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영과 심판
이사야서 2장 6-11절 : 그러므로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의 집을 버리셨나이다. 그들에게는 동쪽에서 온 것들이 가득하며 그들은 블레셋 사람들같이 점쟁이가 되고 낯선 자들의 자손들 가운데서 자신을 기쁘게 하나이다.
7) 그들의 땅에는 또한 은과 금이 가득하여 그들의 보물은 끝이 없고 그들의 땅에는 또한 말이 가득하여 그들의 병거가 끝이 없으며
8) 그들의 땅에는 또한 우상이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만든 것 즉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에게 경배하고
9) 천한 자도 절하며 큰 자도 몸을 굽히니 그러므로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10) 주의 두려움과 그분의 위엄의 영광으로 인하여 바위 속으로 들어가고 티끌 속에 숨을지니라.
11) 그 날에 사람의 거만한 모습이 낮아지며 사람들의 오만함이 고개를 숙이고 주만 홀로 높여지리라.(한글 KJV)
이사야서 2장은 세계 평화의 꿈으로써 시작하여,
세계 재판 집행의 전달로써 끝난다.
마치 청천백일로써 시작한 날이 대폭풍우로써 끝남과 같다.
희망으로써 시작하여 실망으로써 끝남과 같다.
그리고 그런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폭풍전의 평온은 기상학 상 흔히 있는 일이다.
또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대 전쟁이 시작하기 전에,
평화 번영이 널리 세상에 파급(보급)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생은 평화와 전쟁이다.
정지와 활동이다.
전쟁 후에 평화가 오듯이,
평화 후에 전쟁이 온다.
같은 이사야서 21장 11절에 말하기를
‘척후(a watch)여, 밤은 어느 때 쯤 되었는가,
척후여, 밤은 어느 때 쯤 되었는가,
척후는 대답하여 이르기를, 아침이 오고 밤도 오리라고’(일역)
밤이 밝으면 아침이 온다.
하지만 아침은 영구히 계속되지 않는다.
아침 후에 또 밤이 온다는 것이다.
평범한 것을 말하는 듯하지만,
그러나 평범하면서 평범하지 않다.
그 속에 커다란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
인생전부가 구원의 도정이다.
평화가 있고 재판이 있고서 구원은 완성되는 것이다.
‘시온은 공평으로 구속이 되고 그 귀정한 자는 의로 구속되리라’(1:27)고
있음은 이것이다.
정의가 있는 곳에 재판은 면치 못한다.
정의로써 구속된다는 것은 재판으로써 구원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평화실현의 약속 후에
재판집행의 표지가 기재되어 있다고 해서 결코 이상할 것 없다.
비평가가 이사야서 제 2장을
전후의 관계가 없는 기사의 점철(꾸며 맞춤)이라고 함은 당치 않은 일이다.
제 5절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는 것은
평화를 재판에 연결하는 말이다.
평화의 약속에 간해서 말하면 장려의 말이다.
재판의 예고에 관해서 말하면 경고의 말이다.
꽃 피는 들을 거니는 때도,
눈보라 치는 어두운 밤(암야)에 헤매는 때도 의지할 것은 이 빛이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출애굽기 13:21-)라고 있는 그 빛이다.
어떤 주해자는 이 1절을
전부의 평화의 약속에 붙이고,
다른 주해자는 이것으로써 후부의 재판의 예고를 시작한다.
이로써 전후 공통의 훈계임을 알 수 있다.
‘주여, 당신은 당신의 백성 야곱의 집을 버리셨나이다’(2:6 일역)라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기록하여 말한다.
‘그들의 나라에는 황금백은이 가득하고 계보의 수 한 없도다.
그들의 나라에는 말이 가득하고 전차의 수 한없도다’(2:7-일역)라고.
하나님께 버림당한 결과 이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나님께 버려져, 나라 부하고 병 강하다고 한다.
이 세상이 보는 바와는 정반대이다.
혹은 결과를 원인으로써 볼 수도 있다.
나라 부하고 병(군대) 강해졌으므로,
백성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그를 떠났으므로,
마침내 하나님의 버리시는 바 되었다고도 해석할 수가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 버림받은 결과가
부국강병이라고 봄이 예언자의 견해이다.
예언자 호세아의 말에 이르기를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호세아서 4:17 한글 개역)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버리시는 때,
그 하고자 하는 대로 버려두신다.
나라에 금은을 남도록 주신다.
옛날은 말과 전차, 지금은 군함과 군용비행기를 무수히 가지게끔 하신다.
그리고 무지한 백성은 부해졌다고 하면서 축복을 자랑한다.
그들은 도살되기 전에 살찌도록 함을 모르는 것이다.
칼라일(1권 182p 역주)이
어떤 곳에 영국이 급격히 부를 더함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증거라고 쓴 것을 기억한다.
‘영국인이 손대는 곳, 모두 다 돈(금)으로 화했다’고 했다.
이사야는 여기서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부국강병에 하나님의 축복을 보는 일이 없이 저주를 본다.
그러기에 참된 예언자이다.
군기를 축복하고 군함에 밥티스마(침례) 식을 행하는 교회의 감독이야말로
틀림없는 거짓 예언자이다.
여호와께 버려져 국부병강하다.
그리고 온갖 부는 주로 외국무역에서 온다.
유다의 경우에 있어서는,
웃시야왕 때에 홍해(2권 59p 역주)의 에시온게벨에 항구를 얻어
이때 홍해연안, 더 나아가 동방 인도와의 무역에 종사했다.
제 16절에 ‘다시스의 배’라고 있음은,
대해의 항로에 견딜 수 있는 당시의 대선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유다의 부의 격증은,
영국의 부와 한가지로 인도 무역에서 얻은 듯하다.
그레이에 의하면 제 6절의 후반은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들 안에 무역상 횡행하고 그들은 외국인과 손을 쳤다(매매의 약속을 했다)’고.
난해의 반절인데,
이렇게 해석하면, 전후의 의미가 명료해 진다.
농민의 나라였던 유다가 무역 상인의 나라로 화한 때에,
부가 증가됨과 동시에 신앙이 쇠미해지고 미신이 성해져,
여호와의 버리시는바 되고,
대 심판이 그 위에 임했던 것이다.
번영으로 자랑하는 국민 위에 홀연히 하늘에서 소리가 울려퍼진 바 있다.
즉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2:1)고.
대 심판은 대 번영위에 떨어져 온다.
유다의 경우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국민의 경우에 있어서 그러한 것이었다.
이 다음에 선택받은 것은 어느 나라일까?
*내촌감삼의 (1928년 3월 ‘성서지연구’)를 참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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