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전 연구
(1) 제사장의 아들 예레미야
예레미야서 1장 1절 예레미야는 유다가 낳은 최대의 예언자이다.
그 외에도 허다한 예언자가 있었으나,
예언인 그에게 있어서 그 절정에 달했다고 할 수가 있다.
예레미야의 위대함은,
그의 시대에 비추어 그의 예언을 읽어 보고서 알 수 있다.
예레미야를 모르고서는 성서를 알지 못한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다.
따라서 그리스도교를 알지 못한다.
종교는 의식이 아니라, 도덕이다.
복종이라는 것은 특별히 그가 조고한 바이다.
예레미야서 52장을 통하여,
예레미야에 의해 다만 1회라도 ‘이적이 행해졌다는 기사는 없다.
또 제사예배에 관한 의식이 보인 예는, 하나도 없다.
모두가 엄격한 정의의 창도이다.
그리고 예언자 그 자신이 그 엄격한 실행자였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괴를 먹으라 대저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날에 번제나 희생에 대하여 말하지 아니하며 명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이것으로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그리하면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 그리하면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나’(예레미야서 7:21-23)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을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자가 없으리라’(4:4)
모두가 이런 류이다. 의식을 무시한 말치고서 이것보다도 세찬 것은 없다.
만약 예레미야가 오늘의 천주교회, 또는 영국성공회(본권 47p 역주 참조),
또는 독일 루터교회 내에 나타났다면,
그들은 할고 그(예레미야)가, 그들 사이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리라.
어떠한 무교회 신자라 해도,
예레미야가 교회를 공격한 말보다도 강한 말을 발한 것은 없다.
실로 예레미야서가, 성서 안에 남아 있는 동안은
무교회주의는 그리스도신자 사이에서 끊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한 일로는,
그렇듯 격렬하게 의식과 이를 주관(관수행)한 제사장 계급을 공격한 예레미야가,
자신(스스로가) 제사장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이는 베냐민 땅 아나돗의 제자상의 한 사람인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의 말이니라’(1:1 일역)고 있다.
즉 제사장의 아들이 제사장을 책 한 것이다.
마치 승려의 아들이 승려를 책하고,
신관의 아들이, 신관을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상하게 여길 것 없다.
승려의 폐해를 가장 잘 아는 자는 승려이다.
제사장의 아들로서 태어난 예레미야는,
가장 잘 제사장의 흠점을 알았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위해,
그렇다, 제사장 계급 그것 위해, 제사장과 제사를 정결케 하려했다.
하지만 그는,
장로교회의 목사의 아들로서 태어난 로보트 잉거솔이
교회를 떠나, 신앙을 버리고, 교회를 공격한 것과는 전혀 달리,
신앙의 중심에 들어가서,
그 질병으로 밖에 나타난 해독을 없이하려 했던 것이다.
예언자 아모스가 농부로서, 교회 밖에서 이것을 정화하려 했던 것처럼,
예언자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그 안에서 이를 교정하려 했던 것이다.
아나돗은 예루살렘의 동북 3마일에 있는 성읍이다.
처음부터 아론의 자손에게 할당되었던 성으로,
‘제사장촌’이었다. (여호수아 21:18 참조).
예레미야는 제사장 촌에 태어난 제사장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그의 아버지를 힐기야라고 했다.
힐기야의 이름은, 제사장의 이름으로서 보통 것이었던 듯한다.
역대기상 6장 45, 46절, 동 26장 11절, 느헤미야기 12장 7절,
특히 열왕기 22장 4-14절을 볼 것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이는, 요시야 왕 때의 제사장 힐기야로서,
왕과 협력하여, 종교개혁을 행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사람이 예레미야와 동시대의 사람이었던 까닭에,
어떤 학자는 예언자(예레미야)를 제사장의 아들로 보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는 증거를 찾아 낼 수 없다 해도,
그러나 예레미야서 내에 이 일에 관한 기사가 없으므로,
그것이 그렇지 않다고 인정함이 당연하다.
즉 예언자 예레미야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 아니라,
아나돗의 제사장촌에 거하던
다른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봄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상의 인증에 의해,
예레미야가 제사장과의 관계가 밀접했음은 분명하다.
그는 순수한 제사장(계)였다.
그의 혈관에는, 가장 농후한 제사장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제사장임은 치욕이 아니라, 그 반대로 명예의 극치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하나님을 사람에게 소개하고,
사람을 하나님께 중재하는 성직에 있는 자이다.
주지승, 승려의 이름이 천시되기에 이른 것은,
그 직이 너무나 고귀한 까닭에,
이것을 욕되게 한 자가 많은데 있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태어나고,
성직가에 태어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이스라엘의 신직(神職)은,
거의 그 이상에 달한 것이다.
미국 학생들 사이의 오가는 말에
‘가장 품행 나쁜 학생은 목사의 아들이다’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것이 그렇지 않음을 보여 주고도 남음이 있다.
가장 유명한 목사 죠나단 에드워즈의 자손은,
그 고덕으로서 유명하고,
그의 혈통을 이은 미국인으로서 사회 각 계급에 걸쳐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자는 수백이나 된다는 것이다.
비쳐가, 애버트가, 드와이트가 등은 모두 목사의 집으로서 유명하다.
그리고 이들 집에서 태어난 남녀로서
미국의 도덕적 권위를 유지하여 유력한 자 많았던 것은,
사람이 잘 아는 바이다.
제사장의 집에 태어난 것을 수치로 여기지 말라.
제사장의 이상을 실현하여,
집을 일으키고, 나라에 이바지하는 데가 있도록 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태어나,
이스라엘의 신앙을, 사람으로서 달할 수 있는 최고점에까지 진전시켰다.
그는 제사장에 항거하고,
제사장은 그를 책하고 있는 동안에,
제사장의 이상은, 그로 말미암아 실현되었다.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구약의 가르침은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에 의해
그 발달의 극에 달하고,
그것을 토대로 하여 신약은 일어나, 복음완성의 길이 열렸다.
구약의 인물로서 신약은 일어나,
복음완성의 길이 열렸다.
구약의 인물로서 신약의 예수에 가장 가까운 이는,
예레미야였다.
만약 예수의 전례가 있다고 하면,
그것은 예언자 예레미야였다.
예레미야서 연구의 흥미와 필요는,
이점에 있어서이다.
예레미야를 모르고서, 그리스도교를 알지 못한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내촌감삼의 글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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