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거듭난 삶 2019. 7. 6.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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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피와

 

요한복음 6 53-5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살은 참된 양식이요 피는 참된 음료로다.(한글개역)

 

 

예수의 피는 그의 죽으심이다.

 

'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 모든 죄에서 우리를 깨끗이 한다'(요한1:7) 있는 피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을 때에 아들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해함을 얻었다'(로마서5:10) 라고 있는 죽으심이다.

 

' 흘림이 없으면, 사함 받는 일도 없다'(히브리서9:22) 있어,

 

피라고 하면 흘리는 죽음이다.

희생의 죽음이다. 천연적으로 절로 죽음은 아니다.

다른 사람의 위해 강포하게 받는 죽음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라고 하면, 그가 인류 위해 강포하게 받은 십자가의 죽으심을 가리켜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다'(6:53) 하는 것은,

 

'예수께서 받으신 죽음을 내가 받아야 죽음으로서 인정하지 않으면 내게 생명 없다' 하는 것이다.

 

위해 내가 흘려야 피를

예수께서 대신 흘리신 것을 깨달아 아는 일이다.

 

그리고 각인 없이 죄의 사유 없고,

결과로서 영원한 생명이 (심령) 안에 임하는 일은 없다.

 

자기 죄를 자각하여 사슴이 시냇물을 사모하여 헐떡이듯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예수의 피는 참된 음료이다.

 

그러므로 그는 말씀하셨던 것이다.

 

'사람이 만약 목마르면, 내게 와서 마시라'(7:37) .

 

영혼의 갈증을 고치는 것으로서 실로 예수의 피에 따를 것은 없는 것이다.

 

'피를 마신다' 하면,

 

살벌하게 (피비린내 나게) 느껴지지만도,

그러나 신자의 영적 실험을 표시하는 말로서 이것보다도 적절한 것은 없는 것이다.

 

크리스천은 실로 시시각각 예수의 피를 마시는 것이다.

 

예수의 살은 그의 생명이다.

살이라고 하는 것은 몸이라고 하는 것과 한가지이다.

 

그리고 몸은 생명의 체현이다.

그러므로 살이라고 함은 생명이라는 것과 한가지이다.

그리고 사람의 생명은 자신이므로, 자기 살을 준다는 것은,

자기를 버린다는 것과 가지이다.

 

이렇게 해득하면, 예수의 말씀의 의미를 알게 되는 것이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을 주는) 빵이다. 만약 사람이 빵을 먹는다면 한없이 것이다. 내가 주는 빵은 살이다( 생명이다. 자신이다). 나는 세상의 생명 위해, 이것을 것이다'

 

그리고 청중이 그의 말씀을 오해하지 않기 위해, 예수는 이에 부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생명을 주는 것은 (성령)이다. 육은 유익이 없다. 내가 너희에게 말은 영이요, 생명이다(영에 대해 말하신 것이다. 생명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 예수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그의 생명을 섭취하는 일이다.

성령은 은사에 참여하는 일이다.

 

'그가 안에 있고, 내가 안에 있다' 하는 밀접한 관계에 들어가는 일이다.

 

그리고 신자가 예수와 밀접한 관계에 들어갈 있는 것은,

예수께서 자진하여 자기를 버리고,

육을 십자가에 달리시게 까닭에,

의미에 있어서도 신자는 예수의 육을 먹음의 필요가 있는 것이다.

예수의 피와 그의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씻음 받고, 그의 살로서 생명을 제공받는다.

 

먼저 사함 받은 후에 생명을 받는다.

 

세척(washing) 견신. 완전히 구원되기 위해서는 개의 경로에 의하지 않을 없는 것이다.

 

예수의 피를 마시지 않고서, 그의 살을 먹을 수는 없다.

그러기에, 피를 마실 뿐으로서 그의 구원에 참여할 수는 없다.

피를 마심의 실험을 거쳐 후에 살을 먹고서 비로소 진정 올바른 그의 구원에 참여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로서 우리 위해 예비하신 구원에 들어가는 길로서, 히브리서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 위해 여신 새로운 (생명에 들어가는 )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쳐진) (휘장) 육체를 통하여, 담대히 성소에 들어갈 있다'(히브리서10:19) .

 

성소,

하나님의 보좌 있는 ,

천국에 들어가고자 하면, 예수의 피로 말미암아,

육체를 통과하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다.

 

말에 유대적 냄새(취미)있다 해도, 구원의 실험을 말하는 말로서 깊은 진리를 말해주는 것이다.

 

' 피를 마시고 살을 먹지 않으면 너희에게 생명이 없다' 예수는 명백하게 말씀하신 것이다.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너희의 죄를 사함 받고,

나로 말미암아 사함 받은 자에게 내가 주는 성령을 몸에 받지 않고서는,

너희는 구원에 참여할 없다고 하셨다.

 

죄의 사유와 성령의 은사, 구원의 2 요건은 가지이다.

 

하나를 결여하고서 구원은 없는 것이다.

예수는 말씀을 발하여 그의 복음의 특징을 보여주신 것이다.

 

세상의 종교의 어떤 것은 죄의 사유(사죄) 결여하고,

어떤 것은 생명의 공급을 결여하고 있다.

 

불교 같은 , 아주 귀한 종교에 틀림없으나,

그러나 환기(awakcning)하는 죄의 관념이란 실로 미약하다고 하지 않을 없다.

 

정토문 같은 , 여래의 자비를 말하여 부족함 없다 해도,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자각케 하여 자기의 오예에 견딜 없어 지극히 거룩하신 앞에 엎드려,

 

'내가 스스로 부족하게 여겨(혐오 기피하여), 재를 쓰고서 당신(여호와) 앞에 회개하나이다'(42:6) 라는 같은 깊은 회한의 소리를 올릴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회한 그것은 구원은 아니다.

하지만 구원의 심천은 회한 그것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다.

깊이 죄를 뉘우침으로서 만이 깊이 구원의 은혜를 감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종교의 특질은 죄를 책하는 일에 매우 관대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죄가 폭로되기를 싫어하는 까닭에,

하나님께서 보냄을 입지 않은 종교가는 엄히 죄를 추구치 않고서 그를 구제(구원)에로 인도하려 한다.

 

그러므로 세상의 종교에 있어서는 죄의 삼제의 설비가 매우 불완전하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도 세상의 환영을 바라서 취미를 보려 하면,

반드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써 표현되는 죄의 의벌의 사실을 은폐하고 십자가를 복음을 말하여 도리어 광량을 자랑하기에 이른다.

 

이른바 인정적 그리스도교가 역설하는 바는

'생명, 생명'이다.

 

그들은 실로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누구의 마음에도 임해오는 것으로 말한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죄라는 커다란 장해물이 있음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애자라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은 자신 무한한 고통을 맛보시고 사람의 죄를 제거하신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에게 '예수의 ' 마시게 하려 않는다.

그들은 그러한 말을 미신의 극이라고 비웃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귀함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람에게 예수의 피와 함께 살을 제공하는데 있는 것이다.

 

죄의 속량의 피와 합하여, 부활의 몸의 소인이 생명을 주는데 있다.

사람은 실로 예수의 피를 마시지 않고 살을 먹지 않고서는 구원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은, 죽으시고 부활(다시 살아나)하신 예수를 마시고 먹고서 ,

참된 생명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의 피와 그의 그의 피는 참된 음료이다.

 

그의 살은 참된 식물이다.

복음의 진수는 지금도 이것이다.

 

*내촌감삼의 글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