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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은 온 땅에 가득하도다’

거듭난 삶 2022. 2. 6.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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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삼칭(TRISAGION-트리스아기온)의 해석

 

이사야서 63: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크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한글 KJV.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은 온 땅에 가득하도다’(이사야서 6:3 일역)

 

 

거룩()이란 단순히부정이 없다고 함이 아니다.

완전함을 말함이다.

특히 도덕적으로 완전함을 말함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든 점에 있어서 완전하신 까닭에

거룩하신이란,

신성스러운이라든가,

신께 속한등의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다.

 

그리고 또 완전하신 신은,

불완전한 사람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시므로,

거룩()’성별로 역하고,

사람을 떠나서 하나님께 소용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의 근본 의미는,

오늘의 말로써 한다면, ‘완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구약에 있어서는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위기 19:2 한글 역)는 계명이,

 

신약에 있어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태복음 5:28)

가르치심으로 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완전하신 이,

그 높이에 있어서도,

넓이에 있어서도,

깊이에 있어서도,

또 능력에 있어서도,

지혜에 있어서도,

사랑에 있어서도 완전하신이,

그러므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세 번 되풀이하여 말한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

만군이란,

원래 하늘의 별을 가리켜 말한 것으로 생각한다.

이사야서 4026절에 이른 대로이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리라

 

이 경우에 있어서 만군,

하늘의 만상, 즉 모든 천체이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라고하면,

삼라만상을 거느리시는 하나님이시다.

혹은 천사의 천군을 거느리시는 하나님으로도 해석할 수가 있다.

 

누가복음 213절에 이르기를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라고.

 

이 경우에 있어서는,

천군이란 천사의 군으로서

하나님은 이것을 통솔하여 천지를 다스리시는 것이다.

 

또 여호와 하나님을 만국을 통치하시는 이로 보는 경우에,

이 일컬음()을 쓴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를 우주의 신, 전지의 신, 만국의 신이라 칭할 수가 있다.

 

그는 곧 천연인사 모두를 지배하시는 신이시다.

 

그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도다

 

하나님의 완전성이 밖으로 나타난 것이 그 영광이다.

그리고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다고 한다.

전 우주에 충만(가득)하다고 하여도 무관하다.

천지만물이 하나님의 완전성의 현현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창공)은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시는 도다’(시편 19:1)라고 있는 대로이다.

 

우러러 하늘을 바라보고,

엎드려 머리 숙여(부복하여) 땅을 볼 때,

어디서나 하나님의 영광을 본다는 것이다.

 

지금부터 2,600년 전에 예언자 이사야는 이 말을 발했다.

하지만 오늘의 우리들은,

천지에 나타나있는 하나님의 여과에 대해서는,

예언자보다도 아는 것은 훨씬 많이 있다.

 

오늘날 과학의 진보에 의해,

이사야가 생각조차 할 수 있었던 것을,

우리들이 알 수 있도록 허용되었다.

 

천문학의 진보에 의해,

천체의 절대절미가 명시되었다.

또 현미경학의 진보에 의해,

지상, 지하, 최미한 것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역사(일하심)의 완전하심을 보여주신바 되었다.

 

태양이 완전하다.

태양에 몇 백배되는 아르크튜라스 성()이 완전하다.

오리온성좌(120p, 4342 역주참조)

베텔규스, 리겔성, 모두 완전하다.

 

천상 수억만의 별의 하나하나가 완전하다.

그 일개를 가지고서,

인간일대의 연구의 제목으로 하여 충분하고도 남는 데가 있다.

 

그러면 영광이 하늘에 있어서만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지상의 만물도, 모두 완전하다.

 

물고기가 완전하다. 새가 완전하다. 짐승이 완전하다.

풀이 완전하다. 나무가 완전하다. 이끼, 버섯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완전하다.

 

완전은 연못 속에 있다. 도랑(개천) 밑에 있다.

원생동물의 하나는, 하늘의 별만큼, 그것만큼 완전하다.

 

완전한 우주는,

망원경속에 나타나고,

또 현미경속에 나타난다.

 

한 그루의 나무가 일생의 연구 자료이며,

그 잎, , 열매 역시 그렇지 않은 것은 없다.

 

이러한 우주가 둘도 없다.

우주 이것 완전하다고 하여 틀림이 없다.

 

실로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도다이다.

그 충실도는 우리들 각자의 지식의 정도에 의해 다르다.

 

지식이 더하면 더하는 만큼,

영광의 크기 안다.

 

옛날은 믿지 않는 (불신의)천문학자는 광인이라고 했는데,

오늘 불신의 생물학자, 화학자, 모두 다 광인이라고 할 수가 있다.

 

천지만물 모두 다 완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그 중에서 다만 하나,

불완전한 것이 있다.

그것이 만물의 장으로 일컬어지는 인간이므로 놀란다.

 

물고기는 물고기로써 완전하고,

새는 새로써 온전하며,

짐승은 짐승으로써 완전한데,

홀로 사람은 사람으로서 불완전하다.

 

우주 만물 안에 있어서,

다만 사람만이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

그 이유 여하는 이를 알 수 없다 해도,

그것이 사실임을 의심하는 자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가 자기의 불완전을 안다.

이사야 같은 사람조차도,

하나님 앞에 서서,

거룩하시도다의 삼창을 들은 때에,

얼굴을 땅에 대고서 말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5)라고.

 

이사야는 하나님 앞에 서서,

자기가 부정불결, 즉 죄의 사람임을 알았다.

 

이것은 바울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로마서 7:24 한글 역).

외친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하나님께 창조되어,

그 자녀 되어야할 자인데,

양자 사이에, 부자의 관계는 끊어져,

아버지는 두려워할 바

심판인으로 자식의 눈에 비취기에 이르렀다.

 

여호와의 영광은 온 땅에 가득하나,

사람만은 예외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깃들이는 일 없어,

그 앞에 서서 다만 불결을 느낄 뿐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각하여,

이 우주에 있어서 거지가 대왕의 궁전에 있는 것같이 느낀다.

 

만물이 모두 다 완전한데,

자기만이 불완전함을 미루어 안다.

 

만약 조화에 결점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다만 인간이다.

 

감독 히버의 전도가에 말한 대로이다.

 

‘Though every prospect pleasesm, And only man is vile.

만물이 가하지 않은 것 없지만도 다만 사람만은 악하다.’

 

사람만이 우주의 오점이다.

어찌해서 그럴까?

 

사람의 지혜로써 탐지할 수는 없다.

하지만도 그것이 사실임은 분명하다.

 

시인 휘트먼(544p 참조)이 말한 대로이다.

 

땅은 좋다(아름답다), 별은 좋다 그 부속물은 모두 좋다인데,

 

그 중에 있어서 사람만은 나쁜 데가 있다.

 

여호와의 영광은 온땅에 가득하나,

사람만은 이가봇(영광없다-3169p 역주 참조)이다.

 

(사무엘 상 4:21 - 말하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며

그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궤를 빼앗겼고

자기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더라).

 

하지만 하나님의 지으신 우주에 결점(흠점)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것을 씻어 취해마지않으신다.

 

사람도 또한 하나님의 영광으로 충만되지 않으면 안 된다.

더군다나 그가 조화의 최후의 소산임에 있어서랴!

 

하나님은 최대의 희생을 지불하여,

사람의 완성을 실행하시리라.

 

하지만 스스로 그 신성을 잃은 사람은,

스스로 구하여 완전을 만회할 수가 없다.

그는 자각하여 자기 불결을 안다 해도,

스스로 애써 완전한 사람으로 될 수 없다.

 

이에 있어서인가,

하나님 자신이 완전을 잃은 사람의 완성을 수행하시게 이르렀다.

 

즉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어,

그에게 있어서(그 안에서) 세상의 죄를 벌하시고,

그로 하여금 죄를 제거케 하여,

사람이 그를 믿음으로 인하여

완전에 달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시었다.

 

그리스도로써 여호와의 영광은,

사람에게도 또한 충만되기에 이르렀다.

 

일은 지금도 진행 도중에 있다고 해도,

그 완성은 기대할 바이다.

 

그리스도,

죄 위해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사 아버지에게로 돌아가심으로써,

이에 완전에 달함의 길이 열린 것이다.

 

이리하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 영광이 하나님께 있고,

그 영광이 땅에 나타나 평화가 되고,

은혜로 사람에게 임한다.

 

그리스도로써 하나님은 조화를 완성하시고 있다.

사람이 배반하여 잃은 하나님의 형상을,

하나님은 성자(예수 그리스도)로써 다시 사람에게 주시고 있다.

 

이리하여 조화의 오점은 모두 씻은바 되고,

사람은 만물과 함께 조물주의 영광을 찬미하기에 이른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 그 영광 온 땅에 가득하도다’.

 

이는 조화의 이상이며, 그 종극의 목적이다.

천사가 이것을 노래한 것에 의해,

우리들은 그것이 반드시 실현할 것을 믿는다.

 

자기를 돌아다보면 견딜 수 없는 불결을 본다.

하지만도 이사야의 경우에 있어서와 같이

천사 스랍은 성단위에서 뜨거운 성령의 불을 취하여 내 마음에 대시며 이르신다.

 

보라 이것()이 네 입(마음)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6:7).

 

하나님의 영광은 그렇게 해서 다시 사람에게 차고,

조화의 목적은 완전히 완성되셨다.

 

말씀(로고스)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리라’(요한복음 1:14, 16)고 있다.

 

영광으로 찬 독생자가 세상에 나타나,

사람은 은혜로 말미암아,

그에게 충만한 영광을 분여 받아,

영광에서 영광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리스도 신자는,

하나님의 아들의 이 영광의 은혜에 참여한 자인 것이다.

 

그는 실로 하나님의 영광의 최고의 나타나심이다.

 

바울,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4248), 루터 등이 그 모범이다.

 

사함 받은 죄인이다.

여기에 특별한 미가 있다.

 

겸손의 미이다.

영광에 목욕함의 자격 없음을 알면서,

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감사로 넘치는 미이다.

 

타락이전의 인류의 미보다 더한 미이다.

아담, 하와(에바;이브)에게,

바울이나 어거스틴(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었던 미는 없었다.

 

이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사람에게 옮겨져 나타난 미인 것으로써,

실로 조화의 최후의 소산으로서 적합한 것이다.

 

최대의 미는 도덕의 미이다.

그리고 최상의 도덕은 겸손이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6-7)

 

이것이 그리스도의 겸손인 것으로서,

그리스도 신자의 겸손은 이것을 배운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의 영광은 이 겸손이다.

죄의 세상이 치욕으로 아는 이 겸손이다.

 

그리고 이 치욕이 드디어 최대의 영광으로서 나타난 것이다.

 

 

*내촌감삼의 (19267성서지 연구’)를 참조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