 '죄'는 동의어의 반복으로 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하심을 받고'(아페데산)라는 동사와 '가리우심을 받고'(에페칼뤼프데산)라는 동사 역시도 동의어의 반복이다.
일반적으로 히브리 시문학에서는 평행 대구법(parallelism)을 사용하여 앞절과 뒷절이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 뜻을 강조하고 그 내용을 보다 명확하게 구체화시키곤 하였다.
(시 6:1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한편 '아페데산'과 '에페갈뤼프데산'은 둘 다 부정 과거 수동태로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능동적인 사역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축복의 상태를 나타낸다.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거나 가리움을 받는 것은 이미 과거에 성취되었으므로 그에게 남은 것을 성취된 구원 속에서 누려야 할 축복 외에 아무것도 없다.
[롬 4:8]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 - 본절은 7절의 중복으로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사유(私有)하시는 은혜를 보다 강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앞절에서는 '불법이 사함을 받는 것', '죄가 가리움을 받는 것' 정도로 언급했으나, 본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죄인으로 규정되는 '죄'조차 없는 것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이 강조되었다.
바울이 이신칭의(以信稱義)에 대해 설명할 때에 본 구절은 결정적인 논리의 뒷받침이 되고 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행위와는 상관없이' 그 사람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할 때 논리상 믿음이 의로 여겨지는 중간 과정이 생략되었다. 그 논리의 틈을 본절이 메우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는 사람이 의로 여김을 받기 위해서는 실제로 그 사람이 행한 죄악이 어떻게 여겨지게 되는 가에 대해 설명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7절과 본절의 인용 구절에 분명히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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