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거듭난 삶 2024. 9. 5. 00:08
728x90

 

이스라엘의 회복 2

 

성 경: [11:27-32]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11:27]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본 구절은 사 27:9의 인용이다.

 

(27:9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함을 얻을 결과는 이로 인하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로 부숴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으로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

 

바울은 이 구절을 자유롭게 고쳐서 인용했으며, 여기에는 렘 31:31-34, 5:2 등에서 볼 수 있는 사상도 깃들어 있다(Harrison).

 

(31:31-3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3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

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이켰을 때 얻게 되는 복스러운 은혜를 말하고 있다.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 바울은 이러한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 새 언약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이 새 언약은 렘 31:31에서 제시되는 것으로서,

 

(31: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맺은 옛 언약이 새로운 차원으로 진행되어 하나님의 법이 백성들 속에서 작용하고 마음에 기록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완악하여 지긴 했어도 대부분의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 될 것임을 제시한다.

결국 바울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한 언약의 개념이, 보다 구체화되어 계속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Dunn).

 

본절에서 '언약'을 바울은 70인역을 그대로 인용하였으며, 여기서 언약을 수식하는 전치사구는 '나에게로 말미암은'(파르 에무)이고, 맛소라 본문에서는 '그들과 함께'(오탐)이다.

 

구약 본문에서는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은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헬라어 본문에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언약'은 하나님께로 부터 나왔음을 시사하고, 또한 그 언약이 새 언약이라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11:28]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본절에서 바울은 수수께끼같은 이스라엘의 현재적 상태를 하나님의 구원 섭리라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경구적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복음''택하심'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비롯되는 이스라엘의 이중적 상태를 역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본절에는 대조와 병행을 이루는 용어들이 부각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원수''사랑을 입은 자', 그리고 '복음''택하심'이다.

 

한편 4:25에서도 이와 같은 수사법을 사용하였는데(Kasemann),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본절에서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유대인의 불순종과 패역은,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천대받아도 된다는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Calvin).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여 실제로는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있지만, 이로인해 이방 세계에 복음이 전해져서 이방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Bruce) 그 효과는 충분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던 유대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였어도, 하나님의 택하심과 전혀 무관했던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상대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적대 관계가 형성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하나님의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이 된 것처럼 보여도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가진 것과 다른 특권을 고유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하고 있다.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 비록 복음의 경륜 안에서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위해 원수된 자로 간주되었지만 그들의 조상 덕분에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어왔다는 것이다(Harrison).

 

그러나 '조상들을 인하여'라는 구절은 조상들의 공적(제쿠트 아보트)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Bruce).

즉 조상들이 보여준 의로운 행위가 축적되어 후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사랑을 입은 것은 그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는 것이고(Kasemann, Dunn),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신실하게 언약을 성취해 가시므로 그 후손들에게도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이 폐기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 '은사와 부르심'에 대한 해석은 약간의 차이가 있다.

 

(1) 혹자는 두 개의 다른 범주라 하고(Cranfield)

(2) 혹자는 바울이 부르심을 가장 중요한 은사로 여겨 이렇게 언급했다고 한다(Michel).

 

이 견해대로 하면 '은사와 부르심', '은사, 그중에서도 부르심'이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3) 가장 유력한 견해는 이것을 증언법(hendiadys)으로 보는 견해로서 (Calvin, Kasenmann), 이 견해에 의하면 '은사와 부르심''부르심의 은사'라고 번역할 수 있다.

 

세 번째 견해가 가장 무난할 듯하다.

 

한편 이러한 은사는 9:4,5에서 언급한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특권(特權)을 말하는 것임이 틀림없다.

 

(9:4-5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5)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이러한 부르심의 은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유일한 위치로 부르셨다는 점을 증거해 준다(Harrison).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 즉 하나님께서는 후회라고 하는 것을 결코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후회하심에 대한 표현이 몇 군데 나타나는데,

 

(6: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23:19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삼상 15:11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 밤을 여호와께 부르짖으니라,

 

29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변개치 않으심이니이다),

 

하나님의 '후회하심'이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여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해 심히 유감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한번 정하신 뜻을 돌이키거나 변심하지 않으며, 실수하시는 일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사람과 달리 신적 불변성(immutability)을 갖고 계신다.

 

 

[11: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 '너희'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메이스'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희들이 어떠했다라고 독자들의 과거 상태를 지적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돌이키는 실수를 범하고 있기는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파되게 되었다.

 

한편 '이스라엘'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톤'('이들의')은 소유격으로서 '순종치 아니함'(테 아페이데이아)이라는 여격 분사의 의미상 주어로 사용되었다.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 본절과 다음 절에 나오는 '이제'()는 역사적인 현재를 나타낸다(泉田昭).

 

'긍휼'(엘레오스)은 사람의 이성으로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하나님의 지혜요 경륜이다.

이 긍휼을 베푸심의 근거는 '순종치 아니함'이며 이는 32절까지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긍휼함을 얻는 대상 역시 28절의(구원의 대상의 순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유대인 이방인 모든 사람'이라는 논리적 순서를 따른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실은 종말론적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1: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앞 문장과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바울은 다시 한번 이방인들에게 은혜 안에 있는 그들의 현 위치에 관해 우쭐대지 않도록 하려고 이방인들이든지 유대인들이든지 어떤 특권이 있는게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비록 복음에 대한 유대인들의 반응이 악화되어도 하나님은 자신의 구원 계획을 변경하지 않으시고 긍휼을 계속 베푸신다(Harrison).

 

그래서 결국 모든 사람이 긍휼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11: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

 

본절은 헬라어 본문에서 접속사 '가르'('왜냐하면')로 시작되어 30, 31절의 결론이 되고 있으며, 5:12-21에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다는 내용을 매우 간단하게 요약하고 있다.

 

하나님이 지향하시는 궁극적 목적은 모든 인간을 긍휼히 여기심이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본서의 전체적인 주제를 상기해 볼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버려두신 것은 그들의 화인 맞은 양심이 각성되어,

 

(딤전 4: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자신들의 절망적인 상태로부터의 구원을 갈망하게 되고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궁극적 목적을 위해 이방인을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도구로, 이스라엘을 위해서는 이방인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이는 결국 구원의 전체성, 즉 전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만인 구원을 인정하는 구절은 아니다.

 

(25-26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본절의 '모든 사람'은 그 범위가 제한된다.

 

'순종치 아니하는 모든 사람', '긍휼을 얻을 모든 사람'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