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거듭난 삶 2024. 7. 16.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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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그리스도 2

 

성 경: [5:15-18]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그러나(알라) - 이는 앞에서 말한 내용과 반대되는 뜻의 내용이 전개될 것임을 암시한다.

 

앞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아담의 유사점을 말하였으나, 본절에서는 그리스도와 아담의 차이점을 말하고자 한다.

 

이 은사 - 이는 언급된 사실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본절에 언급된 '은혜'와 관계된다.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 '그 범죄'라 함은 '아담의 범죄''아담의 범죄 외의 다른 범죄', '모든 범죄'를 지칭할 수 있다.

 

그러나 본절 하반절은 아담의 범죄와 그리스도의 은혜를 비교하고 있으므로 대표적으로 '아담의 범죄'라고 해석하는 편이 타당하다. 그리고 헬라어 본문에서 '범죄'(파랖토마)가 단수형이라는 사실도 이 견해를 지지한다.

 

여기서 바울은 '하나님의 은사'(카리스마), 아담에서 비롯된 '인간의 보편적인 범죄'를 대조시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부각시키는 논리를 전개시키고 있다.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 12절에서 바울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했으나, 본절에서는 '모든 사람'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두 용어 사이에는 의미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대표 단수를 사용하든지 단순히 복수를 사용하든지 헬라어 문법에서는 '모든'을 의미할 수 있다.

 

물론 영어 문법에서는 '모든'을 의미할 수 있다. 물론 영어 문법도 이와 같다.

인간의 부분적 타락을 주장하기 위해 이러한 사실을 무시해 버리려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으나, 이것은 바울이 앞에서 '모든'이라는 총칭 형용사를 사용한 것과 비교할 때 전혀 근거가 없다.

 

더욱 - 이 단어는 9절에서와 같이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비교급 강조의 의미를 갖는다(much more, KJV).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사망에 처하게 되었으나, 그리스도의 은혜로 죄와 사망의 권세는 무너지고 더 나아가 모든 사람은 소망과 기쁨 가운데 넘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Lenski).

 

하나님의 은혜 -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선물'과 동일하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서만 모든 사람에게 미치기 때문이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 앞에서 이미 바울은 '한 사람의 범죄'를 언급했으나 지금은 '한 사람의 은혜'에 대해 진술하고 있다.

 

범죄가 한 사람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었듯이 은혜도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로써 상반절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 여기서 '많은 사람'은 앞에 언급된 '많은 사람'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넘쳤으리라'는 동사는 14절의 '왕노릇 하였나니'라는 동사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한편 '넘쳤으리라'로 번역된 헬라어 '에페릿슈센''물이 그릇에서 넘쳤다', '강물이 둑에서 넘쳤다'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은혜가 인류를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로 넘치며 모든 믿는 자에게 구별없이 풍성하게 부여된다는 문맥상의 의미를 갖는다.

 

또한 동사 '에페리스슈센'은 목적어로서 '에이스 투스 폴루스'('많은 사람에게'), 4격을 취한다. 헬라어에 있어 4격은 3격과 같이 단순 목적의 의미를 지닐 뿐 아니라 '을 꿰뚤고', '을 관통하여'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즉 그리스도의 은혜가 개인의 전인격을 철저히 변화시키며 죄악을 씻고 거듭나게 한다는 것이다.

 

 

 

[5: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

 

본절에서 바울은 범죄와 은혜의 기원(起原)과 그 위력(威力)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 한다.

 

즉 범죄는 한 사람에서부터 시작되었으나, 은혜는 사망이 왕노릇하는 데서, 또는 범죄가 만연되어 있는 데서 비롯되었다.

 

이것은 '은혜'의 기원과 위력이 '범죄'보다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다.

 

이 선물(도레마) - 이는 15절에서 언급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을 가리킨다.

 

15절에서 '은사'(카리스마)'범죄'(파랖토마)와 비교되었고, 본절에서는 '은사''심판' (크리마)과 비교되었다.

 

은사는 값없이 주는 용서이며 심판은 엄격한 공의로서 모두 하나님이 주체이시다.

만일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신다면 우리는 모두 버림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값없이 우리를 의롭다 하셨다. 본절은 바로 이 칭의의 선물이 심판의 효능보다 우월함을 선언하고 있다.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 '의롭다 하심'(디카이오마), 곧 칭의(稱義)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죄인들을 사면해 주시고 의로운 자들이라 칭하신 것으로서 이는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주신 선물이요 은사이다.

 

또한 18절의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를 보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의롭다 하심이 없이는 구원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와 사망의 세력 아래 놓인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원수된 상태에서 회복되어 구원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5: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 본절은 12, 14절의 말씀을 요약 반복하고 있다.

 

즉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죄가 선하게 창조된 세상에 들어와 온 세상을 오염시켰고 그 가운데서 통치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이로써 본래 하나님을 최고의 통치자로 삼고, 그의 대리자로 인간, 그리고 인간의 지배를 받는 만물의 질서 체계가 죄의 지배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대신에 죄(사단)가 최고 통치자로 군림하게 되어 하나님의 존재가 완전히 무시되어 버림과 동시에 인간도 아무 주체 의식 없이 죄의 종노릇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질서 내지 통치권의 변화는 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받으시는 장면에도 잘 묘사되어 있다.

 

(4:8-9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귀는 천하만국을 자기의 것인양 자랑하면서 예수로 하여금 자기에게 경배할 것을 요구하였다.

여기서 '경배하라'는 사단의 요구는 최고의 통치자로서 마땅히 받아야만 하는 예배행위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단에게 세상의 지배권을 행사할 권리를 부여하셨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28:18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 자신이 친히 하나님으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으셨음을 가르쳤다.

 

만일 그러한 권세가 없다면 예수는 세상의 구주 또는 주인(Lord)이 될 수 없다.

다만 사단은 자신이 그러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인 양 속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사단이 죄로 세상을 오염시켰다는 의미에서는 그 역시 세상의 지배자로서 자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더욱 - 본장에서 바울이 즐겨 사용했다.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 여기서 '은혜''의의 선물'은 별개의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의미에 대한 서로 다른 표현으로서 저자가 주장하려는 논지의 의미를 분명히 밝혀 주는 구실을 한다.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 - 상반절과 비교할 때 대조와 구분이 완전해지려면 본 구절은 '생명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노릇하리로다'라고 구성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본절에서는 '왕노릇하다'의 주어가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다.

 

이것은 분명히 바울의 의도적인 변형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바울은 분명히 성도가 '하나님의 후사(後嗣)'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성도가 '하나님의 후사'라는 것은 단순히 '유업을 잇는 자'(3:29)만을 의미하지 않고,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갖는 영광된 신분을 강조하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실제로 계 22:5에서는 성도가 영원무궁토록 '왕 노릇할'것이 언급되어 있다.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뿐만 아니라 베드로는 성도의 신분을 '왕 같은 제사장'(벧전 2:9)이라고 했다.

 

그리고 '왕 노릇'이란 말은 '죄의 종'되었던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위치가 정반대로 바뀌게 됨을 보여주고 있다.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5: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바울은 다시 12절부터 지금까지 진술했던 것을 요약하여 말하고 있다(Murray).

그러면서 그는 죄인된 인간이 생명에 이르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

한 사람(아담)의 범죄로 → ②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었으며 → ③ 예수그리스도의 의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 ④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 ⑤ 생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과정에 바울이 그동안 진술했던 '믿음''화목'을 삽입해 보면, '믿음'사이에, 그리고 '화목'사이에 삽입될 수 있다.

 

그런즉 - 12절에서부터 17절까지의 내용을 요약하는 결론이 시작됨을 나타낸다.

 

(12-17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14)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죄와 율법에 관한 13, 14절 내용과 구원의 은혜와 범죄에 대한 심판을 대조시킨 15-17절 내용으로 중단되었던 아담과 그리스도 간의 비교가 12절에 이어 다시 본절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12절에 천명된 결론이 본절에서 다시 언급되고 있다.

 

한 범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 헤노스 파랖토마토스'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즉 한글 개역 성경과 같이 '한 범죄'로 해석하거나, 영역 성경이나(the offence of one, KJV), 독일어 성경처럼(eines Sunde, Luther Bible), '한 사람의 범죄'로 해석하는 것이 가능하다.

 

어느 경우를 취하든지 전후 문맥상의 의미에 있어서 별다른 차이를 초래하지 않으나 후자의 해석이 지배적이다.

 

헬라어 사본들 중의 가장 유력한 사본들 중 하나인 알렙 사본을 위시하여 고대 라틴어 사본들은 본문의 '헤노스' 다음에 '안드로포스' ('사람')을 첨가하고 있으며 많은 역본들이 이를 따르고 있다.

그리고 15-17절에 '한 사람'이란 표현이 일관되게 반복 사용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서도 '한 사람'이 원문에 충실한 듯하다.

 

아무튼 본 문구는 '한 사람 아담의 범죄'를 가리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 '많은 사람'으로 번역된 헬라어 '판타스 안드로푸스''모든 사람'(all men, KJV)을 의미한다.

 

아담 한 사람의 범죄는 세상에 사망의 권세를 가져왔고, 전인류는 이 사망의 권세에 눌려 종노릇을 하게 되었다.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디 헤노스 디카이오마토스)'한 사람의 의로운 행동으로 말미암아'라는 뜻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우신 행동을 가리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운 행동이란 예수께서 공생애 기간 동안 행하신 모든 행동, 즉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모든 행동, 즉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행하신 사역들을 총칭한다.

물론 이 구원사역은 십자가 사건에서 최절정을 이룬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고 구원을 얻는 근거는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 이 헬라어 본문 '에이스 판타스 안드로푸스 에이스 디카이오신 조에스'를 번역하면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칭의가 이르렀다'이다(KJV, Modern Language Bible).

 

헬라어 본문은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 '생명의 칭의'(justification of life),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 자체가 이미 '생명'에 이른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한편 '모든 사람이 생명의 칭의에 이르렀다'함은 만인 구원론(Universalism)을 뜻함이 아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섬기는 자들에게 구원이 임함을 밝히고 있다.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