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말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거듭난 삶 2019. 7. 24.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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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 8:31-36]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말에 거하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35)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 8: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말에 거하면 제자가 되고 -

 

"자기를 믿은"이란 말은, 아직 구원 받는데 이를 없는 자들이다.

 

사실은, 여기 나타난대로 그들이 예수님과의 변론에 있어서 여러가지 좋지 못한 언행을 취한 것을 보아서도 알려진다.

 

* 참조 (40 지금 하나님께 들은 진리를 너희에게 말한 사람인 나를 죽이려 하는도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52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말은 사람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59 저희가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 말에 거하면" 이란 말은 계속적으로 신앙함을 가리킨다.

 

 

 

[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

 

"진리" 말은 " 진리" 뜻이니, 유일하신 진리를 가리킨다.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

 

이것은, 철학적인 추상적 진리, , 개념적인 진리가 아니다.

이것은, 예수님 자신을 둘러싸고 계시(啓示) 그의 말씀인 동시에, 예수님 자신으로 구체화 계시이기도 하다.

 

이유는, 36 에서 밝혀 것과 같이, 하나님 아들(예수님 자신) 속죄의 죽으심에 의하여 신자들을 죄악에서 해방시켜 주신다는 뜻이다.

 

그런데, 구절에 있어서 예수님 자신을 "진리"라고 하였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생각된다.

 

예수님을 찾아 만난 결과가 진리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진리와 예수님을 동일체라고도 만하다(14:6).

 

예수님의 모든 언행은 진리이며, 그의 보내신 성령의 하시는 모든 기적적인 역사도 진리이다.

참된 기적은 진리를 지니고 있다. 진리 없는 기적이나 역사(役事) 성령의 것이 아니다.

 

 

 

[ 8:33] 저희가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

 

여기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적이 없거늘"이란 말은, 어떻게 해석될 말씀인가?

 

이것이 영적 의미일 것인가, 육적 의미일 것인가?

문구는 영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것으로 택하실 때에 아브라함을 계약 대상의 머리로 정하셨으니 만큼, 이스라엘 백성의 조상은 아브라함이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이런 전통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말하기를, 남의 종이 적이 없다고 것이다.

 

, 언제나 그들은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섬겨 왔고,

어떤 다른 나라의 () 섬긴 적이 없다고 한다(우상을 섬긴 일이 있었던 이스라엘의 汚點은 잊어버렸음).

 

유대인들이 외식으로 행한 것은 틀렸지만 계약 신관만은 가지노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체계 없이 변동하시는 이가 아니시고, 사람에게 약속하신 대로 일하시며, 이루어 가시며, 그의 택하신 백성을 버리지도 않으신다.

 

신자는 이런 역사적 신관을 가지고, 저런 든든한 구원사관(救援史觀)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리고, 저렇게 계약 사상에 기준하여 교회를 생각해야 된다.

 

교회는, 계약 사상을 배경하고 세상 기관으로서의 방면을 가짐에 있어서 낙관한다. 교회는 아무래도 세상에 있어서 기관으로서의 성격을 띠지 않을 없고, 기관 성격 때문에 세상과 접촉을 가진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계약을 배경하고 있는 것인 만큼, 자체가 포함하고 있는 회원들에게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결성이 불변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과 접촉하여 세상을 이긴다. 이렇게 진정한 교회는 하나님의 계약을 배경하고 성립된다.

 

그러나 땅위에는 계약 성격을 무시하고 취미 본위로 사람끼리의 연락만을 치중하여 나타나는 단체들이 있다.

 

그것은 교회라고 하기보다는 종파(sect)라고 함이 적합하다.

이런 종파들이 있어서는 사람이 사람을 심판하게 되는 경향이 많고, 객관적인 계약(하나님의 말씀) 지배를 필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H. Dooyeweed, A New Critique of Theoretical Thought, III, p. 529).

 

그러면 유대인들이 진심으로 깨닫고 계약신관(契約神觀) 주장하였더라면 진리에 합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그것을 주장함에 있어서 기계적이고 모방적인 점이 잘못된 것이다.

 

 

 

[ 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

 

"죄의 "이란 말은,

 

(1) 범죄하는 자마다 결국 죄의 지배를 받게 되어진다는 뜻과,

(2) 그가 거기서 놓이는 길은 오직 속량함이 되는 밖에 없다는 뜻을 가진다.

 

과연 죄는 무섭다. 그것은, 가장 작은 것이라도 사람을 힘있게 주관하여 망하게 만든다.

 

전에 아일랜드 해역(海域)에서 배가 파선된 일이 있었다. 배를 운전하는 선장도 항해 경험에 능슥한 사람이었다.

 

어느 그가 나침반이 들어 있는 상자를 열고 지남침을 점검하는데, 끝이 조금 떨어져 상자에 떨어졌다. 그것 때문에 지남침의 작용이 잘못되어 결국 방향으로 가다가 파선 당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죄는 작은 것이라도 사람을 주장하여 망하게 한다. 7:23 말하기를,

 

" 지체 속에서 다른 법이 있어 마음의 법과 싸워 지체 속에 있는 죄의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하였다.

 

죄는 사람에게 붙어 있는 가장 악독한 원수이다.

사람이 그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사람을 주장하여 그로 하여금 죄를 범하도록 만든다.

 

* 참조 ( 7:15-20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속에 거하는 죄니라

18)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속에 거하는 죄니라)

 

이렇게 죄는 사람을 사로잡아 망하게 한다.

 

사람을 잡는 무서운 뱀을 하나 잡아 훈련시켰는데, 그의 팔에 챙챙 감겨 머리를 들고 있으면서 사람이 먹을 것을 주면 받아 먹곤 하였다. 그는 날마다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켰다. 번은, 뱀이 그렇게 사람의 팔을 챙챙 감은 다음 그의 팔을 물었으므로 당장 사람이 죽게 되었다고 한다.

 

죄를 심상히 여기며 죄로 더불어 즐기는 자는 결국 이렇게 된다.

 

어떤 써커스(Circus)단에서, 사람이 호랑이의 입에 머리를 넣고 구경을 시키는 순서가 있었다고 한다. 하루는, 그가 머리를 호랑이 입에 넣었을 때에 호랑이가 그의 머리를 깨물었다고 한다.

 

죄를 즐기는 자도 이와 같이 위험한 짓을 하다가 망하는 자와 같다.

종이 속량되어 놓이는 것처럼, 죄인도 속량되어 놓이는 사실에 대하여는 다음 구절들의 해석에서 참조하시라.

 

 

 

[ 8:35-36]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36)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

 

종은, 아브라함의 집의 축복 언약을 누릴 자가 못되고 일시 집에 거하는 것처럼, 구속을 받지 못한 사람,

, 죄의 자는 하나님의 나라 기업을 누리지 못한다.

그는 마침내 택한 백성과 나누일 때가 있다.

 

그러나 아들, ,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 기업을 영원히 누리실 자니,

그가 구속자(救贖者) 자격을 가지셨다.

 

* 참조 ( 4: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4:1-7 내가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4: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5:1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8:1 말하기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범이 되실 아니라,

모든 죄악을 도말하여 없애 주시는 구주님 이시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죄인을 놓아 주시는 자격을 지닌 이유는,

위에 벌써 말한 것과 같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까닭이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만큼,

하나님의 집을 지으신 자시며 또는 집을 맡으신 이로서, 영원히 살아 계시다.

 

( 3:3-6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지은 자가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6) 그리스도는 그의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그를 믿기만 하면,

집에 속하여 영원히 죄의 노예 자리에서 벗어나서 참된 자유를 누릴 있다.

 

세상 나라에 충성하는 이들은, 자기 자신의 희생에 의하여 민족을 위한 육적인 생활에 유익을 준다.

 

그러나 그들이, 사람을 죄악에서 해방시켜 영원히 하나님의 집이 되도록 수는 없다.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이 되도록 하시는 이는, 하나님의 아들밖에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시며 우리가 자유를 얻는다.

만일 사람들이 물질로서 죄중에서 건짐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지구보다 금덩이라도 그들을 위하여 내실 있다.

 

그러나 우리가 물질로는 죄에서 건짐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보다 귀하신 아들을 희생시키셨다.

사람이 죄의 종이 것을 그의 힘으로는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불행을 없애 주실 있다.

 

그리스도께서 38년된 병자에게 찾아 가셔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하시며,

 

그의 고침 받을 소원이 있는 여부를 알아 보셨다.

 

( 5:6 예수께서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해방하신 혜택 아래서는 우리가 확실한 소망을 가진다.

그러므로 3:6 하반절에 말하기를,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하였다.

 

우리는, 애국자의 담대함과 자랑을 안다. 그들은 국가의 소망을 위하여 생명을 초개같이 버린다.

 

그렇다면, 신자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얼마나 영적 소망으로(믿음으로) 담대해야 될까?

 

딤전 4:8 말하기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하였다.

 

이렇게 귀한 축복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비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축복이 오지 않는다.

 

예수님의 구속을 믿지 않는 자는,

곡식이 가득한 창고에서도 굶어 죽는 자와 같다.

 

 

미국 남북 전쟁 때에,

어떤 사람이 말을 타고 가는데 군인이 찾아 와서 말하기를,

 

"나를 살려주세오, 나를 살려주세요!" 하였다.

 

그때에 말탄 사람이 묻기를,

 

" 그러는가?"하니,

 

그는 대답하기를,

 

"나는 도망치는 병정인데 먹을 양식이 없어 그럽니다"라고 하였다.

 

그때에 말탄 사람이 말하기를,

 

" 동네에 들어 가시오"라고 하니,

 

병정은 말하기를,

 

"내가 거기 가면 군인들이 총살할 겁니다"라고 하였다.

 

사람이 말하기를,

 

"지금은 전쟁(停戰) 끝났소"라고 하였다.

 

소식을 들은 병정은 기뻐하며 마을로 들어갔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이시다.

우리는 귀한 소식을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