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거듭난 삶 2024. 10. 2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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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 요한의 혈통

 

성 경: [1:5-7]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유대 왕 헤롯 때에 - 헤롯은 유대인의 왕으로 보통 대()헤롯(Herod the Great)이라 하는데,

본문에서 '헤롯 때에'라 함은 곧, '그의 통치 기간 중에' 라는 의미가 된다.

 

그는 B.C. 37년 로마 제국 원로 회의를 세금 상납 및 치안유지 등의 약속으로써 매수하고,

특히 당시 실권자인 옥타비우스(Octavius)와 안토니오(M.Antonius)를 등에 업음으로써 유대 곧 팔레스틴 전체의 분봉왕(分封王)이 되어 B.C. 4년에 그가 죽기까지 유대의 실질적인 통치가 노릇을 하였다.

 

(4:44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

 

6:17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7: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23:5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19:37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그는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Idumean) 태생 이방인으로서, 지략과 용기가 탁월한 정치가였고 특히 유대 백성에 대한 유화 정책상 유대교의 후원자로 자처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위시한 수많은 공공건물을 건립케함으로써 유대 백성들의 마음을 유화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한 반면에 그는 정권 유지를 위해 정적(政敵)을 제거하고 심지어 자기 자식과 아내 및 장모, 처남, 삼촌 등을 죽일 정도로 잔인했다.

 

그런데도 그는 정치적 술수가 워낙 뛰어나, 로마의 비호 아래 대제사장의 임명과 폐위에까지 간여(干與)하여 그 타락함이 극에 달했다.

 

*참조 (2:1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실로 이 시기는 종교적으로 타락한 시기였고 정치, 사회적으로 비극적이며 희망이 없는 시대였다.

 

이제 이러한 비극과 어두움을 배경으로, 누가는 새로운 희망의 빛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특별히 그는 말라기 선지가(B.C. 435-425 추정) 이후 400년 동안, 하나님의 계시의 중단으로 인한 영적 암흑기를 마감하는 위대한 여명기(黎明期)가 시작됨을 알리려 한다.

 

아비야 반열 (the priestly division of Abijah) - 여기서 먼저 '반열'이란 성전의 매일 봉사를 위한 제사장의 직무 순서를 뜻하는 말이다.

 

이는 아론 자손 곧 제사장 가문에 기초하여 24 반열로 구분하는데, 각 반열은 순서에 따라 1주일씩 성전에서 봉사하였다. 한편 24 반열 중 아비야 반열은 8번째 순서였다.

 

(대상 24:10 일곱째는 학고스요 여덟째는 아비야요).

 

사가랴요 엘리사벳이라 - 사가랴는 히브리 이름으로 보통 스가랴(Zechariah)라고 하며 유대인 사회에서 흔한 이름이다.

 

(왕하 14:29 여로보암이 그의 조상 이스라엘 왕들과 함께 자고 그의 아들 스가랴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그 이름은 '여호와께서 기억하신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편 엘리사벳(Elizabeth)'내 하나님은 맹세의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을 가지며 '엘리세바'와 동일 이름으로 여겨진다.

 

(6:23 아론은 암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으며).

 

이들 부부는 모두 제사장 가문의 출신으로, 제사장 가문끼리 결혼을 한다는 것은 이중적인 영예로 여겨졌다(Geldenhuys).

본래 율법은 제사장이 이스라엘 태생의 처녀에게 결혼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21:14 과부나 이혼 당한 여자나 창녀 짓을 하는 더러운 여인을 취하지 말고 자기 백성 중에서 처녀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러나 반드시 제사장 가문에서 아내를 취해야만 한다는 조항은 없다.

그럼에도 사가랴가 대제사장 가문(아론의 자손)의 처녀와 결혼했다는 것은 상당히 영광스럽고도 특기할 만한 일이라 할 것이다.

 

한편 '엘키사벳'이 이스라엘 최초의 대제사장인 아론의 아내 이름과 같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있는 일치로 본다.

 

(6:23 아론은 암미나답의 딸 나손의 누이 엘리세바를 아내로 맞이하였고 그는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을 낳았으며)

 

 

[1: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 이 말은 원래 구약적 개념으로서 율법적으로 온전한 자에게 붙여진 관용구였다.

 

여기서 '의인'이란 이 말이 법률적인 용어로 사용될 때에는 정당한 판단에 따른 긍정적인 시인(是認) 내지는 평가를 받은 자들 의미하기도 한다.

 

, 이는 '하나님이 보실 때에 바른 자들',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히 지키는 자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하나님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자들' 등의 의미를 지닌다.

 

이에 대해 마샬(Marshall)'의인'이란 말이 '순전히 윤리적인 측면의 인격에 대한 평가이기 보다 종교적인 측면에서의 인격을 가리킨다'고 했다.

 

사실 인간이 그 인격으로는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나설 수 없다.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런 까닭에 성경적인 의미의 ''는 믿음을 가진 죄인에게서 그 죄와 죄의 대가를 제거하고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게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의미한다.

 

, 하나님은 모든 의의 기준이시다(Wuest).

진정 인간은 '율법'으로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될 수 없고, 오직 그리스도의 대속의 '믿음'만으로 의인이 될 수 있다.

 

(3:20-24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그런 점에서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본성적이고 본질적으로 의인이기 보다

바로 '하나님 앞에'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긍정적인 평가로 인해서' 의인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한편 이 '의인'이란 말은 선민 이스라엘에서 가장 탁월한 칭찬의 말로 간주되었었는데

 

(6: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18:23-28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24)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25)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2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27)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28) 오십 의인 중에 오 명이 부족하다면 그 오 명이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온 성읍을 멸하시리이까 이르시되 내가 거기서 사십오 명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18:5-9 사람이 만일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며

6) 산 위에서 제물을 먹지 아니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우상에게 눈을 들지 아니하며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아니하며 월경 중에 있는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아니하며

7) 사람을 학대하지 아니하며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 주며 강탈하지 아니하며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히며

8) 변리를 위하여 꾸어 주지 아니하며 이자를 받지 아니하며 스스로 손을 금하여 죄를 짓지 아니하며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하며

9)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한 경건한 인물에게만 붙여졌다. 이것은 유대인의 이상형이었다.

 

예를 들자면 구약에서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고, 신약 성경에 와서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3:6)고 자랑했던 바울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구약 율법 시대의 의인관(義人觀)관에 따른 표현이었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 단죄하는 복음관에서의 평가로 볼 수는 없다.

 

한편 이러한 구약적 의인관에서 볼 때, 특히 누가복음 내에서는 사가랴와 엘리사벳, 마리아와 요셉 부부들 및 시므온과 안나 등이 하나님께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또 그분으로부터 특별한 계시를 받을 수 있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Robertson).

 

이러한 부모의 경건한 삶이 그리스도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침례 요한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었겠는가?

 

계명과 규례 - 여기서 '계명'은 하나님께서 친히 당부하시고 지시하신 권위에 찬 명령들을 의미한다.

 

(7:8-13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9)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1)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12)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13)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그리고 '규례''하나님께서 정당히 여기시는 것들',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옳게 여기시는 것들'이란 의미를 지닌다.

 

결국 위의 '계명''규례'는 인위적인 요소가 배제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거룩하고 온전한 명령과 생활 규범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혹자(Bengel, Calvin)는 이 양자를 분리하여 '계명'은 궁극적으로 인간에게 심판의 근거가 되는 종교, 도덕적인 법령(法令), '규례'는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는 의식적이고 제의적인 예법(禮法)을 각각 지칭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비해 또 다른 학자들(Bruce, Lenski)은 이 양자를 대조시키지 않고, 히브리인들이 즐겨쓰는 셈어적인 중복 기법으로 보아 두 개념을 동일하게 이해하고 있다.

 

즉 여호와의 법령을 강조하기 위해 중복적으로 두 단어를 사용한 것일 뿐 그 의미하는 바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 후자의 견해를 취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흠이 없이 행하더라 - 여기서 흠이 없이'비난받거나 책망받을 것이 없이'라는 뜻으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를 지켰다는 사실을 수식하고 있다.

 

실로 당시 사람들은 아무도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종교. 도덕적인 삶을 책망하거나 비난할 수 없을 만큼 그들 두 사람은 경건히 생활했던 것이다.

 

결국 그 두 사람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서 하나님께 인정받는 동시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참된 신앙인들이었다.

 

 

[1: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

 

유대인들은 자식을 하나님의 축복과 그 기업으로 믿고 있어 자식이 없는 것을 대단한 수치와, 하나님께 대한 죄의 형벌로 알았다.

 

(127:3 보라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또한 유대 랍비들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파문당할 수 있는 7가지 유형을 기록한 목록 서두에서 "유대인이면서 아내가 없고, 또 아내가 있으면서도 자식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무자한 것은 합법적인 이혼 사유가 되었다(Barclay).

 

더구나 두 부부는 이미 나이가 많아 수태(受胎)의 가능성은 더욱 희박했다.

 

이러한 슬픔과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빛나 보이는 것은 두 노부부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자세이다.

 

이들은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주어진 자신들의 위치에서 묵묵히 그 역할을 감당해 갔다.

 

결국 이 경건한 노부부는 구약의 예와 같이(사라한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된다.

 

사라 -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17:16-17)

 

한나 -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7)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8) 그의 남편 엘가나가 그에게 이르되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 하니라

9)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10)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11)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5-11)

 

더욱이 그들은 자신들이 얻은 아들이 메시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선구자로 선택되는 영광까지 얻음으로써 지금까지 그 어떤 부모도 얻지 못한 큰 은혜를 덧입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