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정복 전쟁
성 경: [삼하 8:1-3] 이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 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3) 르흡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쳐서
[삼하 8:1] 이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 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 이후에 - 우리는 이 말을 보는 순간 본장의 다윗의 정복 사업(征服事業)이
7장에 언급된 다윗 언약 이후에 일어난 일인 줄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경우에는 다윗이 모든 대적을 파한 후
평안히 궁에 거했을 때 다윗 언약을 받았다고 한 7:1에 혼란이 따르게 된다.
(7:1 주께서 왕에게 안식을 주시고 사방의 모든 원수로부터 벗어나게 하사 왕이 자기 집에 앉아 있을 때에)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이후에'란 용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와예히 아하레 켄'이 반드시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의미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용어는 서로 다른 두 내용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단순 접속어로 많이 사용되었다.
(2:1 이 일 후에 다윗이 주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유다의 도시들 가운데 하나로 올라가리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올라가라, 하시니 다윗이 이르되, 내가 어디로 가리이까? 하매 그분께서 이르시되, 헤브론으로 갈지니라, 하시니라;
10:1 이 일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그를 대신하여 통치하니라;
13:1 이 일 후에 이러한 일이 있었더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녀를 사랑하나;
15:1 이 일 후에 압살롬이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말들과 자기 앞에 달려갈 자 오십 명을 예비하니라;
삿 16:4 그 뒤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는 이름의 여인을 사랑하매;
대상 18:1 이제 이 일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정복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가드와 그것의 고을들을 빼앗았으며;
19:1 이제 이 일 후에 암몬 자손의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이 그를 대신하여 통치하니라;
대하 20:1 이 일 뒤에 또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이 암몬 족속 외에 다른 사람들과 함께 와서 여호사밧을 치며 싸우려 하므로).
그러므로 이 용어는 여기서 내용 전개가 서로 다른 두 기사(記事)를
연결시키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다윗이 다윗 언약을 받은 때는 본장에서와 같은 정복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난 다윗 통치 말기의 일임을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이다.
(7:1 주께서 왕에게 안식을 주시고 사방의 모든 원수로부터 벗어나게 하사 왕이 자기 집에 앉아 있을 때에)
한편, 혹자들은 본장에 기록된 다윗의 정복 사업은 5장에 이미
언급한 바 있는 예루살렘 정복 사건 이후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Payne, J. W.Wevers).
▶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 여기에서 '메덱암마'는
어느 한 지명(地名)을 의미하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속한
여러 성읍들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메덱암마'(Metheg-ammah)란 '어머니의 굴레'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즉,
(1) 고대근동 지방에서는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켜
'어머니'라고 불렀다(Keil, Lange,Gesenius).
또한 성경에서도 한 나라의 수도의 통치를 받는 주변 성읍들을
그 수도의 '딸들'이라고 기록하였다.
(수 15:45 에그론과 그것의 고을들과 마을들과,
47 아스돗과 그것의 고을들과 마을들과 가자와 그것의 고을들과 마을들이니 곧 이집트의 강과 대해와 그것의 경계에 이르기까지더라).
이렇게 볼 때 '어머니'란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블레셋 사람들의
다섯 성읍 중 주도권을 장악했던 '가드'(Gath)를 가리킴에 틀림없다.
(삼상 27:2 다윗이 일어나서 자기와 함께 있던 육백 명과 함께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
5 다윗이 아기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당신의 눈에 은혜를 입었거든 그들이 지방에 있는 고을에서 한 처소를 내게 주게 하여 내가 거기 거하게 하소서. 당신의 종이 어찌 당신과 함께 왕의 도시에 거하리이까? 하니;
29:2-4 블레셋 사람들의 영주들은 수백 명씩 수천 명씩 나아가되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아기스와 함께 후위대에서 나아갔더니
3) 그때에 블레셋 사람들의 통치자들이 이르되, 이 히브리 사람들이 여기서 무엇을 하나이까? 하매 아기스가 블레셋 사람들의 통치자들에게 이르되, 이 사람은 이스라엘 왕 사울의 신하 다윗이 아니냐? 그가 나와 함께 이 여러 날 혹은 이 여러 해 동안 있었으되 그가 내게로 넘어온 날부터 이 날까지 내가 그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였노라, 하니
4) 블레셋 사람들의 통치자들이 그에게 노하니라. 블레셋 사람들의 통치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이 자를 돌려보내어 그가 왕이 그를 위해 정해 준 그의 처소로 다시 가게 하소서. 그가 우리와 함께 싸움터에 내려가게 하지 말지니 그가 싸움터에서 우리의 대적이 될까 염려하나이다. 그가 무엇으로 자기 주인과 화해하리이까? 이 사람들의 머리가 아니니이까?,
6-7 이에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주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거니와 분명히 네가 올바르며 내게 온 날부터 이 날까지 내가 네게서 악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네가 나와 함께 군대 안에서 나가고 들어오는 것이 내 눈앞에서는 좋게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주들이 네게 호감을 갖지 아니하니
7) 그런즉 이제 너는 돌이켜 평안히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영주들을 노엽게 하지 말라, 하니라).
(2) 그리고 여기서 '굴레'라는 말은
누구에겐가 종속(從屬)된 상태를 의미한다(Gesenius).
따라서 이 말은 가드에 종속된 블레셋의
네 성읍들(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Wycliffe)
(수 13:3 즉 이집트 앞의 시홀에서부터 가나안 족속에게 속한 북쪽의 에그론의 경계까지와 블레셋 사람들의 다섯 영주 곧 가자 사람과 아스돗 사람과 에스갈론 사람과 가드 사람과 에그론 사람과 또 아비 사람의 땅과)
이상과 같은 사실에 의거할 때 결론적으로 다윗이
메덱암마를 빼앗았다는 말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연맹 도시들,
즉 수도인 가드와 나머지 네 성읍 모두를 빼앗았다는 의미라고 하겠다.
(대상 18:1 이제 이 일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정복하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가드와 그것의 고을들을 빼앗았으며).
따라서 이날의 다윗의 승리는 블레셋에 대한 완전한 승리였음을 알 수 있다.
[삼하 8: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 모압 - 사해 동쪽에 위치했던 모압(Moab)은
이스라엘과는 비교적 좋은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신 2:9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압 족속을 괴롭히지 말고 그들과 전쟁하며 싸우지도 말라. 내가 그들의 땅을 네게 소유로 주지 아니하리니 내가 아르를 롯 자손에게 소유로 주었느니라;
룻 1:1 이제 재판관들이 다스리던 때에 땅에 기근이 드니라. 베들레헴유다의 어떤 사람이 자기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머물렀는데)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을 때
그에게 큰 친절을 베푼 나라이기도 하다.
(삼상 22:3-4 다윗이 거기서 모압의 미스바로 나아가 모압 왕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시려는지 내가 알 때까지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소서, 하고
4) 그들을 모압 왕 앞으로 데려갔더니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그들이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그런데 다윗이 이러한 나라를 정복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다스린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이후 다윗을 알지 못하는 자가 모압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
다윗과 이스라엘을 크게 위협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Lange, Leon Wood).
아무튼 이처럼 다윗이 모압을 정복하고 그들을 조공국으로 삼은 것은
발람의 예언이 성취된 사건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민 24:17 내가 그를 볼 터이나 지금 보지 아니하며 내가 그를 바라볼 터이나 가까이서 보지 아니하리로다. 야곱에게서 한 별이 나오며 이스라엘에게서 한 홀(笏)이 일어나서 모압의 구석구석을 치고 셋의 모든 자녀들을 멸하리로다)
▶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 여기서
다윗이 죽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장정(壯丁)을 가리킨다.
그리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주로 소년과 노약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다윗은 싸움에 임할 수 없는 자들은 살려 주고
대신 싸움에 임할 수 있는 자들만을 죽임으로써
모압 사람들의 씨를 말리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다윗이 모압 사람 2/3는 죽이고 1/3은 살려 주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Keil & Delitzsch, Matthew Henry).
한편 유대 전승(Midrash)은 이러한 다윗의 행위를 가리켜
정당한 복수였다고 주장한다.
즉 과거 다윗이 도피 생활 중에 있을 때 자기 부모를
모압 왕에게 의탁한 적이 있는데,
(삼상 22:3-4 다윗이 거기서 모압의 미스바로 나아가 모압 왕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시려는지 내가 알 때까지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와서 당신들과 함께 있게 하소서, 하고
4) 그들을 모압 왕 앞으로 데려갔더니 다윗이 요새에 있을 동안에 그들이 모압 왕과 함께 있었더라)
그때 저들이 다윗의 부모를 살해하였으므로 이제 다윗이
그 원한을 갚은 것이라 한다.
(Keil, Pulpit Commentary, 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485).
그러나 이는 성경적 근거가 없는 전승에 불과하므로 그 사실성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삼하 8:3] 르흡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쳐서
▶ 소바 - 소바(Zobah)는 다메섹 북쪽과 레바논 산지의 동쪽에 위치했던
아람 소국(小國)이다.
다윗의 통일 이스라엘 왕국 당시 아람인들은
강력한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개의 소국가로 분립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 가장 강력했던 소국이 바로 소바로서
그 영향력은 유브라데 강 유역에까지 뻗쳐 있었다.
즉 당시 소바는 요단동편과 수리아의 통치권을 놓고
이스라엘과 다툴 정도로 최 강적이었다.
때문에 소바는 사울, 다윗,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자주 접전하였다.
(10:16-18 하달에셀이 사람을 보내어 강 건너에 있던 시리아 사람들을 데려오매 그들이 헬람에 이르렀고 하달에셀의 군대 대장 소박이 그들보다 앞서 갔더라.
17) 어떤 이가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함께 모으고 요르단을 건너 헬람에 이르니라. 시리아 사람들이 다윗을 향해 전열을 갖추고 그와 싸웠는데
18) 시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하므로 다윗이 시리아 사람들의 병거 칠백 대의 사람들과 기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그들의 군대 대장 소박을 치매 그가 거기서 죽으니라;
삼상 14:47 이와 같이 사울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권을 취한 뒤에 사방에 있던 자기의 모든 원수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과 싸웠더라. 그가 몸을 돌이키는 모든 곳에서 그들을 괴롭게 하였으며;
왕상 11:23-24 하나님께서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그에게 또 다른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자기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더라.
24) 다윗이 소바 사람들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모으고 한 무리의 대장이 되었으며 그들이 다마스커스로 가서 그 안에 거하고 다마스커스에서 통치하니라;
대하 8:3 솔로몬이 하맛소바에 가서 그곳을 쳐서 이기고).
▶ 하닷에셀 - 소바 왕 하닷에셀(Hadadezer)의 이름의 뜻은 '도움은 하닷이시다'이다.
그런데 '하닷'(Hadad)은 당시 수리아의 태양신의 이름이었으니
우리는 그가 이방 신을 숭배하던 자였음을 알 수 있다.
▶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 본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때문에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세우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 삼상 14:47에 의하면,
소바 왕이 사울 왕과 싸워 패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때 잃은 지역을 회복하기 위하여 그가 다윗에게 도전했다는 견해이다.
(Bunsen, Ewald, Lange).
그러나 이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사울 왕의 말기(末期)에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극도로 쇠약해져 블레셋군에게 위협 당하는 입장이었는데,
* 참조 ; (삼상 28-31장),
소바 왕이 그때를 놓치고 다윗 왕 때에 비로소 그 잃은 지역을
회복하려 했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이 가지않기 때문이다.
(2) 본구절의 주어를 하닷에셀이 아닌 다윗으로 보는 견해이다(Keil &Delitzsch).
즉, 다윗은 과거 하닷에셀에게 빼앗겼던 유브라데 강 지역을
회복하기 위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 또한 다윗이 이전에 유브라데 강 지역을
한번이라도 장악했던 사실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옳지 않다.
(3) 자기의 동맹군이 다윗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수치를 느낀
하닷에셀이 제 2차로 군사를 모집하여 다윗에게
도전한 것이라는 견해이다(Keil, Leon Wood).
그런데 이 견해는 같은 사건을 보다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는 10장의 기록과 부합된다.
즉 거기에 보면, 암몬 자손이 다윗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람 소국들과 동맹한 사실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동맹군은 다윗 앞에서 패주하였고 그 동맹군 중
가장 강력한 나라인 소바 왕 하닷에셀은 수치를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군대를 재정비하여 다윗에게 도전하러 나아왔던 것이다.
(10:15-17 시리아 사람들이 자기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패한 것을 보고 다 함께 모이니라.
16) 하달에셀이 사람을 보내어 강 건너에 있던 시리아 사람들을 데려오매 그들이 헬람에 이르렀고 하달에셀의 군대 대장 소박이 그들보다 앞서 갔더라.
17) 어떤 이가 다윗에게 고하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함께 모으고 요르단을 건너 헬람에 이르니라. 시리아 사람들이 다윗을 향해 전열을 갖추고 그와 싸웠는데).
'Edengol 2'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저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을 (0) | 2021.09.02 |
---|---|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의 가진 금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0) | 2021.09.01 |
주의 은혜로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0) | 2021.08.30 |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오며 내 집은 무엇이관대 나로 이에 이르게 하셨나이까 (0) | 2021.08.29 |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0) | 2021.08.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