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의 징조
성 경: [사 7:10-16]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12)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13)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사 7:10]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
앞절과 본절 사이에 짧은 휴지(休止)가 있음이 분명하다.
아하스는 선지자의 전언(傳言)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의 마음이
앗수르쪽으로 기울어진 듯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 그를 포기하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은 계속된다.
[사 7: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 '네 하나님 여호와'라는 표현은
아하스 왕에게 그가 하나님과의 특별한 언약 관계 안에 있음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징조'는 예언의 성취와 약속의 진실성을 보장하는 하나의 증거로서 취해졌다.
그것은 때로는
이적으로,
(38:7-8 주가 친히 말한 이 일을 행할 터이니 이것이 곧 주로부터 네게 임할 표적이 되리라.
8) 보라, 내가 아하스의 해시계에서 내려간 각도들의 그림자를 다시 뒤로 십 도 물러가게 하리라, 하라, 하시니 이에 해가 자기가 내려간 각도대로 십 도 만큼 되돌아가니라;
출 4:8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지라도 나중 표적의 소리는 믿으리라)
때로는
미래 사건들을 지명하는 지각 가능한 상징들로 나타난다.
(8:3-4 여대언자에게로 들어가니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니라. 그때에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4) 그 아이가, 내 아버지여, 내 어머니여, 하고 부르짖을 줄 알기 전에 다마스커스의 재물과 사마리아의 노략물이 아시리아 왕 앞으로 옮겨지리라, 하시니라,
18 보라, 나와 및 주께서 내게 주신 아이들이 이스라엘 안에서 표적들과 이적들이 되었나니 그것들은 시온 산에 거하시는 만군의 주로부터 나온 것이니라;
겔 12:6 어두울 때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그것을 네 어깨에 메고 나르면서 앞으로 나아가며 또 네 얼굴을 가림으로써 땅을 보지 말라. 내가 너를 세워 이스라엘의 집에게 표적이 되게 하였느니라, 하시기에)
만일 아하스가 선지자의 예언을 의심한다면,
그는 이적적인 증거를 구함으로써 불신앙을 확신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이것이 그에게 주어진 최후의 기회였다.
[사 7:12]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 여호와를 시험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징조를 구하지 않겠다는 아하스의 말은
겉과 속이 다른 외식적인 언행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는 신 6:16의 금지 계명을 내세워 자신의 불신앙을 포장한다.
(신 6:16 너희가 맛사에서 주 너희 하나님을 시험한 것 같이 그분을 시험하지 말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징조를 구하는 것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 될 수 없다.
그의 불신앙은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Umbreit)나
그 약속하신 바를 이루시는 능력(Gesenius)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수용하지 않으려는 내적인 완고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하나님을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안 믿으려는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스스로 고안해낸 별도의 대책이 서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사 7:13]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
개역 성경에 단수로 나와 있는 '사람'은
원문에는 '사람들'(아나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선지자 자신을 가리킨다기보다는(Bultema)
아마도 권세자들에 의해 압제받는 백성들을 가리킬 것이다.
그렇다면 선지자의 책망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너희가 백성들을 그렇게 학대하고도 마치 그것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경건을 가장하고
이제는 불신앙으로 그의 은혜마저 거절하는구나.'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문자적으로는
'그녀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부른다'이다.
어머니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나,
(창 29:32-35 레아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르우벤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녀가 이르기를, 주께서 분명히 나의 고통을 보셨으므로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 하였기 때문이더라.
33) 그녀가 다시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주께서 내가 미움 받는 것을 들으셨으므로 이런 까닭에 내게 이 아들도 주셨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시므온이라 하였으며
34) 그녀가 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 이번에는 내 남편이 나와 연합하리로다, 하고 이런 까닭에 그의 이름을 레위라 하였으며
35) 그녀가 또 수태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내가 이제는 주를 찬양하리로다, 하고 이런 까닭에 그의 이름을 유다라 하고는 낳는 것을 멈추었더라;
30:6-13 라헬이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를 판단하시고 또 내 목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런 까닭에 그의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7) 라헬의 하녀 빌하가 다시 수태하여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니
8) 라헬이 이르되, 내가 내 언니와 큰 싸움을 싸워 이겼다, 하고 그의 이름을 납달리라 하였더라.
9) 레아가 자기의 출산이 멈춘 것을 보고 자기 하녀 실바를 취하여 야곱에게 아내로 주었더니
10) 레아의 하녀 실바가 야곱에게 아들을 낳으매
11) 레아가 이르되, 군대가 오는도다, 하고 그의 이름을 갓이라 하였으며
12) 레아의 하녀 실바가 둘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으매
13) 레아가 이르되, 나는 행복한 자니 딸들이 나를 가리켜 복된 자라 하리로다, 하고 그의 이름을 아셀이라 하였더라;
35:18 그녀의 혼이 떠나려할 때에 (이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더라.) 그녀가 그의 이름을 베노니라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그를 베냐민이라 하였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인 관습으로 보인다.
(창 16:15 하갈이 아브람에게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자기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삼하 12:24 다윗이 자기 아내 밧세바를 위로하고 그녀에게로 들어가 그녀와 함께 누우니 그녀가 아들을 낳으매 그가 그의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니라. 주께서 그를 사랑하사;
눅 1:62-63 그의 아버지에게 손짓하여 어떻게 그를 부를지 물으니
63) 그가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쓰며 말하기를,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하매 그들이 다 이상히 여기더라).
그러나 누가 아이의 이름을 짓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마 1:23에서는 본문의 주어가 3인칭 복수형(그들)으로 인용되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는 뜻이다.
일차적으로
그 이름은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이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르신-베가의 멸망으로 성취될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가 구체적으로 누구이며
또 그의 어머니인 '처녀'(알마)는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
예로부터 학자들 간에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1) 그 어머니는 동정녀 마리아이며
그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는 주장(E.J.Young):
이것은 아이의 성장과 아하스 당대의 정치적 상황 사이의
역사적 관련성을 기술하고 있는 15-17절로 인해 수용하기 어렵다.
이러한 난점을 피하기 위해서는 본절의 아이와
15,16절의 아이를 구분하거나(박윤선),
혹은 본절과 15절의 아이와 16절의 아이를
각각 다른 인물로 구분할 수밖에 없는데(Bultema, Calvin),
이 경우에 해석의 자의성이 문제가 될 것이다.
따라서 마 1:23에 의거,
본문이 메시야적 예언임에 틀림없다고 할지라도
시공간적 거리를 무시하고
직접적으로 아기 예수와 그 모친 마리아에게만 적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2) 그 어머니는 아하스 왕의 왕비 혹은 후궁을 가리키며,
그 아이는 히스기야를 가리킨다는 주장(Lindblom, Steinmann):
이는 주로 유태계 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연대기적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B.C.728년 히스기야가 왕위에 올랐을 때 그의 나이 이미 25세였으므로,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당시에는 10대의 소년이었던 것이다.
(대하 29:1).
(3) 그 어머니는 이사야 선지자의 아내이며
그 아이는 선지자의 아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주장(Clements):
이 경우에 선지자가 8:3에서처럼
(8:3 여대언자에게로 들어가니 그녀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니라.
그때에 주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마헬살랄하스바스라 하라)
'선지자의 아내' 혹은 '여선지자'(하네비아)라고 명확하게 표현하지 않고
굳이 '알마'라는 모호한 말로 대신하였는가가 의심스럽다.
게다가 그의 아내처럼 오래도록 결혼 생활을 한 여자를
'알마'라고 부를 수 있을까도 수긍하기 힘들다.
(4) 선지자가 특정인을 가리키지 않고
일반적으로 당시 유다에 살고 있던 어머니들을 가리킨다는 주장(O.Kaiser).
이 경우에 정관사 '하'가 문제가 될 것이다.
이상의 어떤 주장도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다.
다만 이제까지 주어진 여러 증거들을 종합해볼 때,
우선 징조로서의 이 아이는 아하스 당대에 적용되어야 한다.
이는 그 아이의 성장 기한과 르신-베가 동맹군의 몰락이 결부되어 있다는
15,16절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또한 이 징조는 아하스 당대에만 국한될 수 없다.
그것이 다윗의 집에 주어졌고,
더욱이 이 임마누엘의 위로가 앗수르의 위협과 더불어
소멸되리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더 큰 역사적 지평으로 확대된다.
선지자의 예언이 궁극적인 결실을 보게 되는 것은
그 인격 속에 임마누엘의 약속과 구원을 구현할 메시야의 탄생에서이다.
따라서 추측컨대, 아이의 어머니는
선지자와 동(同)시대 사람으로서 다윗 가문에 속한 한 처녀이며,
그 아들의 이름 임마누엘은
위기의 순간에 그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현존과
장차 인간의 몸으로 오실 메시야에 대한 소망을
함께 함축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 7:15]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 때에 미쳐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 그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때에 미쳐 - 영아는 선악을 분별하지 못한다.
선악을 분별한다 함은 영아의 상태를 넘어섬을 뜻한다.
따라서 본문의 의미는
'그 아이가 자라서 사물을 판단하는 나이에 이를 때까지'라고 할 수 있다.
이 나이는 대략 3세 정도로 추정된다.
[사 7:16] 대저 이 아이가 악을 버리며 선을 택할 줄 알기 전에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바 되리라.
▶ 너의 미워하는 두 왕의 땅이 폐한 바 되리라 - '미워하는'은
문자적으로는 '두려워하는'이다.
유다에게 큰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두 나라
수리아와 에브라임은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과(B.C. 732년)
살만에셀 5세(B.C.722년)의 침공으로
황폐하게 될 것이며,
(왕하 15:29 이스라엘 왕 베가의 시대에 아시리아 왕 디글랏빌레셀이 와서 이욘과 아벨벳마아가와 야노아와 게데스와 하솔과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점령하고 그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아시리아로 데리고 가니라;
16:9 아시리아 왕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더라. 아시리아 왕이 올라와 다마스커스를 쳐서 점령하고 그곳의 백성을 포로로 사로잡아 기르로 데려가고 또 르신을 죽였더라;
17:6 호세아의 제구년에 아시리아 왕이 사마리아를 점령하고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아시리아로 끌어다가 할라와 고산 강가의 하볼과 메대 사람들의 도시들에 두었더라),
따라서 그들로부터 가해진 위협도 소멸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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