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골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거듭난 삶 2019. 10. 2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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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포도주

 

요한복음 2 1-11 : 사흘 되던 날에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2) 예수와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3)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4)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5)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 유대인의 결례를 따라 두세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시대를 풍미했던 마릴린 먼로의 고백 중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나는 여성이 지닐 있는 모든 것을 가졌습니다.

나는 젊습니다. 나는 아름답습니다.

나는 돈이 많습니다. 나는 사랑에 굶주리지도 않습니다.

하루에도 수백 통의 레터를 받고 있습니다.".

 

먼로가 위에서 고백한 것에 의하면 그녀의 인생은 부러울 없는 삶의 표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녀가 누렸던 것과 비슷한 행복을 기대하면서 살아갑니다.

빠른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면 행복이 깃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녀의 고백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녀의 고백을 계속 들어보시겠습니까?

 

"그런데 웬일일까요?

나는 이렇게도 공허하고 이렇게도 불행합니다.

이유없는 반항이라는 말도 있지만 나는 이유 없이 불행합니다.".

 

계속된 그녀의 고백은 이렇게 비극적으로 끝나고 맙니다.

 

"나는 인기, 미모, , 명성, 남자, 내가 갖고 싶은 것은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나는 가장 불행한 사람입니다.".

 

말을 남긴 일주일 뒤인 1962 8 5일에 인생 40 되기 전에

엄청난 양의 수면제를 먹은 그녀는 이상 땅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통령까지 그녀의 친구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우상처럼 떠받들고,

소유한 재산도 2억불 정도였던 그녀였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는 가장 불행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렇게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습니까?

여러분은 그녀의 삶에 대해 어떤 결론을 내리시겠습니까?

 

우리 인생에는 행복한 순간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기쁨에 겨워 어쩔 모를 만큼의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1절을 보십시오.

 

"가나에 혼인이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제자들도 혼인에 청함을 받았더니",

 

어떤 순간이 있습니까?

혼인의 기쁜 순간이 있는 것입니다. 잔치 자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영원히 함께 것이라는

결혼의 예식과 기쁨을 나누는 잔치의 순간이 있을 있습니다.

 

고대 근동 지역의 결혼 잔치는 하루 만에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며칠 동안 계속됩니다. 부유 할수록 잔치 기간이 길어집니다.

 

이런 기쁨이 없다면 우리 고달픈 인생 어찌 이겨나가겠습니까?

혼인 잔치의 기쁨뿐이겠습니까?

 

사람의 사랑의 작품인 자녀를 바라보는 기쁨의 순간도 있을 있을 것입니다.

준비하고 계획했던 사업이 예상보다 훨씬 진행될 느끼는 기쁨도 또한 있습니다.

자녀가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 들어가 주는 기쁨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기쁨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기쁨의 연속이기만 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복덩이인 자식이 빗나간 길을 걷게 되는 아픔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음직했던 남편이,

그렇게 아름다웠던 아내가 상상할 없는 길로

점점 걸어가 버리고 마는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3 앞부분만 읽어보실까요?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잔치가 한창 무르익었습니다.

어쩌면 잔치가 하루 이틀 지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객들도 흥이 났습니다. 모두들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기분을 돋구어 주는 포도주가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에는 혼인 잔치의 기쁨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포도주가 모자라 땅의 기쁨이 끝이 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행복의 꿈을 꾸게 되는 순간도 있지만,

난감해서 어쩔 모르는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인생은 누구나 이같은 경험을 합니다.

멋진 인생을 살다가도 어느날 갑자기 다가온 위기 때문에 어쩔 몰라 합니다.

때로 전혀 준비하지 않은 위기를 맞아야 하는 이런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땅의 기쁨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끝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쁨, 그런 행복이 영원한 것인 착각하면서

그것에 매달려 살아갑니다.

 

우리 인생의 즐거움은 '끝이 있는 '입니다.

아무도 이것을 믿고 싶어 하지 않지만 분명한 진리입니다.

 

"중환자실은 마치 폐차장에 쌓여 있는 차들처럼 일그러지고 허물어져가는

병자들로 있었다. 산소 호흡기가 보글보글 거품을 뿜어 내면서

힘겹게 혼수상태의 사람들에게 마지막 숨을 넣어 주고 있었다.

심장의 박동 상태를 알려주는 구석에 있는 모니터도

쓰러져 있는 인간의 마지막 심장 고동을 긴박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깨어진 유리 인형"이라는 글은

대한민국의 최고 일류 고등학교와 S 공대, 과학원을 마치고

그리고 동경대학원에서 공부한 재벌인 B그룹 총수의 맏사위가

사람의 이야기를 적어놓고 있습니다.

 

조금도 부족할 없는 사람,

조만간 그룹 총수직을 승계할 있는 사람이

연이은 번의 자살 시도 끝에 지금은 입속으로 여러 개의 호스가

가득 박혀 중환자실에 누워있었던 것입니다.

 

처음 양화대교에서 검은 강물을 향해 몸을 던지고 실패하자,

과도로 자신의 배를 갈라 검붉은 피가 발견되어 다시 실패한 그는

치료 병원 로비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한 것입니다.

지금은 호흡기를 관장하는 개골의 파열로 쉬는 기능이 마비되어

시체처럼 누워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결코 참된 행복의 조건이 없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거대한 고통과 위기로 우리를 덮쳐오기도 합니다.

 

우리 삶에는 예기치 않은 고통이 찾아들고,

예견하지 못한 위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포도주는 떨어지고 말것이라" 말입니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올 있습니다.

여러분과 저에게, 여러분과 저의 가정에도 닥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위기를 어떻게 맞을 것인가에 관한 교훈입니다.

 

위기를 만날 제일 먼저 해야 일이 있습니다.

3 후반부를 보십시오.

포도주가 없습니다.

마리아가 말합니다.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

 

성도 여러분,

문제를 만나면 제일 먼저 고려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 만나보는 일입니다.

 

간단한 원리입니다.

눈을 어디로 돌리는 것입니까?

다른 곳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에게로 돌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냥 말씀드리십시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님, 포도주가 없습니다" 주님께 보고하십시오.

 

이것 저것 고려해야 한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위기를 만났을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의 성숙도를 감지할 있습니다.

 

평소에는 매우 평온한 성격의 소유자이고, 느긋하고 여유있는 사람인데

문제를 만나면 달라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허둥댑니다. 급해집니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들을 못살게 굽니다.

여기도 좇아가고 저리로도 뛰어다닙니다.

 

여러분, 문제를 만나시면 조용해지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만나십시오.

 

경험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누가 여러분의 문제를 여러분만큼 심각하게 고려해 있습니까?

누가 여러분만큼 밤잠을 설쳐가며 고민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할 대상이라고 말입니다.

믿을 만한 것은 사람이 아닙니다.

 

마리아를 보십시오.

문제가 닥치자 자연스럽게 예수님께 다가갑니다.

그리고는 사태를 보고합니다.

 

"지금 잔치 하는 자리에 포도주가 떨어졌다". 이렇게만 말합니다.

 

여러분 이상의 얘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저것 끄집어 내서 말씀하지 않으셔도 분은 압니다.

짧게 말씀하십시오.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포도주가 필요하다는 아닙니까?

여러분조차 이렇게만 들어도 아는 일을

주님께 복잡하게 말합니까?

 

제가 서울에서 유학할 (지방에서 서울 오면 유학이지요)

부모님께 편지를 가끔 씁니다.

 

언제 쓰죠? 뭐가 필요할 씁니다.

그런데 앞에 인사말이 깁니다.

 

벌써 여름이 지나가려고 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스쳐지나 갑니다. 그간 무고하셨는지요?

 

이렇게 많이 써도 뒤에 무슨 말하려고 하는지,

사실은 편지 쓰는 저도 알고 부모님도 알고 계십니다.

 

마리아는 단순하게 말하지만 대단한 믿음을 가진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복잡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 그냥 아룁니다.

 

우리도 그렇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가장 알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 앞에 드리는 말씀은 복잡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미사여구가 들어가지 않아도 됩니다.

 

심방을 다니면서 가정에 들렀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과일을 먹게 되었습니다.

제가 함께 분에게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왜냐하면 혼자 기도하면 되는데 누구 앞에서 하려면 입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기도는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잡한 격식을 갖추어야 기도가 제대로 기도라고 자꾸만 생각합니다.

기도란 단순할수록, 솔직하게 말씀드릴수록 신선한 맛이 있습니다.

 

"역사와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

 

그렇게 불러야 기도가 되는 것만은 아닙니다.

지금 과일을 두고 역사를 구태여 찾을 필요까지 있습니까?

간단하게 주님께 말씀드리십시오.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마리아를 본받으십시오.

 

문제를 만나고 계십니까?

솔직하게 숨김없이 여러분의 말을 주님께 드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단순할수록 힘이 있습니다.

 

그런데 얘기를 들은 예수님의 태도가 어색합니다.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나에게 그것을 요청하느냐고 되물으신 것입니다.

아직 자신을 드러낼 때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을 들은 마리아가 이해가 되는 말을 합니다.

 

"하인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번째 교훈입니다.

 

위기를 만났을 우리의 번째 태도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하라",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냥 내버려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로마서 8 32절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실 분이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위기에서 벗어나는 길이

주님께 있다는 사실을 전혀 기대하지 않는데 있습니다.

 

분명히 주실 있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포도주가 없다고 간단하게 아뢰었지만,

마음에는 예수님을 깊이 신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분명히 무엇을 하실 있을 것이라고 마음에 확신한 것입니다.

 

이런 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를 위해 무엇인가를 이루실 주님을 기대하고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마리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알았습니다.

무엇인가가 주님으로부터 나올 기대하고 있었던 여인이었습니다.

 

믿음이란 주님께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무엇이든지 주님으로 말미암아 해결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기대하지 않고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대하지도 않는 것을 어찌 주님께서 이루시겠습니까?

 

하인에게 하는 마리아의 말을 다시 보십시다.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어떤 말씀을 하셔도 주님의 말씀은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마리아는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혹시 엉뚱한 얘기라 해도, 내가 예상한 방법이 아니라고 해도

그것은 분명히 문제 해결과 위기를 벗어날 있게 하는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마리아는 알았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무슨 말을 우리에게 전하시면 그것이 우리를 위한

주님의 귀한 계획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기대와 확신은 우리로 하여금 문제의 벽을 넘어갈 있게 만들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읽어 보십시오. 그리고 기대와 확신에서 흔들리지 마십시오.

 

마리아의 다음에 이어진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마리아의 기대가 그대로 실현되고 있습니다.

7절과 8절입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예수님께서 무엇인가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기대가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믿음은 이렇듯 구체적 사건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은 하인들의 반응이 번째 가르침입니다.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무슨 가르침 같습니까?

너무 많이 들은 가르침 아닙니까?

만일 제가 순종이라 말씀드리면 너무 식상하시죠?

 

"말씀하시는대로 하라" 가르침입니다.

 

말씀하시는대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는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나의 생각은 줄이면 줄일수록 좋습니다.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동행해 주라" 말씀을 그냥 따르시면 됩니다.

 

오른 뺨을 치거든 왼쪽도 돌려대십시오.

채우라 하신즉 채우고,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는 하인들의 믿음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하라면 하는 것이 복됩니다.

나보다 아는 분이 하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빠른 길이고 확실한 길입니다.

 

우리는 말이 되는 지시만 따라가려고 합니다.

혹시라도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떻게 하실 같습니까?

 

아니 갑자기 손과 씻을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니 그건 무슨 말입니까?

지금 모자라는 것은 포도주지 물이 아니지 않습니까?

모자라는 것이 포도주라면 포도주 얘기를 해야지 설득력있는 아닙니까?

삼척동자도 있는 그런 것을 어찌 다르게 말한단 말입니까?

 

이것뿐입니까?

아닙니다.

 

이번에는 어디까지 말씀하십니까?

 

그것을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까지 말합니다.

 

아니 갖다 주었다가 무슨 들을지 뻔한 아닙니까?

" 물이냐"고들 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리 엉뚱한 말씀만 하시는 것입니까?

 

순종은 순종할 없는 것들을 순종할수록 대단한 순종입니다.

순종할 만한 것만 순종한다면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런 순종이 있어야 바뀌어지는 기적을 맛보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아람 왕의 사랑을 받는 유명한 용사였지만 문둥병이 심했습니다.

오죽했으면 이스라엘까지 와서 치료받으려고 했을까요?

 

그런데 엘리사에게 왔더니 나와 보지도 않고 종을 보내어 엉뚱한 소리만 합니다.

 

그가 속으로 말합니다.

 

"마땅히 나에게 나와서 환처에 손을 얹고 그가 믿는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하는 아니냐"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씻으라는 말만 하는 것입니다.

화가 났습니다.

다메섹 아마나와 바르발이 훨씬 깨끗한 물이라고

분한 모습으로 그냥 되돌아 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종들이 가나의 혼인잔치에서처럼

하인들이 "엘리사의 말을 그대로 들어서 손해 것이 어디 있겠냐" 말해줍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그는 요단 강물에 몸을 담구기 시작했습니다.

번입니까? 일곱 번입니다.

한번 계속했는데도 변화가 없습니다.

 

이럴 순종이 쉽습니까?

아닙니다. 포기할 만한 정도였을 거예요.

 

그렇지만 일곱 담구라면 일곱 담구어야 변화가 있을 있습니다.

한번만 해도 될텐데 일곱 번이냐고 말한다면

문둥병이 사라지는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엉뚱한 말이라고 말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엉뚱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따라하지 않겠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엉뚱할수록 따라 보십시오.

그저 시키시는대로 보십시오.

 

하라는대로 하는 삶은 가장 비참한 같지만

전혀 기대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다 줍니다.

 

옛날 중국 한나라의 재상을 지낸 장량이라는 사람이 젊은 시절에

나라가 진시황에게 망하고 집안이 몰락하자 진시황을 암살하려 하다가

실패하고 숨어지내는 신세가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날 마을 밖의 다리를 지나다가 초라한 노인과 마주쳤습니다.

장량을 노인이 갑자기 자기 신발을 벗더니 다리 아래 던지고서 하는 말이

 

"가서 집어 오너라" 하는 것입니다.

 

장량은 기가 막히고 울화가 치밀었지만 참고 신발을 주워오니

이번에는 "신기라" 발을 내미는 것입니다.

 

장량은 아무 말없이 무릎을 꿇고 신발을 신겼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너는 쓸만한 데가 있구나".

하고는 실험하고는 태공망 여상이라는 사람이 지은

세상에 둘도 없는 병법책을 그에게 주고는 사라졌습니다.

 

책으로 열심히 공부한 장량은 십년 유방 장군을 도와

진나라를 멸망시킨 한나라를 세우는데 커다란 공을 세운 것입니다.

 

순종은 겸손함과 인내, 끈기를 갖추지 않으면 이루어 없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결과는 엄청납니다.

 

하인들이 예수님의 그대로 물을 갖다 주었습니다.

, 이제 어떤 일이 생깁니까?

 

번째입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연회장은 물로 포도주를 "보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물을 갖다 주었는데 마실 보니까 포도주가 것입니다.

변화되었습니다. 바뀌어졌습니다.

끝까지 순종하면서 지켜보면 변화는 반드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변화를 시키시면 엄청난 변화가 됩니다.

 

항아리 여섯에 채운 양은 지금으로 계산한다면 최소한 160-180갤런 정도입니다.

얼마나 엄청난 양입니까? 얼마나 풍부합니까?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시는 기적은 겨우 1-2 갤런정도가 아닙니다.

누가 어느 잔치에 포도주를 170갤런을 내놓겠습니까?

 

주님의 기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주님 말씀만 들으면 우리는 엄청난 삶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번째 생긴 일은 무엇입니까?

10절입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주님 말씀 그대로 하면 물이 포도주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 좋은 포도주"라고 놀라는 일이 생깁니다.

 

양만 엄청난 것이 아닙니다.

질도 대단한 것입니다.

좋은 포도주입니다.

 

사람들은 속입니다. 처음만 좋은 것을 공급합니다.

사과를 박스채 구입하면 위에는 그럴듯한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밑으로 내려가면 색깔도 시원찮고 크기도 줄어듭니다.

심지어 썩은 것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일으키시는 변화는 다릅니다.

처음보다 아름다운 것들이 일어납니다.

 

좋은 포도주는 끝나지 않는 기쁨을 우리에게 가져다 줍니다.

세상 것처럼 모두 끝나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기쁨, 좋은 포도주를 주님을 통해 찾아 보십시오.

그래야 우리 인생이 허무함에 빠지지 않습니다.

날아가 버리고 기쁨에 도취되어 살지 않을 있습니다.

 

주님께서 보이신 기적의 의미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땅에서 마실 포도주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 "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 좋은 포도주" 있습니다.

땅에서 발견하는 끝나버릴 기쁨의 포도주가 아닌,

질적으로 달라진 포도주를 우리는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믿으십니까?

그리고 진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있다고 기대하면서 신뢰하십니까?

주님께서 여러분에게도 기적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확신하십니까?

 

우리 아이들이 즐겨부르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됐네

예수님 예수님 나에게도 말씀하셔서

새롭게 새롭게 변화시켜 주소서.".

 

예수님께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시면 들으시겠습니까?

말이 안되고 엉뚱한 같아도 말씀하시면 들어보시겠습니까?

순종하시면서 끝까지 해보시겠습니까?

 

이런 기적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있습니다.

우리도 순종하면 좋은 포도주의 삶을 있는 것을 믿으십시요.

좋은 포도주의 삶을 살며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오는 1025 광화문 '이승만 광장'의 집회에 참여를 독려합니다

 혹여 참여를 못하시더라도 헌금으로 후원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