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engol 2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거듭난 삶 2021. 8. 2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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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감사기도

 

성 경: [삼하 7:18-21]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19)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영구히 이를 일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주 여호와여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

20) 주 여호와는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21) 주의 말씀을 인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삼하 7:18]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여호와 앞에 - 이 말은 하나님의 궤를 안치해 둔 장막 앞을 가리킨다.

 

(6:17 그들이 주의 궤를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성막의 한가운데 곧 그것을 놓을 자리에 두매 다윗이 번제 헌물과 화평 헌물을 주 앞에 드리니라)

 

아마도 회막(tabernacle)으로 친다면 그 앞의 바깥뜰에

해당할 것이다(Pulpit Commentary).

 

(27:9-19 너는 성막의 뜰을 만들되 뜰을 위해 남쪽을 향한 남쪽 면에 가늘게 꼰 아마 실로 한 면의 길이가 백 큐빗 되는 현수막들을 달고

10) 그것들의 기둥 스무 개와 기둥들의 밑받침 스무 개는 놋으로 만들며 그 기둥들의 갈고리들과 띠들은 은으로 만들고

11) 북쪽 면에도 마찬가지로 길이 방향으로 길이가 백 큐빗 되는 현수막들을 달되 그것의 기둥 스무 개와 기둥들의 밑받침 스무 개는 놋으로 만들며 그 기둥들의 갈고리들과 띠들은 은으로 만들지니라.

12) 서쪽 면에 뜰의 너비에 오십 큐빗의 현수막들을 달되 그것들의 기둥이 열 개, 그것들의 밑받침이 열 개가 되게 하며

13) 동쪽을 향한 동쪽 면에서 뜰의 너비는 오십 큐빗이 되게 할지니라.

14) 문 이편의 현수막들이 십오 큐빗이며 그것들의 기둥이 세 개, 밑받침이 세 개가 될 것이요,

15) 저편에 현수막들이 십오 큐빗이며 그것들의 기둥이 세 개, 밑받침이 세 개가 될 것이니라.

16) 뜰 문에 청색과 자주색과 주홍색 실과 가늘게 꼰 아마 실로 바느질을 해서 만든 이십 큐빗의 현수막이 있을 터인데 그것들의 기둥이 네 개, 그것들의 밑받침이 네 개이며

17) 뜰 둘레의 모든 기둥은 은으로 띠를 두르고 그것들의 갈고리들은 은으로, 그것들의 밑받침들은 놋으로 만들지니라.

18) 뜰의 길이는 백 큐빗, 너비는 어디나 오십 큐빗, 높이는 가는 아마 실로 꼬아 만들어 오 큐빗으로 하며 그것들의 밑받침들은 놋으로 만들고

19) 성막에서 섬길 때 쓰는 성막의 모든 기구와 성막의 말뚝들과 뜰의 말뚝들을 다 놋으로 만들지니라)

 

앉아서 - 이 말은 다윗이 하나님의 궤 앞에서 반드시 앉아서

기도했음을 중명해 주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1) 유대인들은 좀처럼 앉아서 기도하지 않았으며,

 

(왕상 8:22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온 회중 앞에서 주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해 자기의 두 손을 내밀고;

 

8:4 서기관 에스라가 그들이 강단으로 쓰려고 만든 나무 강단에 서매 그의 오른편에는 맛디디야와 스마와 아나야와 우리야와 힐기야와 마아세야가 섰고 그의 왼편에는 브다야와 미사엘과 말기야와 하숨과 하스밧다나와 스가랴와 므술람이 섰더라;

 

9:4 그때에 레위 사람들 중에서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세바냐와 분니와 세레비야와 바니와 그나니는 계단에 서서 큰 소리로 주 자기들의 하나님께 부르짖고),

 

(2)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솨브'도 반드시 '앉아 있다'

뜻이 아니라 '머물러 있다', '지체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의 기도 '자세'를 묘사하는 말이 아니라

다윗이 시간을 내어 기도한 '행위' 자체를

묘사하고 있는 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Lange, Wycliffe).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 다윗은 그의 기도 첫 마디에서

위대하신 여호와 하나님과 비천한 자신을 대조시키고 있다.

이와 같은 그의 대조적인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놀라운 약속이 자기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과분한 은혜와 축복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는 마음 자세에서 나온 것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에서 다윗의 기도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과 감사로 시작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32: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보여 주신 모든 긍휼과 모든 진리 중 가장 작은 것도 감당할 수 없사오니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르단을 건넜으나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8:5 주께서 그를 천사들보다 조금 낮게 만드시고 그에게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144:3 주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나이까! 혹은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중히 여기시나이까!).

 

 

 

[삼하 7:19]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영구히 이를 일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주 여호와여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 여기서 '이것'이란,

곧 이어 나오는 '영구히 이를 일'과 대조되는 것으로

다윗과 그 가정이 현재 누리고 있는 복을 의미한다.

 

, 다윗은 여기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베푸신 현재의 복도

감당하기 어려운 데 거기에다가 미래에 대한 더 큰 보장까지

해주신 데 대해 크게 감격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일 - 이에 해당하는 '레메라호크''미래에 관한 일'이란 뜻이다.

원래 이 말의 기본 뜻은 시간적,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규례대로 하셨나이다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조트 토라트 하아담'은 직역하면,

'이는 인간의 율례입니다'이다.

 

그러나 이 말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간에 다음과 같이 해석이 분분하다.

 

(1) '토라'를 율례로 보지 않고 '교훈'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따라서 이 견해에 따르면,

이 말은 '주 여호와여, 인간이 그 이웃에게 교훈을 하듯이

당신의 원대한 뜻을 깨닫게 하셨나이다'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성경에서 '토라'가 교훈이란 의미로 사용된 적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이 견해는 옳지 않다.

 

(2) '토라'를 인간의 도리, 또는 관습으로 보는 견해이다.

이 견해에 따르면,

이 말은 '주 여호와여 당신은 사람의 도리, 즉 사람이 자기 후손의 장래를

축복하듯 나와 내 가문에 축복을 베푸셨나이다'라는 뜻이 된다(Clericus).

 

(3) 본 구절을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은 전 인류를 지배할 명령입니다'라고

해석하는 견해이다(Pulpit Commentary, Vulgate).

 

그러나 이는 전체 문맥과는 약간 동떨어진

주관적인 해석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4) '토라'를 구약 성경에서 대개 그러하듯

하나님의 율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이다.

 

그럴 경우 여기서의 '토라''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인간 상호간의 규례로 보아야 한다(Keil, Hengstenberg).

 

(19:18 너는 원수를 갚지 말고 네 백성의 자녀들에게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주니라;

 

6:8 오 사람아, 그분께서 선한 것을 네게 보이셨나니 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의롭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따라서 이 견해에 의하면, 본 구절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규례에 따라

한 인간이 이웃에게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 줌과 같이

주 여호와께서 나에게 극진한 사랑과 친절을 베푸셨나이다'라는 뜻이 된다(Lange).

 

이상에서 본 구절의 전후 문맥과 비교적 일치되는 견해는

(2)(4)이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평행 구절인 대상 17:17에 의거할 때,

 

(대상 17:17) 오 하나님이여, 이것은 주의 눈에 오히려 작은 일이었으니 주께서는 먼 장래에 있을 주의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셨으며, 오 주 하나님이여, 또 나를 높은 지위를 지닌 자같이 중히 여기셨나이다)

 

보다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견해는

(4)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삼하 7:20] 주 여호와는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

 

다윗은 그 마음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벅찬 감사를

도저히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깊은 감사의 마음을

말로 나타내기 보다는 자신의 속마음까지도 아시는

하나님의 전지(全知)하신 속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139:1-4 오 주여, 주께서 나를 살피시고 나를 아셨나이다.

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이해하시오며

3) 나의 행로와 나의 눕는 것을 둘러싸시므로 나의 모든 길을 익히 아시오니

4) 보소서, 오 주여, 내 혀의 말 중에 주께서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나이다;

 

21:17 세 번째 그에게 이르시되,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그분께서 자기에게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말씀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며 그분께 이르되, 주여,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 양들을 먹이라).

 

 

[삼하 7:21] 주의 말씀을 인하여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

 

이 모든 큰 일 - 여기에서 '이 모든 큰 일'이란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계시'를 의미한다.

 

(4-17 그 밤에 주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가서 내 종 다윗에게 고하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나를 위해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겠느냐?

6)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때부터 심지어 이 날까지 아무 집에도 거하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걸었나니

7) 내가 온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걸은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 어느 지파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해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느냐, 하고 한 마디라도 말하였느냐?

8) 그런즉 이제 너는 내 종 다윗에게 이같이 이르라.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너를 양 우리에서 곧 양들을 따르는 일에서 취하여 내 백성 즉 이스라엘을 다스릴 치리자로 삼았고

9) 네가 어디를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네 모든 원수를 네 눈앞에서 멸하였으며 땅에 있는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은 위대한 이름을 네게 만들어 주었노라.

10) 또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한 처소를 정하고 그들을 심으리니 이로써 그들이 자기 처소에 거하며 다시는 움직이지 아니하리라. 또 사악한 자손들이 다시는 예전과 같이

11) 또 전에 내가 재판관들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고 또 너로 하여금 네 모든 원수로부터 벗어나 안식하게 하던 때 이후와 같이 그들을 괴롭히지 못하리라. 또한 주가 네게 그가 너를 위해 집을 세우리라고 말하노라.

12) 네 날들이 차서 네가 네 조상들과 함께 잘 때에 내가 네 배 속에서 나올 자 곧 네 뒤를 이을 네 씨를 세우고 그의 왕국을 굳게 세우리니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해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왕국의 왕좌를 영원토록 굳게 세우리라.

14)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만일 그가 불법을 행하면 내가 사람들의 막대기와 사람들의 자녀들의 채찍으로 그에게 벌을 주리라.

15) 그러나 내가 네 앞에서 물리친 사울에게서 내 긍휼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 그것을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굳게 서고 네 왕좌가 영원히 굳게 서리라, 하라.

17) 나단이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환상 계시대로 그렇게 다윗에게 말하니라)

 

그런데 이 계시를 '큰 일'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계시가

 

(1) 시공간(視空間)을 초월한 하나님의 우주적(宇宙的)인 계획을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며

 

(2) 또한 다윗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베푸신 큰 은혜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