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거듭난 삶 2024. 9. 13.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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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 대한 의무 2

 

성 경: [12:5-7]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음으로 할 것이니라.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이와 같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후토스''이리하여', '이런 식으로'를 의미하는데

4절에 나오는 '카다페르'와 함께 '이와 같이'의 뜻을 나타낸다.

 

앞절에서 예를 든 것처럼 인간의 유기적 조직(有機的 組織)을 통해 신자 각 사람에게 할당된 기능의 필요성과 한계를 인식시키려는 것이다.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 '한 몸'이라는 표현은 통일성을 가리킨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된 '우리'는 신자들의 공동체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룬다.

 

(고전 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많은 사람'을 나타내는 헬라어 '호이 폴로이'는 셈어투(Semitism)의 형태로 3절에 나오는 '너희 중 각 사람'과 같은 의미이다.

 

'한 몸'이란 인간의 혈통으로나 사람의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이 연합의 기반을 이루시고 믿는 자들이 믿음으로 그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2: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연결된 그의 몸 된 유기체는 오직 교회이다(Godet).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 데 칼 헤이스 알렐론 멜레'에서 '칼헤이스'(주격)는 부사로 사용되어 '개인적으로', '하나씩', '각각'으로 해석된다(BDF, BGD).

 

이런 표현은 막 14:19;8:9;고전 14:31;5:33에 나오는 것으로서, 각각의 성도가 교회 전체와 서로 관계를 가지므로 각 지체는 다른 모든 지체들에게 속한다는 뜻으로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을 강조하는 것이다.

 

(14:19 저희가 근심하여 하나씩 하나씩 여짜오되 내니이까;

 

8: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고전 14: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5:33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그러므로 이는 특히 교회론(ecclesiology)적인 의미를 강조하는 본문으로 보기도 한다(Dunn).

 

,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이 없는 연합을 생각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드러냄과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Shedd).

 

따라서 4, 5절의 내용을 종합하여 언급하면 다음과 같다.

 

(1) 몸의 통일성,

(2) 각 지체들의 다양성과 이에 상응하는 기능의 다양성,

(3) 여러 지체들의 상호성이다.

 

이처럼 사람의 몸에 나타난 유기적인 원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룬 성도들의 사회, 거룩한 공동체 안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음을 가르친다.

 

이는 성도들 사이에서 존재할 수 있는 개인주의적인 정신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다.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이제 앞서 말했던 것을,

 

(3-5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봉사를 위해 쓰일 수 있도록 적용시킨다.

 

(6-8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음으로 할 것이니라).

 

즉 각 지체의 기능에 관해 말한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 본 구절은 은사의 근거가 되는데, 어느 누구도 자기의 받은 바 은사에 대해 자만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은혜대로'(카타 텐카린)를 문자대로 번역하면 '은혜에 따라'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신자들에게 선물을 나눠 주시는 원리가 된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사(役事)하심에 따라 은사들이 주어지는 것은 각각 다른 기능과 직분을 유기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이다.

 

(고전 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 '받은'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콘테스''가지고 있는', '소유하고 있는'이라는 뜻으로 은혜로 받은 것을 계속해서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은사'는 그 은혜가 구체적으로 몸의 지체들에게 반영되어 실제 행함으로 가시적(可視的)으로 나타난다.

 

'각각 다르니' '은사가 다르다'는 것은 5절에 나오는 '서로 지체'라는 말을 더 자연스럽게 이끈다.

 

신자들이 각각의 은사들을 받은 것은 이 은사들이 개별적으로 주어진 목적대로 사용되기 위해서 이다.

 

교회에서의 특별한 직분(職分)이나 기능들은 서열(序列)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은사의 다양함과 그에 따른 능력들을 나타낸다.

 

혹 예언이면 - 예언을 나타내는 헬라어 '프로페테이안'의 동사 '프로페튜오''예언하다', '미리 말하다'의 뜻을 가졌다.

 

'예언'은 주로 선지자들에 의해 행해졌는데 선지자는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기관이었고

계시의 내용은 여호와의 말씀 바로 그것이었다.

 

(4:12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7: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로 바로에게 신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2) 내가 네게 명한 바를 너는 네 형 아론에게 말하고 그는 바로에게 말하여 그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보내게 할지니라;

 

23: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8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

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2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한편 성경의 기록이 끝난 시점에서 하나님의 계시는 완성되었고,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사도들에게서 완성되었으며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완성된 이후에는 새로운 계시를 위한 예언자도 필요없게 되었다.

 

신약 시대에 와서 예언은 경고와 권면, 교훈과 판단, 그 마음의 비밀을 나타내며,

 

(고전 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24-25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25)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

 

영감을 받아 하는 것으로 나온다.

 

(벧후 1: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이 기능을 가진 자 중에는 여자도 있다.

 

(21: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예언을 시험하거나 고려해 봐야 할 때에는,

 

(고전 14: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와 그 척도를 두어야하며 이에서 벗어나면 무가치한 것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말씀 계시 이상의 예언은 없다. 즉 여기서의 예언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해석하여 백성을 가르치는 설교나 말씀 선포등과 연관되는 직분으로 본다.

 

이 예언하는 직분이 다른 곳에서도 사도직에 이어 곧바로 나오는 이유는 이런 중요성 때문이다.

 

(고전 12:29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그러나 사도나 선지자들이 교회에서 우선권을 갖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외의 은사들은 그 중요도에 있어서 특별하게 우선권을 갖지는 않았다(Ladd).

 

믿음의 분수대로 - '분수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카타 텐 아날로기안'인데 '아날로기아'는 수학 용어로 '바른 관계혹은 '조화, 비례'(proportion)라는 뜻을 가졌다.

 

따라서 '칼 아날로기안''적당하게', '에 비례하여'라는 의미가 있다(Dunn).

 

어쨌든 본 구절은 예언이 시행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증거가 있어야 함을 보여주는데, 혹자는 '아날로기아''유비'(analogy)라고 직역하여 본절의 '믿음', '교회가 객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계시 체계로서의 믿음이나 규범'을 의미한다고 했다.

 

따라서 이에 의하면 '믿음의 분수대로'는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대로 예언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정해놓은 규범에 따라 예언을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된다.

(Kasemann, Schlier, Ortkeuper, Weiss ).

 

그러나 본문의 '믿음'은 객관적 규범이나 교리의 믿음을 나타내는 일반적 의미의 믿음이 아니다.

 

'믿음의 분수대로'3절의 '믿음의 분량대로'를 나타내는 헬라어 '메트론 피스테오스'6절의 '은혜대로'를 표현한 헬라어 '카타 텐 카린'과 병형구로 그 뜻하는 바가 같다(Bruce, Barmby, Gaffin).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섬기는 일이면 - '섬기는 일'은 매우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용어이기 때문에 그 의미를 한 가지로 정하기는 어렵다.

 

이의 헬라어 '디아코니아'는 종종 비신자에게 말씀을 전하는 직분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6:4 오직 우리는 계속해서 기도와 말씀 사역에 전념하리라, 하니라).

 

그러나 본 구절의 '섬기는 일'은 그 행사에 있어서 의도적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필요한 '집사의 직분'(4:12 이외에는 '디아코니아'를 이러한 의미로 사용하지 않은 것은 의미 심장함)에 제한된 것 같다.

 

(4: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 은사(섬기는 일)가 예언과 가르침 사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섬기는 일'이란 신자의 물질적 요구를 관장하는 보다 좁은 의미의 봉사를 뜻하는 것 같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성도의 곤경을 도와 줄 수 있는 여러 직분에 종사할 수 있었다.

 

(고전 16:15 형제들아 스데바나의 집은 곧 아가야의 첫 열매요 또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줄을 너희가 아는지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섬기는 일로 - 이는 '믿음의 분수대로'의 원리에 적용하여 실제적으로 섬김의 은사를 받은 자들은 마음을 다하여 그 직분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벧전 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혹은 바른 섬김을 하며 전적으로 그것에 종사하거나(Gifford), 실제로 섬김을 실행하는 것(Cranfield)을 가리킨다.

 

가르치는 자 - 이에 예언하는 것과 구별되며 섬기는 것과도 다르다.

예언은 계시와 관계되어 있는 반면에, 가르침은 지식과 관련하여 지혜와 지식의 말씀으로써,

 

(고전 12: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14: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하나님의 계획을 조화롭게 나타내는 것이다(Godet).

 

즉 진리의 말씀으로 교회를 형성케 하고 훈계를 통해,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딤전 4:13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신자들의 삶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 가르침이다.

본서의 구조 자체도 그러한 사실을 입증한다.

 

즉 진리의 해석인 교리 교육을 기초로 하여(1-11), 성도들의 실제적인 삶을(12-16)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에서 바울은 구약성경을 상당히 인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초대 교회 교사들이 '가르치는 일'을 함에 있어서 구약성경에 크게 의존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Harrison).

 

가르치는 일로 - 가르치는 자는 가르치는 일로 섬길 것을 의미하여 아울러 6절에서 제시한대로 자기 '믿음의 분수(분량)대로그 임무를 수행하는데 힘써야 한다는 원리를 다시 언급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에 있어서는 사사로이 풀거나 억지로 해석하지 말며 성령의 도움을 받아 바르게 가르쳐야 한다.

 

(벧후 1:20-21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3: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