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된 예배에 대한 경고
성 경: [사 66:1-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4)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사 66: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을꼬 -
신령과 진정은 결여된 채,
참조 : (요 4:23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제사에만 몰두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초월성을 부각시키는 내용이다.
(대상 28:2 그때에 다윗 왕이 자기 발로 일어서서 이르되, 내 형제들아, 내 백성들아, 내 말을 들으라. 나로 말하건대 내가 주의 언약 궤 곧 우리 하나님의 발받침을 둘 안식의 집을 건축할 마음이 있어서 건축을 위하여 예비하였으나;
시 11:4 주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전에 계시며 주의 왕좌는 하늘에 있도다. 그분의 눈은 사람들의 자녀들을 바라보시며 그분의 눈꺼풀은 그들을 단련하시는도다;
99:5 너희는 주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의 발받침 앞에서 경배하라. 그분은 거룩하시도다;
132:7 우리가 그분의 장막들로 들어가 그분의 발받침 앞에서 경배하리라;
애 2:1 어찌하여 주께서 친히 분노하사 구름으로 시온의 딸을 덮으시고 이스라엘의 아름다움을 하늘에서 땅으로 던지시며 친히 분노하시는 날에 자신의 발받침을 기억하지 아니하셨는가!).
즉, 하나님은 특정한 건물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온 우주에 편재하신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구절로서,
여기서는 성전 건축과 연관되는 내용이라 하겠다.
이와 관련하여 히찌히(Hitzig)는,
포로 귀환 후에도 계속 바벨론에 남아 자기들 나름대로
성전을 건축하고자 했던 유대인들에 대해 경고하는 내용으로 해석한다.
그런가 하면 움브라이트(Umbreit)는,
성전이나 희생 제사 예식이 도무지 필요 없는
새 예루살렘에서의 상황에 대한 묘사로 해석한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포로 귀환 후,
성전 재건에 착수해야 할 유대 공동체에게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예배를
미리 강력하게 경고하는 내용으로 이해함과 아울러,
더 나아가서는 신약 시대와 새 예루살렘에서의
신령한 예배를 겨낭한 내용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다.
[사 66: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어서 다 이루었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나의 말을 인하여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권고하려니와
▶ 마음이 가난하고(아니) - 단순히 재산이 없는 자가 아니라
자신에게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죄의 문제를 해결해줄 구주(救主)를 기다리며 사는 자를 가리킨다.
동일한 용어가 산상 수훈의 한 대목에 나타난다.
(마 5:3 영이 가난한 자들은 복이 있나니 하늘의 왕국이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요).
바로 이 같은 자의 심령의 전에 하나님이 임재하신다.
(요 14:23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들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우리의 거처가 그와 함께 있게 하리라).
한편, 새 하늘과 새 땅의 시대에 성전이란 없다.
그때에는 주 하나님 그분이 성전 이시다.
(계 21:22 또 내가 그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전능자와 어린양께서 그 도시의 성전이시기 때문이라).
[사 66:3]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으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유대인에게 있어 '개'란,
추잡함이나
(신 23:18 너는 창녀의 몸값과 개의 몸값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 주 네 하나님의 집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주 네 하나님께 가증한 것이니라)
경멸스러움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했는데,
(삼상 17:43 그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막대기들을 가지고 내게 나오니 내가 개냐? 하고 자기 신들을 통해 다윗을 저주하고는)
그 목을 꺾어 죽여서 희생 제물로 바치는 일은
지극히 혐오스러운 모습을 나타낸다.
또한 돼지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일 역시
이방 제사에서나 행해졌던 혐오스러운 것이었다.
(65:4 그들은 무덤 사이에 머물며 기념비가 있는 데 거하고 돼지고기를 먹으며 가증한 것들의 국을 그릇에 담으면서).
그런데 본절은
율법이 허용하고 있는 소 및 어린 양의 제사를
이방의 제사인 양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2절을 고려하면 이 난제는 쉽게 풀린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제사의 바른 정신을 깨닫고 그 정신에 입각해 드리는 제사인데,
그 제사란 가난한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바로 이 같은 내면적 자세를 무시한 채
그냥 동물만 잡아 드리는 제사는
이방의 제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 본절의 요지이다.
[사 66:4] 나도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청종하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 악을 행하며 나의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 유혹(타알룰레헴) - '악한 행동을 하다', '악하게 대하다'는 뜻인
'알랄'에서 온 용어로서 '안달', '토라짐', '뻔뻔함' 등을 뜻하나
3절의 '자신들이 멋대로 택한 길’과
(개역 성경에는 '자기의 길'로 나와 있음)
대비를 이루는 용어로 볼 때
'망상', '잘못된 생각' 정도로 의역함이 가능하겠다.
많은 학자들이 본 용어를
망상, 잘못된 생각을 야기할 수 있는
'재앙'으로 번역하고 있다(Noyes, Low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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