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거듭난 삶 2024. 9. 7.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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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에 대한 의무

 

성 경: [1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러므로 - 이는 본장에서부터 전장들의 내용에 대한 결론이 시작되고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근거한 권면으로 이끌기 위해 자연스럽게 꺼내어진 이 단어는 이스라엘의 유기(遺棄)와 장래의 구원에 관한 기록인 9-11장을 받는 것이 확실하지만, 넓게는 자비하신 하나님에 관계된 진술 전체, 1-11장에 이르는 교리적 내용을 이어받는다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Godet, Cranfield, Murray, Harrison).

 

한편 '그러므로'를 사용해서 설명과 권면을 이끌어내는 표현은 바울 서신에 자주 나타난다.

 

(고전 4:16 그러므로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라;

 

4:1 그러므로 주의 갇힌 자 된 내가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를 부르실 때에 허락하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걷고;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권면하노니 무엇보다 먼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중보와 감사를 드리되)

 

형제들아 - 이는 수신자(受信者)들에 대한 사랑의 감정 어린 표현이다.

이 단어를 수신자에게 적용시킬 때마다 사도는 깊이 감동되어 있음을 주목하라.

 

(1:13 형제들아, 이제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도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어떤 열매를 얻기 위해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이제껏 막혔도다);

 

7:1 형제들아, (내가 법을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법이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만 그를 지배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8: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을 따라 살도록 육신에게 빚지지 아니하였느니라;

 

10:1 형제들아, 이스라엘을 위한 내 마음의 소원과 하나님을 향한 기도는 곧 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 이는 바울의 권고의 근거가 되는 문구이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얼마나 덧입고 사는 가를 깨닫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행할 수 없다.

 

'모든 자비하심'에 해당되는 헬라어 '오이크티르몬'

 

'자비',

 

(고후 1:3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분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긍휼의 아버지시며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니라;

 

2: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무슨 안위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인정이나 긍휼이 있거든;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혹은 '불쌍히 여김'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복수형태이다.

 

(10:28 모세의 율법을 멸시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인해 긍휼을 얻지 못하고 죽었거늘)

 

이는 '큰 자비''동정'의 의미를 가진 히브리어 '라하밈'이라는 복수 형태를 따른 것이다.

 

(삼하 24: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큰 곤경에 빠졌도다. 주의 긍휼은 크니 이제 우리가 그분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대상 21: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큰 곤경에 빠졌도다. 주의 긍휼은 심히 크니 이제 내가 그분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25:6 오 주여, 주의 친절한 긍휼과 주의 인자하심이 옛적부터 항상 있었사오니 그것들을 기억하소서)

 

이는 복수를 취하여 강조하는 '강의(强意)의 복수'이다. 따라서 '모든 자비하심'으로 번역되었다.

 

권하노니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칼로'는 쓰임이 다양하나 여기에서는 명령과 간청의 양면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는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호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단어는 본절의 성격을 지시하면서, 나머지 다섯 장(12-16)의 성격도 권면으로 이어짐을 보여준다.

 

너희 몸을 - 이 문구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6:11-13의 문맥에 비추어서

 

(6:11-13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참으로 죽은 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해 산 자로 여길지어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의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안에서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주지 말며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

 

단어 자체가 가진 단순한 의미만을 뜻하지 않는다.

 

(고전 6:20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느니라. 그런즉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후 5:10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타나리니 이로써 각 사람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자기가 행한 것에 따라 자기 몸 안에 이루어진 것들을 받으리라).

 

여기서의 몸은 몸과 마음, 즉 온 인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봄이 바람직하다(Calvin, Beza, Shedd).

 

그러므로 '너희 몸''너희 자신'(yourselves)을 뜻하며, 우리의 인격 전체를 형성하는 모든 요소를 포함한다. 세상과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구체적인 삶으로 표현되는 삶의 양태까지 포함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란 하나님께 전 인격적으로 우리의 몸을, 생애 전체를 드리는 것이다.

 

즉 우리의 생애를 통해 계속적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에 힘쓰는 것이다.

 

그리고 '거룩한'이란 말은 흠이 없이 순전(純全)하다는 의미이다.

 

(1:4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2:15 이것은 너희가 흠이 없고 무해한 자 곧 구부러지고 비뚤어진 민족 가운데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 그런 민족 가운데서 너희가 세상에서 빛들로 빛나며;

 

1:22 이제는 그분께서 죽음을 통해 자기 육체의 몸으로 화해를 이루사 너희를 그분의 눈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드리려 하셨으니).

 

그러므로 거룩한 제사란 죄의 종이었던 우리가,

 

(6:16-17 너희 자신을 누구에게 종으로 내주어 순종하게 하면 너희가 순종하는 그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에게 전달된 교리의 그 틀에 마음으로부터 순종하고;

 

2:1 또한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5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받아 그가 주신 새 생명으로 그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6:4-7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힘입어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진 것 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5)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겼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

6) 우리가 이것을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이제부터는 우리가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7) 죽은 자는 죄로부터 해방되었느니라,

 

13-14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내주지 말며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로서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를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

14) 너희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므로 죄가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리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너희의 열매를 얻었으니 그 끝은 영존하는 생명이니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노라. 그러나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느니라. 나는 지금 내가 육체 안에서 사는 삶을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노라).

 

'산 제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산'은 현재 분사로 '지금 살아있는'이란 뜻을 포함한다.

 

이 말은 구약적인 제사, 즉 짐승을 죽여 피를 흘림으로써 드리는 제사와 대조된다.

또한 당시에 이교 사회(異敎社會)에서 성행했던, 몸을 부정(不淨)한 일에 악용했던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산 제사'는 구약 시대의 동물 제사처럼 다른 존재로써 드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드리라는 것이며 또한 지역이나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제사로서 살아 움직이며 생활하는 자체로 하나님께 바치라는 것이다.

 

믿음은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것이다.

 

(2:22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위와 함께 일하고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 이 부분은 앞에 나온 권면을 설명하고 확증(確證)하는 의미에서 쓰여졌다.

 

'영적 예배''영적'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형용사 '로기켄'인데 '로기코스'에서 유래되어 '합당한'(reasonable, KJV), '합리적인'(rational)의 뜻을 가졌다.

 

'영적'(spirtual, NIV)인 것을 확실히 표현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켄'을 사용하지 않고 '로기켄'을 사용한 것은 이방인들의 미신적인 행동들을 염두에 두었거나(Calvin), 즉 하나님께 가장 합당한 예배를 강하게 표현하려는 의도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혹자는 이를 '합당한'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나 반드시 그럴 필요는 없다.

따라서 이를 이스라엘 성전 예배의 외형적 의식과 대조하여 '영적' 예배라고 번역하는 것도 좋은 번역이다(Hendriksen, Bruce).

 

'예배'에 해당하는 헬라어 '라트레이아'는 구약의 제사를 지칭하기도 했는데, 본절에서는 단순히 제사 행위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삶으로서의 예배를 의미한다.

, 삶의 모든 가치와 의미를 주께 두고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므로 KJV는 이를 '섬김'(service)으로 번역한다(KJV).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 - '세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이온''세계', '세상'을 의미하는 '코스모스'와 비슷한 의미를 가졌는데, 일반적으로 '코스모스'가 공간적이고 현상적인 세상을 의미하는데 반해, '아이온'은 시간적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의미한다.

 

'이 세대'(아이온 후토스)란 용어는 바울이 여러 차례에 걸쳐 사용했다.

 

(고전 1:20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서기관이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2:6 그러나 우리가 완전한 자들 가운데서 지혜를 말하거니와 그것은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아무 쓸모없게 될 이 세상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라,

 

8 이 지혜는 이 세상 통치자들 중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였으니 만일 그들이 그것을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3:18-19 아무도 자신을 속이지 말라.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것처럼 보이려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그가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19)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음이니 기록된바, 그분께서 지혜로운 자들을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느니라, 하였고;

 

5:10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들이나 강탈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자들과 전혀 함께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반드시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하리라;

 

7:31 이 세상을 이용하는 자들은 남용하지 않는 자처럼 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사라지느니라;

 

고후 4:4 그들 속에서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치지 못하게 하였느니라;

 

1:4 그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 악한 현 세상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자신을 주셨으니).

 

유대교 종말론에서는 시간을 '현 세대'(present age)'올 세대'(age to come)로 구분하는데, 바울도 이와 같이 종말을 기점으로 크게 둘로 나누어 사용하였고 바울이 사용한 '이 세대'라는 말 속에는 대부분 이러한 유대교적 종말론의 개념이 함축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이 세대'가 시대 구분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신' 혹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다스리는 '악한 세대'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세대는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적대 세력을 의미할 뿐 아니라

'이 세대'의 삶의 방식과 가치 기준 등 시대 정신도 포괄한다.

 

본받지 말고 - '본받다'의 헬라어 '쉬스케마티조''스케마'('품행', '행동', '외형', '모양')에서 파생된 것으로 고전 7:31에 나오는 '이 세상의 형적'의 형적(形跡)에 해당하는 말이다.

 

(고전 7:31 이 세상을 이용하는 자들은 남용하지 않는 자처럼 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사라지느니라)

 

따라서 본 구절은 표면적이고 흘러가는 이 세상 풍습을 받아들이거나 순응하지 말라(Sanday, Headlam)는 것이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이는 우리의 생각과 이해가 새롭게 계속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 아나카이노세이 투 노오스''마음의 새로움으로써'라고 번역할 수 있다(표준 신약 전서)

 

여기서 '마음'이란 도덕적 활동과 관련된 이해력이나 사고력 등을 말한다(Barmby).

 

'변화를 받아'의 헬라어 '메타모르푸스데'는 현재 수동태 명령형이다.

곧 이 말은 자신이 아닌 타자(他者)에 의해서 변화하며 일시적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꼭 그렇게 되어야 함을 나타낸다.

즉 우리의 인격 내부에 변화를 일으키는 세력인 성령에 의해 마음이 새롭게 계속 변화되어 가는 과정이 인간에게 꼭 필요하다.

 

선하시고 - 헬라어 '아가도스'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특별하게 주신 말씀을 기준으로 규정되는 ''이라기 보다는, 모든 사람이 일반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의 ''을 의미한다.

 

(2: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화평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이방인에게로다;

 

7:12-13 그런즉 율법도 거룩하고 명령도 거룩하며 의롭고 선하도다.

13) 그러면 선한 그것이 내게 사망을 이루었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을 통해 내 안에서 사망을 이루었나니 이것은 죄가 명령을 통해 넘치도록 죄로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18-19 내 안에 (곧 내 육신 안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내가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한 그것을 어떻게 행할는지는 내가 찾지 못하노라.

19) 이는 내가 원하는 선은 내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원치 아니하는 악을 곧 그것을 내가 행하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의 개념을

교회 안에서,

 

(9사랑에 꾸밈이 없게 하라. 악한 것을 몹시 싫어하고 선한 것에 붙어 있으라)

 

사회 속에서,

 

(21악에게 지지 말고 도리어 선으로 악을 이기라)

 

그리고,

국가에 대한 관계 속에서 사용하였다.

 

(13:3ff. 치리자들은 선한 일이 아니라 악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나니 그런즉 네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한 일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

 

다만 본절에서 바울은 ''의 기준을 하나님께 두고 있다.

 

기뻐하시고 -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이 이뤄지거나, 그의 뜻과 일치될 때 기뻐하신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 뜻을 가지신다. 그러므로 사람이 그 뜻에 합당하게 생을 영위하거나, 피조 세계가 원래 목적대로 진행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

 

온전하신 - 인간의 뜻은 타락한 욕심이 작용하기에 그 어떤 뜻도 온전할 수 없다.

하지만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뛰어난 특성은 그 자체가 온전한 것이다. 신앙과 행위의 충분한 규범으로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것이다.

 

(딤후 3:16-17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완전하게 되어 모든 선한 일에 철저히 갖추어지게 하려 함이라).

 

이는 그 뜻을 가지신 하나님 자신이 온전한 분이기 때문이다(5:48).

 

분별하도록 하라 - '분별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 '도키마조''입증하다', '시험하다', '인정하다'라는 뜻을 가졌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다는 말은, 판단하거나 시험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한다는 것이다(Murray).

 

신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를 알아야 하며,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야 한다.

 

(5:8-10 너희가 한 때는 어둠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니 빛의 자녀들로서 걸으라.

9) (성령의 열매는 모든 선함과 의와 진리 안에 있느니라.)

10) 주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 무엇인지 입증하라;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순종한 것 같이 내가 있을 때뿐 아니라 지금 내가 없을 때에도 더욱더 순종하여 두려움과 떨림으로 너희 자신의 구원을 일하여 드러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