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거듭난 삶 2019. 7. 10.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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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을 지키러 올라가시다.

 

: [7:10-24]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11)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15)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교훈은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 7:10]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비밀히 하시니라

- 그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교훈하실 때에는 비밀히 하시지 않고 공개적으로 하셨다.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알았는가,

28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외쳐 가라사대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것이 아니로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이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18:2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의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 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런데, 그가 올라가실 때에 비밀히 하신 것은,

도중에 원수들의 위험이 있었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는 때가 이르기 전에 그의 생명을 함부로 내버리기를 원치 않으셨다.

 

 

 

[ 7:11-13] 명절 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

12) 예수께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혹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하게 한다 하나

13)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를 말하는 자가 없더라 - 명절에 모인 무리들이 예수님에게 대하여 말하기를 조심하였다.

 

이유는, 종교 지도자들의 의견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까닭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대하여 옳은 의견도 공적으로 발표하지 못하였다.

 

그것은 진리보다 사람을 무서워한 잘못이다.

 

 

 

[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 명절 기간은 주간이었다.

 

( 23:36 동안에 너희는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 것이요 제팔일에도 너희에게 성회가 것이며 화제를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이제 중간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을 것이다. 때에 그는 가르치기를 시작하셨다.

 

 

 

[7:15] 유대인들이 기이히 여겨 가로되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 - 여기서 ""이란 말의 헬라 원어는,

 

문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 6:11 손으로 너희에게 이렇게 글자로 것을 보라)

 

성경을 의미하기도 하나,

 

(딤후 3:15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여기서는 학문을 가리킨다.(W.Hendriksen).

 

유대인들의 이와 같은 의문은, 그의 교훈이 권위(權威)있기 때문이었다.

 

( 7:28-29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가르치심에 놀래니

29) 이는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교훈은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 예수님께서 만일 자기는 아무의 제자도 아니라고 하셨더라면,

 

서기관들은 그를 가리켜 속이는 자라고 하였을지 모른다.(Bernard).

 

그러므로 그는, 그를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교훈을 그대로 말한다고 하신다.

 

그는 나면서부터 아는 이라고 하기 보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것을 말씀하시는 이시다.

 

이유는, 그는 하나님 아버지를 계시(啓示)하시기 위하여,

또는 아버지의 뜻을 대언하시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 7: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방법에 관하여 말한다.

방법은, 사람의 지능(知能) 첫째로 하는 것이 아니고 종교 윤리와 관련되어 있다.

 

그의 말씀을 행하려고 하는 자는 말씀이 하나님의 것인 알게 된다.

 

크로솨이데(Grosheide) 말하기를,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의 교훈을 있는 자는 지능의 인물이거나 혹은 통찰력의 소유자가 아니고, 말씀을 행하려는 자라고 하셨다. 영적 지식을 얻는 방법에는 이렇게 종교 윤리적인 것이 먼저 관계 된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이론이 첫째가 아니고 순종이 첫째이다.

 

무디(Moody) 말하기를,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배우는 좋은 학교이다"라고 하였다.

 

 

 

[ 7: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즈안(Zahn),

 

여기 "스스로 말하는 " 것은 때의 불신 유대인을 가리키고,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 것은 예수님을 가리켰다고 하였다.

 

불신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시에 의지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생각하며 말하였다.

그들이 구약 성경을 존중히 하는 듯하며 그것에 기준하여 말하는 듯하면서도, 실상은 그것을 자기들의 사욕을 위하여 그릇 되이 이용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율주의 자들임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시는 처지(보내심을 받은 처지)였으니 만큼,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시는 처지(보내심을 받은 처지) 였으니 만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만 대언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말씀은 참되고 그의 행동 원리에 불의가 없다.

그는 보내심을 받았다는 사명대로 순종하시니, 사실(보내심을 받은 사실) 앞에서 참되시고 불의함이 없다.

 

일반인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생활을 하는 자라면 비교적 참되고 불의함이 없다. 이유는, 그는 마땅히 두려워해야할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히 행하기 때문이다.

 

* 참조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49-50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를 공경함이어늘 너희가 나를 무시하는도다

50) 나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아버지시니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16:32 보라 너희가 각각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참되고 불의가 없는 생활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경건이다.

그것은 예수님과 그를 믿는 사람의 생활이다.

 

그러나 참되지 못하고 불의한 생활(불의로 진리를 막는 생활) 모든 경건치 못한 자들의 것이다.

 

(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 7:19]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 귀절부터 24절까지는,

 

윗절 끝에 말씀하신대로 예수님께서 자기에게는 불의가 없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변증하신다. ,

 

(1) 자기의 반대편인 유대인들 측에 불의가 있다는 .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어겨 가면서,

율법의 예언대로 오신 메시야를 죽이려고 하니, 그것이 불의하다.

 

(2) 예수님께서 안식에 병자를 고치신 (5) 율법을 어김이 아님.

 

만일 그것이 율법의 안식법을 어긴 것이라면, 안식일에 할례를 행하는 그것이,

종교 의식으로서 혹은 사람을 위생적으로 돕는 자비의 일로서 허용된다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것이 자비의 일로서 허용되지 못할 것이 무엇이랴?

 

저것이 정죄되지 않는 , 이것도 정죄되지 않는다.

 

(21-2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 7:20]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 -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독한 미움을 품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저희 마음속에 숨은 악독을 몰랐다.

 

그들은, 도리어 그들의 악을 바로 지적하신 예수님을 미쳤다고 지적하며,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라고 하였다.

 

불신앙은 이렇게 예수님을 모독하는 것이다. 모든 불신앙의 사람들은 무언 중에 예수님을 "귀신 들렸다" 욕하는 자들인 셈이다.

 

 

 

[ 7:21]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이를 인하여 괴이히 여기는도다 - 여기 " 가지 "이란 것은,

 

예수님께서 38 병자를 고쳐 주신 일을 가리킨다.

 

(5:10 유대인들이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괴이히 여긴다"함은, 그들이 불신앙으로 인하여 도리어 놀람을 가리킨다.

 

 

 

[7:22]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주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주느니라 - 할례가 모세의 (구약 율법) 제정되어 있다.

 

만큼 그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실상 모세 이전 부조 시대(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시대)부터 내려온 법이다.

 

( 17:10 너희 남자는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언약이니라,

 

21:4 아들 이삭이 난지 팔일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7:8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

 

유대인은 부득이 하여 안식일에도 법을 지키는 일이 있었다.

, 그들은 난지 8 아들에게 할례를 행하였는데, 8일이 안식일에 해당하면 그것을 날에도 행한 것이었다.(Rabbic Akiba).

 

 

 

[7:23] 모세의 율법을 폐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케 것으로 너희가 나를 노여워하느냐 - 여기 나타난 대조를 해석함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의견들이 있다.

 

(1) 유대인들이 안식일에도 하나의 의식적 제도인 할례를 행한다면, 행치 못하실 이유가 어디 있으랴?

 

(2) 할례는, 의식적(意識的) 의미로 그것을 받는 자의 지체에 축복이 된다.

그러나 38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이적은,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만들었다.

 

(3) 그리고 어떤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할례는, 그것을 받는 자의 지체를 위생적으로 건강하게 하는 정도이지만,

예수님이 38 병자를 고치신 것은, 사람의 몸을 건강하게 하셨다고 한다.

 

(4) 크로솨이데(Grosheide) 점에 있어서,

할례를 위생적 유익에 관계된 일로 생각하지 않고 영적 유익에 관계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해석하기를,

 

"할례는 다만 그것을 받는 자에게만 영적 유익을 주지만, 그리스도께서 38 병자의 몸을 고치신 일은 모든 시대를 통한 교회에 유익을 주는 계시이다"라고 하였다.

(Het Heilige Evangelie Volgens Johannes, Kommentaar I, p.516).

 

 

 

[7:24]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의 판단으로 판단하라 하시니라. -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외모로만 본다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되는 같다.

 

그러나 안식일에 할례 받는 것도 같은 원리이다.

 

저것이 죄라면 이것도 죄이다. 문제는 공정하게 다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