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사야의 사역
성 경: [사 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 이는 바벨론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이사야가
공식적으로 위임받는 대목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Gesenius, Rosemnuller).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메시야에 관한 언급으로 해석되어지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는 예수께서 본절을
자신에 관한 예언으로 명시하셨다는 사실이다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 4:18-21).
예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신 순간에도
그 사역의 공적 인정을 위하여 성령이 임하신 바 있다.
(마 3:16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시고 똑바로 물 속에서 올라오실 때에, 보라, 하늘들이 그분께 열리며 또 하나님의 영께서 비둘기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내려앉는 것을 그분께서 보시더라;
요 1:32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께서 비둘기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오사 그분 위에 머물렀더라).
▶ 기름을 부으사(마솨흐) - 이 용어에서 '메시야'란 단어가 유래된다.
이스라엘의 왕,
(삼상 16:13 이에 사무엘이 기름 뿔을 취하여 그의 형제들 가운데서 그에게 기름을 부으니 그 날 이후로 주의 영께서 다윗에게 임하시니라. 이에 사무엘이 일어나서 라마로 가니라),
제사장,
(출 30:30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기름을 붓고 그들을 거룩히 구분하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무로 나를 섬기게 하라),
선지자, 등은
(왕상 19:16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출신의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 대신 대언자가 되게 하라)
그들의 중요 직책을 위해 구별될 때
그 머리 위에 기름 부음을 받았다.
(삼상 16:1-5 주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미 사울을 버려 이스라엘을 통치하지 못하게 하였거늘 네가 어느 때까지 그를 위하여 애곡하려느냐? 기름을 네 뿔에 채우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내가 나를 위해 그의 아들들 가운데서 한 왕을 예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2) 사무엘이 이르되, 내가 어찌 갈 수 있으리이까? 사울이 그것을 들으면 나를 죽이리이다, 하매 주께서 이르시되, 암송아지를 끌고 가서 말하기를, 내가 주께 희생물을 드리러 왔다, 하고
3) 이새를 희생물 드리는 일에 청하라. 네가 행할 일을 내가 네게 보여 주리니 너는 내가 네게 지명하는 자에게 나를 위해 기름을 부을지니라, 하시니라.
4) 사무엘이 주께서 말씀하신 바를 행하여 베들레헴에 이르매 그 고을의 장로들이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떨며 이르되, 당신이 평화롭게 오시나이까? 하니
5) 그가 이르되, 평화롭게 오느니라. 내가 주께 희생물을 드리러 왔은즉 너희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고 나와 함께 희생물을 드리러 가자, 하고는 그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히 구별하고 그들을 희생물 드리는 일에 청하니라).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구별해 세우신 것을
암시하기 위해 본 표현이 사용되었다.
메시야를 언급하려고 이와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시 45:7;히 1:9 등에도 나온다.
(시 45:7 왕이 의를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왕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이다;
히 1:9 주께서 의를 사랑하시고 불법을 미워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주의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으로 주에게 기름을 부어 주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이다, 하시고)
▶ 가난한 자(아나윔) - 원래 이 용어는 상처나 억압으로 인해 고통당하는 자를 뜻하며,
여기서는 1차적으로
낙담 중에 있었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뜻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이 용어는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으므로
오직 하나님이 보낼 메시야를 고대하며 사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정확하겠다.
(마 5:3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요).
이 말은 시편에서 개인적 재난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고대하였던
신실한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종종 사용되었다.
(시 9:12 그분께서 피에 대하여 조사하실 때에 그들을 기억하시리니 그분은 겸손한 자의 부르짖음을 잊지 아니하시는도다,
18 궁핍한 자들은 항상 잊히지 아니하며 가난한 자들의 기대하는 바는 영원히 사라지지 아니하리니).
예수께서는 자신의 지혜를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신 자신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한
마음이 교만한 자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라고 풍자하셨고
반대로 그를 알아본 자들을 '어린 아이들'이라고 부르셨는데
이자들이 바로 가난한 자들이다.
(눅 10:21 그 시각에 예수님께서 영 안에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오 하늘과 땅의 주이신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이것들을 지혜롭고 분별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아기들에게는 드러내셨음을 감사하나이다. 과연 그러하옵나이다. 아버지여, 그리하심이 아버지 보시기에 좋았나이다).
▶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을,
더나아가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또한 본 표현은
희년의 때에 모든 종된 자에게 선포되는 자유를 동시에 연상케 한다.
(레 25:10 너희는 이 오십 번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온 땅에서 두루 온 땅의 모든 거주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그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 소유로 돌아가고 각각 자기 가족에게 돌아갈지니라;
렘 34:8-9 시드기야 왕이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백성과 언약을 맺고 그들에게 자유를 선포한 뒤에 주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이 이러하니라.
9) 그 언약은 곧 각 사람이 히브리 남자나 히브리 여자인 자기 남종이나 자기 여종을 놓아주어 자유로이 가게 하고 아무도 그들에게 곧 자기 형제 유대인에게 섬김을 받지 못하게 한 것이라).
▶ 갇힌 자에게 놓임 -
원문상으로는 '갇힌 자의 감옥문을 여는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여는 것'이란
메시야의 도래와 연관지어 볼 때 죄와 사망의 올무로부터의 해방,
(롬 6:18 이로써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느니라;
7:24-25 오 나는 비참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25)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를 통하여 내가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그런즉 이와 같이 내 자신이 생각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되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히 2:5 그분께서는 다가오는 세상 곧 우리가 말하는 그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시키지 아니하셨느니라)
혹은 영적으로 장님되었던 자가 영의 눈을 뜨는 것을 가리킨다(Ewald).
눅 4:18은 본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본절에는 없는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이란 구절을 첨가함으로써 후자의 뜻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사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 여호와의 은혜의 해(쉐나트 라초 라훼)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해'이다.
이것은 나팔이 올리고 온 이스라엘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던
희년의 때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레 25:9-10 그때에 너는 일곱째 달 십일에 희락의 나팔 소리를 내고 너희는 그 속죄일에 너희 온 땅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니라.
10) 너희는 이 오십 번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온 땅에서 두루 온 땅의 모든 거주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라. 그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 소유로 돌아가고 각각 자기 가족에게 돌아갈지니라).
희년의 때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의 때도 '해방'이란 이미지를 내포한다.
메시야의 도래의 때는 온 세계 인류를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때인 것이다.
메시야의 도래로 시작된 해방의 때는 은혜의 때라고 불리기도 한다.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 하나님의 신원의 날 - 문자적인 뜻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다.
1차적으로 이날은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날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이날을
'복수의 날'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바로 앞에 언급된 바
'여호와의 은혜의 해'의 대비적 표현으로 본 표현이 언급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은혜의 해'가 되는 때가
그 대적에게는 '복수', 곧 '심판'의 때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이 대적들을 멸하시는 보응은
곧 성도들에게는 영광을 얻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요 12:47 사람이 내 말들을 듣고 믿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나는 세상을 심판하러 오지 아니하고 세상을 구원하러 왔노라;
고전 15: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일어나고 우리가 변화되리니;
고후 4:17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고난이 우리를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이루느니라)
* 참조 : (계 21, 22장).
[사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 원문 직역은 '아름다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이다.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페에르'는
본래 여자들이 머리에 쓰던 아름답고 화려한 관을 말하며,
'희락의 옷', '찬송의 옷'과 함께 즐거운 축제 때를 연상시킨다(G.W. Grogan).
이제 여호와의 구원과 은혜의 때가 이르면 슬픔의 표로 뒤집어 썼던
(에 4:1 모르드개가 이루어진 모든 일을 깨닫고는 자기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으며 재를 뒤집어쓰고 도시 한가운데로 나아가 큰 소리로 비통하게 부르짖으며,
3 왕의 명령과 그의 칙령이 이른 모든 지방에서 유대인들이 크게 애곡하고 금식하며 슬피 울고 울부짖었으며 또 많은 사람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재에 누웠더라;
렘 6:26 오 내 백성의 딸아, 너는 굵은 베를 두르고 재 속에서 뒹굴며 애곡하되 외아들로 인하여 하듯 심히 비통하게 애곡하라. 노략하는 자가 갑자기 우리에게 이르리라)
재를 털어내고 대신 아름다운 관을 쓰고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 희락의 기름 - 당시는 기쁨의 축제 때,
특히 초청한 귀빈의 머리 위에 향내나는 값비싼 기름을 붓곤 하였다.
(시 23:5 주께서 내 원수들의 얼굴 앞에서 내 앞에 상을 차리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시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45:7 왕이 의를 사랑하시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왕의 동료들보다 높이셨나이다;
암 6:6 대접으로 포도즙을 마시며 가장 좋은 기름으로 자기 몸을 바르면서도 요셉의 고통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도다).
그외 성경은 축제 혹은 기쁨 그 자체를 뜻할 때,
'기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57:9 또 네가 기름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갔고 네 향기를 더 많이 냈으며 또 네가 네 사자들을 멀리 보내고 네 자신을 지옥에 이르도록 비천하게 만들었느니라).
공적인 재난 혹은 슬픔의 때에는 결코 기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삼하 14:2 드고아로 사람을 보내어 거기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데려다가 그녀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너는 애곡하는 자처럼 변장하여 이제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 말며 죽은 자를 위해 오랫동안 애곡한 여인같이 하고).
▶ 찬송의 옷 - 절망에 빠진 자를 삼베옷을 입은 것에 비유하는 대신,
찬송과 감사를 드리고있는 자는 밝은 채색옷을 입은 것에 비유한다.
▶ 의의 나무(엘레 하체데크) - '나무'에 해당하는 '엘레'는
팔레스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수리나무를 뜻한다.
이 나무는 굵고 튼튼하여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다.
(이런 맥락에서 탈굼역, 제롬역, 시리아역 등은 이을 '강한 것' 혹은 '힘센 것'으로 번역했음).
본문의 '의의 나무'는
한때 죄악으로 인해 넘어졌으나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되어
굳건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주의 백성을 가리킨다.
그들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은
정원사가 나무를 심듯이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구원하여 세우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영광을 열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세움을 받는 사실은
주님이 사용하신 비유에도 암시가 되어 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마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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