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촌

[스크랩] 대학졸업하려면 소 몇마리 팔아야 할까?

거듭난 삶 2009. 4. 16.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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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졸업하려면 소 몇 마리 팔아야 할까?


농촌진흥청, 30년 전과 현재의 소 1마리 가치 비교

- 30년 전 1마리 팔면, 대학 4년간 등록금 내고도 남아

- 지금은 10마리 팔고도 등록금 대기 바빠


  최근 한 농부와 일소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워낭소리’가 인기를 끌면서 한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평생을 농업에 바친 우리 내 부모님들의 고단한 삶과 그 곁에서 묵묵히 논과 밭을 갈아 온 일소 누렁이 한우. 이 영화가 인기를 끈 배경에는 소를 팔아 대학을 가르쳐 주신 부모님의 노고와 누렁이 황소에 대한 추억이 묻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부터 약 30년 전, 재산목록 1호한 마리만 팔면 4년제 대학을 가르쳤던 소. 3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당시의 물가와 소 값의 차이를 비교해 보았다.

 

불과 30년 전만해도 우리의 토종 누렁이 황소는 재산목록 1호로 1마리만 팔면 4년제 대학을 졸업시키고도 남을 만큼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4년제 대학을 나오려면 소 10마리를 팔아야 한단다. 한우의 가치는 별로 오르지 않은 반면 다른 물가가 그만큼 많이 뛰었다는 반증이 된다. 

 

  소 값 6.6배, 대학 등록금은 85배나 올라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600㎏이 나가는 누렁이 한우 1마리의 평균 가격은 389만5천원. 이를 30년 전인 1978년의 한우 가격 58만8천원과 비교하면 소 값은 6.6배 정도가 오른 셈이다.

  반면, 한국교육개발원의 자료에 따르면 1978년 국립대학 예체능대 1년 등록금은 11만3천원이었던 것이 지난해 965만원으로 무려 85배나 뛴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니 농촌에서 소를 키워 대학을 보낸다는 말은 정말 옛날이야기가 된 셈이다. 단순히 대학등록금 상승률과 비교하면 현재 소 값은 1마리에 4천998만원을 받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1978년에는 한우 1마리를 팔면, 국립대 예체능대에 입학한 자녀의 4년 등록금을 내고도 남았지만 지금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 10마리는 팔아야 한다. 소 값이나 쌀값 등 생활필수품 가격 상승률에 비하면 대학 등록금은 너무 올랐다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소 값이 오르지 않은 이유

  그러면 소 값은 왜 그렇게 오르지 못한 것일까? 농업 기계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전인 1970년대에는 한우가 일소에서 고기소 역할까지 담당했던 것이 최근에는 고기소로만 한우 가치를 인정받고, 고기를 효과적으로 생산하는 사육체계가 개발되고 고기 생산 능력을 좋게하는 기술이 개발되면서 실질적인 가격 상승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 농촌진흥청의 판단이다.

  1978년 가격으로 소 1마리를 팔아 다른 물건을 살 경우, 80㎏ 쌀은 21가마를 구입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 소 1마리를 팔아 80kg 쌀을 구입할 경우, 26가마를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나 농업부분에서의 물가 변동은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30년 전 도시 근로자 가구당 연간 소득은 173만4천원으로 이 돈으로 소를 구입할 경우, 소 3마리를 살 수 있었으나 2008년 도시근로자 연간 소득은 4천673만원으로 12마리의 소를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0년 동안 주요 생필품과 소 가격 변화 정도를 살펴보면 소는 6.6배, 쌀은 5.3배 증가한데 비해 대학등록금은 85배, 도시 근로자 소득은 27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평균적인 물가 오름세나 소득 증가에 비해 소 값은 떨어졌다는 것이다.


  맛 좋은 한우 개량, 가격도 낮추는 효과 기대

  이와 관련 농촌진흥청 김윤호 박사는 “30년 전 소는 영화 ‘워낭소리’에서처럼 ‘일소’, 즉 ‘농기계’로써 가치가 매겨졌으나 고기소로 바뀌면서 가치가 달라졌다”며 “앞으로 고기소로써 한우의 가치를 보다 높이기 위해 품질과 안전을 고려한 식품으로서의 연구 강화와 우리 문화로 자리 매김하고 있는 한우 연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 한우가 일소에서 고기소로 변화한 시기는 1980년대 초로 우리나라 한우 개량이 시작된 시기와 함께 볼 수 있다. 1983년에 능력검정을 통한 한우보증씨수소 선발을 위한 사업을 시작했고 1987년에 우리나라 최초로 한우보증씨수소가 선발됐다. 이를 통해 한우의 맛과 품질은 좋아지고 고기 생산 능력은 좋은 쪽으로 개량돼 한우의 가격오름세를 그나마 지탱하고 있다.

  한우 사육두수는 1978년 162만두에서 1988년 156만두, 1998년 238만두, 2008년에는 227만두 정도를 유지해 가고 있다.


                                                    미디어 다음 블로그 베스트기자 길s브론슨


출처 : 신토불이119
글쓴이 : 길s브론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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