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거듭난 삶 2024. 12. 6.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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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에 합당한 열매

 

성 경: [3:7-9]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3:7]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무리 - 누가는 여기서 이 무리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마 3:7과 요 1:19, 24은 그들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었다고 밝힌다.

 

(3: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침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1: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4 그들은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라)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 침례 요한의 메시지는 구약성경에 나타난 선지자의 경고성 선포처럼 매우 날카롭고 엄하다.

 

이 설교는 마 3:7-10과 동일하다.

 

(3:7-10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침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여기서 '독사'는 사단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악인과,

 

(58:3-5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4) 그들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그들은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5) 술사의 홀리는 소리도 듣지 않고 능숙한 술객의 요술도 따르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59:5 독사의 알을 품으며 거미줄을 짜나니 그 알을 먹는 자는 죽을 것이요 그 알이 밟힌즉 터져서 독사가 나올 것이니라)

 

메시야를 적대하는 자에 대한 표현이다.

 

(91: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요한은 침례를 받으러 나오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침례를 받으러 나오기는 했지만 진실된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형식적인 율법 준수와 세속적인 명예심 등으로 부패한 마음이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표현은 8절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현과 대조를 이룬다.

 

후에 예수 역시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힐난(詰難)했다.

 

(12: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그리고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는 요한의 질문에는 그들이 침례를 받으러 그에게 나아오는 것이 마땅하지만 침례를 받으려는 마음의 동기에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30회 이상 언급되었고, 신약 성경에서도 수차례 언급이 되었다.

 

이것은 불의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하신 반응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 진노를 때마다 일마다 표현하시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반드시 엄한 심판을 행하신다.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고 - 성경에서 '열매'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하여 나타나는 선악간의 결과들을 표현하는 말로 종종 사용된다.

 

(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17:8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

 

26:20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나무는 그 나무에 맞는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는 그 구체적 결실을 드러내게 마련이다.

 

물론이 열매는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내적변화에 의해 외적으로 표현되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전인적(全人的)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

 

회개란 죄에 대한 단순한 외적 고백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인격적 변화, 곧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품성의 변화들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종교적 특권이나 혈연적 계보나 의식(儀式)이 구원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유대인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와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은 자들이라는 이유로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따라서 패역한 유대인들은 침례 요한이 요구하는 진정한 회개에서 자신들을 제외시키려고 했다. 침례 요한은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칼날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은 첫 인간 아담을 흙에서 취하셨다.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그렇기 때문에 빈 들이나 강가의 돌들을 통하여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삼으실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을 가리킨다.

 

(3:7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

 

렌스키(Lenski)와 슈어만(Schurmann)은 이 '돌 들'이 바로 이방인들을 나타낸다고 한다.

 

어쨌든 '돌 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와 주권적 권능을 강조한 말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진실된 회개이다.

 

우리의 구원은 외적조건에 있지 않고 진정한 회개를 통한 삶의 변화에 있기 때문에 항상 우리에게는 바로 삶에의 결단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인내하시면서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기를 원하고 계신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3:29).

 

 

[3: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8,9절에서 요한의 설교는 두 가지의 이미지(image)로 묘사된다.

 

(1)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찍혀서 제거된다는 것이다.

이후에 예수도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해서 언급한다.

 

(6:43-45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그리고 예수는 비유로써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를 찍어버리는 것에 대해서 말한다.

 

(13:6-9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요한은 아마도 '나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로 비유된 이스라엘을 연상케 했을 수도 있다.

 

(5:1-7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3)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서 사리를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지를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을 황폐하게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찔레와 가시가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 하셨으니

7)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2) 이미 도끼가 '뿌리에 놓였다'는 것은 당장에 어떤 급격한 행동이 취해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서 나무 전체가 찍혀서 곧장 불에 던져진다는 것이다(Liefeld).

 

이 구절에서는 상황의 긴박성과 다급함이 강조되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일순간 아차 하는 사이에 나무는 찍혀 넘어가게 되고 만다.

 

우리는 침례 요한이 구약의 선지자인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처럼 예루살렘의 앞날의 운명을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침례 요한이 활동했던 시기는 A.D.30-32년 사이이다.

 

결국 침례 요한의 경고의 메시지가 있은 지, 40년 후 A.D. 70년에 예루살렘은 멸망하게 된다.

 

이러한 운명을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은 침례 요한의 경고를 경히 여겼다.

그들은 회개하고 믿기에 적합한 때를 놓치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회개하여 좋은 열매를 맺기는커녕, 악의 싹을 계속해서 키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