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멸 당함으로 인한 고통과 후회
성 경: [렘 8:12-22]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 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14)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나 들어가서 거기서 멸망하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니라
15)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치심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뿐이로다
16)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준마들의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 중의 거민을 삼켰도다
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르시기를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 하시니
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21)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렘 8:12]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 그들은 이런 거짓 위안으로
백성들을 속이면서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얼굴색도 바꾸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을 설득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하나님의 엄위하신 심판뿐이다.
설령 심판을 조금 연기한다고 해도 그들에게는 유익될 것이 조금도 없다.
왜냐하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들의 죄악은 더 커지고
그 형벌이 더욱 혹독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렘 8:13]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 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 포도나무 비유는
본서에서 2:21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는데,
(2:21 그럼에도 내가 너를 귀한 포도나무 곧 온전히 올바른 씨로 심었거늘 네가 내게 이방 포도나무 즉 변질된 초목이 됨은 어찌된 까닭이냐?)
거기서는 극상품의 선택된 포도가 야생포도가 되었다는 내용이었으며,
이어서 6:9에 포도나무 비유가 등장하였는데,
(6:9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포도를 따듯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철저히 주워 모으리라. 포도 따는 자같이 네 손을 바구니로 거두어들이라)
거기서는 예레미야가 포도를 수확하는 자로 묘사되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는 포도나무에 열매가 전혀 없다는 것으로 설명된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 언약의 말씀을 준행할 때 따르는
번영, 축복과는 대조적으로
(신 29:9 그런즉 이 언약의 말씀들을 지키고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하는 모든 일에서 너희가 형통하리라;
시 37:9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지려니와 주를 바라는 자들은 땅을 상속하리라)
언약을 파기한 자들에게는 온갖 저주가 임한다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렘 8:14]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나 들어가서 거기서 멸망하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니라
▶ 견고한 성읍들로나 들어가서 거기서 멸망하자 - 절망 상태에 빠진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묘사되고 있다.
그들은 자구책을 강구하며 어떤 조치를 취하려고 하지만,
그 모든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들은 견고한 성읍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 성읍은 단지 파멸의 순간을 조금 지체시키는 역할을 해줄 뿐,
파멸은 이미 기정 사실화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우심이니라 - '독한 물'에 해당하는 원어 '메 로쉬'는
'쓴 물'로도 번역된다.
즉 '로쉬'는 신32:32에서 '쓰다'는 의미에서 '쓸개'로 번역되었는데,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쓴 것'과 '독'은
유다인들에게 있어 밀접하게 연관된 의미를 시사했던 것 같다(Delitzsch).
(민 5:18 여인을 주 앞에 세우고 그 여인의 머리를 드러나게 하고 기억나게 하는 헌물 곧 질투의 헌물을 그녀의 두 손에 두고 저주를 일으키는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렘 8:15] 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치심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뿐이로다
▶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 일말의 희망도 없어진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묘사가 계속 이어진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멸시하는 자들은
이처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면
그때는 뉘우쳐도 이미 늦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롬 2:4 혹은 하나님의 선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알지 못한 채 네가 그분의 선하심과 관대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벧후 2:10 특별히 부정한 정욕에 빠져 육체를 따라 걸으며 행정권을 멸시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그들은 염치가 없고 자기 뜻대로 행하며 두려운 줄도 모르고 위엄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렘 8:16] 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준마들의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 중의 거민을 삼켰도다
바벨론의 마병이 노도처럼 내달아오는 것을
직접 보게 해주는 것 같은 생생한 예언이다.
이런 맥락에서 벌게이트역(Vulgate)과 페쉬타역(Peshitta)은
'들리고'를 '이미 들려온다'라고 옮겼다(McKane).
[렘 8: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
▶ 뱀과 독사를 너희 중에 보내리니 - 13절에 이어 다시 여호와의 말씀이 등장한다.
13절과 본절 사이에는 백성들의 부르짖는 소리들이 담겨 있는 것이다.
본절에는 심판이 닥쳐오는 것이 독사가 달려드는 것으로 비유되었는데,
이 독사에 대한 예화는 민21:6-9의 내용을 상기시켜 준다.
(민 21:6-9 주께서 불 뱀들을 백성 가운데로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이 죽으니라.
7) 그러므로 백성이 모세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와 당신을 대적하여 말함으로 죄를 지었사오니 주께 기도하여 그분께서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제거하게 하소서, 하매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니
8)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를 위해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쳐다보면 살리라, 하시니라.
9)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보면 살더라)
그들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 있을 때
하나님을 원망한 죄악으로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심판의 불뱀들로부터 고통을 당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 당시에는 불뱀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구원의 손길이 있었지만,
지금 이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손길이 전혀 없다(Thompson).
[렘 8:18] 슬프다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
▶ 나의 근심이여 어떻게 위로를 얻을 수 있을까 - 본절에서부터 22절까지는
예루살렘 파멸에 대한 예레미야 선지자의 슬픔과 한탄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예레미아의 이 고통스러운 한탄 속에는
여태까지는 그나마 버틸 만한 힘이 있었지만
지금은 슬픔에 짓눌려 힘을 쓰지 못할 지경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였으며, 그 명령을 어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헌신과 충성심은
자기 백성에 대한 애정과 맞물려 있었으며,
그 결과 그는
'나의 중심이 번뇌하도다'라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렘 8:19] 딸 내 백성의 심히 먼 땅에서 부르짖는 소리로다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르시기를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 하시니
▶ 여호와께서 시온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 왕이 그 중에 계시지 아니한가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이르시기를 그들이 어찌하여 그 조각한 신상과 이방의 헛된 것들로 나를 격노케 하였는고 -
여호와의 왕권 사상은 구약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본절에서 처럼 여호와를 왕으로 직접 호칭하는 것은 비교적 잘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제시하고 있는 질문 사항은
구약의 다른 슬픔의 시에서도 흔히 보이는 형태이다.
(시 44:24-26 어찌하여 주께서 주의 얼굴을 숨기시고 우리의 고난과 학대받는 것을 잊으시나이까?
25) 우리의 혼이 진토에 꿇어 엎드리고 우리의 배가 땅에 붙었나이다.
26)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긍휼로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73:25-28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나이까? 땅에서는 주 외에 내가 사모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26) 내 육체와 내 마음이 쇠약하오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힘이시요, 영원토록 내 몫이니이다.
27) 보소서, 주를 멀리하는 자들이 망하리니 주를 떠나 음행의 길을 가는 모든 자들을 주께서 멸하셨나이다.
28) 오직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감이 내게 좋사오니 내가 주 하나님을 신뢰하였으므로 주께서 행하신 모든 일을 밝히 보이리이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선호하였던 애도의 표현은
비애와 놀라움을 뒤섞어서 나타내는 형식이었다.
(2:14 이스라엘이 종이냐? 그가 집에서 태어난 노예냐? 어찌하여 그가 노략을 당하였느냐?;
8:4-5 너는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넘어지면 일어나지 아니하겠느냐? 그가 떠나면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5) 그런데 어찌하여 이 예루살렘 백성은 영원히 타락하여 뒤로 미끄러지느냐? 그들이 속임수를 굳게 붙들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는도다;
14:19 주께서 유다를 완전히 버리셨나이까? 주의 혼이 시온을 심히 싫어하셨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우리를 치시고 우리를 위해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랐으나 좋은 것이 없고 치료하시는 때를 바랐으나 고난을 보나이다!;
22:28 또 많은 민족들이 이 도시를 지나가며 저마다 자기 이웃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주께서 이 큰 도시에 이같이 행하셨는가? 하리니).
한편, 문맥상 본절에 등장하는
세개의 의문절 중,
첫 번째 두 개의 질문은 백성들이 제기하는 물음이고
세 번째 것은 여호와의 질문으로서,
앞의 두 질문은 '그렇다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시다'라는
긍정의 대답을 전제한 물음이다(Thompson).
[렘 8:20]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우리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하는도다
▶ 추수할 때가 지나고 여름이 다하였으나 - 백성들의 불안과
고통의 울부짖음이 계속되고 있다.
여기서 '추수'(카치르)는 밀 수확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러한 추수 때가 지나갔고 또 여름 과실을 수확하는 시기가 지나갔다.
추수는 흔히 4월에서 6월까지 계속되었다.
밀 추수가 흉작으로 끝날 경우는
포도나 무화가 또는 감람 열매등의 수확이라도 기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매조차 수확하지 못하게 되면,
백성들은 기아에 허덕이게 되는 것이다.
예레미야는 여기서 바로 이런 상황을 예화로 사용하였다.
유다 백성들은 반역된 길에서 돌아서서 회개할 기회가 있었으나
그것들을 차례차례 다 놓치고 말았으며
그래서 다가올 심판에서 구원받을 기회를 영영 상실하고 만 것이다.
[렘 8:21] 딸 내 백성이 상하였으므로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놀라움에 잡혔도다
▶ 나도 상하여 슬퍼하며 - 예레미야는 여태까지 심판에 대한 책임이
그들의 극악한 죄악에 있음을 지적하였으나,
여기서는 침략군의 발굽에 짓밟히는 동포의 모습을 생생히 보고서
그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토로하지 않을 수 없음을 나타내고 있다.
[렘 8:22] 길르앗에는 유향이 있지 아니한가 그곳에는 의사가 있지 아니한가 딸 내 백성이 치료를 받지 못함은 어찜인고,
본절에서 이스라엘은 치명적인 질병에 걸렸으나
치유받지 못한 환자에 비유된다.
그런데 정작 치유받지 못한 이유는 명의나 명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환자 스스로가 질병을 인정하지 않고 또 치유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치유 계획과 은혜에 순종하고
고질적인 병폐인 죄악들에 대해 회개하였다면
그들에게는 건강과 축복이 주어졌을 것이나,
그들은 정반대의 태도를 고집하였던 것이다(Cla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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